5천여장 LP로 귀와 심장을 따듯하게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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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여장 LP로 귀와 심장을 따듯하게 적신다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07.04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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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공간탐방④ LP 카페 ‘흐르는 물’

▲ ‘흐르는 물’은 중구 관동 3가 7번지에 있다. ⓒ 이재은

 

블루스, 포크 전문 음악카페 ‘흐르는 물’은 1989년 1월에 오픈했다. 올해로 26년째가 된다. 처음에는 정희성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시구 ‘흐르는 것이 어찌 물뿐이랴’를 그대로 가져다 간판을 썼다. 너무 길다는 의견이 많아 ‘흐르는 물’ 두 어절로 줄였다.
 

안원섭 주인장은 주욱 인천에서 살았다. 20대 초반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음악을 좋아하니 적성에 맞았다. 나이 먹어 내 가게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고, 서점과 레코드점이 함께 있는 공간을 꿈꿨다. 예쁜 아내가 서점을 맡고, 본인이 레코드점을 지키는 식이었다. 하지만 80년대에 이미 서점 대형화가 진행돼 소(小)서점의 전망이 어두웠고, 음악 카페를 열기로 마음을 바꿨다.
 

아는 선배를 따라 보세 옷 관련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스물아홉에 ‘흐르는 물’을 오픈했다. 가게를 세 번 옮겼지만 전부 (중구) 관동 부근이었다.

 

▲ 안원섭 주인장(55) ⓒ 이재은

 

“시는 조금씩 써요. 잘은 못 쓰는데 쓰는 걸 좋아하죠. 기타도 가끔 치고요. 음악하는 친구들의 공연이 끝나고 조금 섭섭하다 싶으면 제가 뒤에서 세 곡 정도 연주하는 거죠.”
 

“10년 안에 LP 세상이 다시 올 거예요.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못하는 거죠. 사실 CD나 MP3는 우리 감성에 잘 맞지 않아요. 같은 조건에서 다른 방법으로 음악을 들려줬을 때 오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실험한 걸 본 적이 있어요. CD를 들려준 곳에는 5개의 오이가 열리고, LP 칸에서는 10개의 오이가 정상적으로 열려요. 하지만 MP3를 들려준 곳에서는 3개의 나쁜 오이가 자랐어요. 하루에 2시간 이상 MP3를 들으면 심장에 안 좋습니다. LP는 녹음하는 방식이 달라요. 아무리 오래 들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죠.”
 

비정기적으로 여는 ‘하우스 콘서트’는 14회까지 진행했다. 하반기에 계획된 ‘하우스 콘서트’는 없고, 9월에 프린지 페스티벌, 10월에 ‘트라이볼’과 하는 공연이 예정돼 있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양병집, ‘묻어버린 아픔’의 ‘김동한’,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모델이 된 가수 최훈이 함께 한다.

 

▲ 손님들이 쓴 손글씨가 ‘은밀하고 위대하게’ 벽에 무늬를 만들었다. ⓒ 이재은


 

가장 기억에 남는 ‘하우스 콘서트’ 초청 가수는 누구였을까.
 

“김대환 선생님이죠. 1993년인가 94년에 오셨어요.(정확한 년도는 잘 모르겠네요)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하셨는데 저한테 ‘너는 굉장히 큰 가게를 하고 있는 거다. 일본의 공연장은 이보다 더 작다. 자부심을 가져라’ 말씀해주시기도 했어요. 공연은 성황리에 마쳤죠. 가게로 전화를 걸어 정말 그 김대환이 맞느냐, 그 김대환이 오는 거냐고 묻는 분도 많았어요.”
 

“김대환 선생님도 인천 분이세요. 당시 5년제였던 동산고를 졸업하셨죠. 재즈하시던 강대한 선생 사촌인데 서울에 살았지만 인천에 애정이 많으셨어요.”
 

1세대 타악기 연주자인 고(故) 김대환(1933~2004). 타계 10주년을 맞아 올해 각지에서 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933년 인천 출생인 김대환은 1950년대 곽규석과 '후라이보이 악단'을 결성했으며 1961년부터 미8군 무대에서 활동했다. 신중현과 애드훠(ADD4)를 결성했고 현미와 패티김 쇼에도 올랐다. 국내 미8군쇼 60년사와 그룹사운드 50년사를 관통하는 인물로, 신중현과 조용필로부터 '한국 그룹사운드의 맏형'으로 불리기도 했다.

 

▲ 어떤 시간의 흔적들. ⓒ 이재은

 

- 별 일 없으시죠? 행복... 하시죠?

- 네, 별 일 없고, 행복합니다.

- 마지막으로 ‘흐르는 물’의 장점이라든가, 특별히 알리고 싶은 게 있을까요.

- 특별할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어요. 여기는 언제나 이대로예요.
 

안원섭 주인장은 아날로그 방식의 LP 음반을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삶도 아날로그적이다. 그는 스마트폰이 뭔지 모른다. 카카오톡도 SNS에도 관심 없다. 인터넷도 잘 안 한다. “귀찮아서요. 불편하지도 않고요.”
 

고인 물은 썩지만 늘 LP 음반(long-playing record)이 흘러 맑고 정겨운 이 공간은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2시까지 문을 연다. 매주 일요일은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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