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에는 새로운 신분제도가 있다!
상태바
이 사회에는 새로운 신분제도가 있다!
  • 김진숙(인천교육연구소, 인천남동고)
  • 승인 2014.08.14 2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동기획 -인천교육 미래찾기(63)
 
학비로 고통 받는 대한민국의 아이들

초등학교 6학년 때 반 친구 중 한 명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 아이의 부모님은 시장에서 콩나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갔는데, 가정형편도 어려운 데다 갓 태어난 막내를 장사하시는 부모님 대신 친구가 키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졸업 때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같은 반 친구 한 명이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어렸던 나는 많이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그 정도로 어렵지 않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중3 때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나 역시 인문계와 실업계 진학을 놓고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대학은 어떻게든 벌어서 다니면 된다는 생각에 일단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고, 대학 내내 휴학과 알바를 하며 학비 걱정에 시달려야 했다.

교사가 된 첫 해에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반에 가정형편이 많이 어려운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그 아이가 수돗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왜 밥은 안 먹고 물만 마시느냐는 내 질문에 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이후 도움을 주려는 내 손길을 그 아이는 악착같이 거부했다. 점심에 빵이라도 사주려고 하면 어느 새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실업계 고등학교(현 특성화고)로 옮겨 오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가정형편에 대해 얘기를 듣다 보면 어느 때는 ‘어떻게 이렇게 어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 보다 한숨이 먼저 나왔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아이들이 학비지원조차 못 받는 경우가 꽤 있었다. 상담을 해보면 사연도 참 많았다. ‘아버지가 종손인데 중종 땅이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어서, 아버지가 차에 과일을 싣고 다니면서 파는데 차가 있어서 의료보험이 많이 나와서,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어 할머니와 사는데 할머니가 작지만 집을 소유하고 있어서, 아버지가 소득이 있지만 따로 살면서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아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벌고 있지만 빚이 많아서, 아버지가(때로는 어머니가) 도박에 중독돼 버는 족족 도박에 날려버려서…….’ 그 많은 사연들을 다 말하기도 힘들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아이들의 고통과 그늘이었다. 파탄 나거나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학교조차 마음 편히 다니기 힘든……. 참 똑똑하고 성적도 좋은 아이가 있었다. 성적이 좋은데 왜 실업계에 왔냐고 물어봤더니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부모님은 이혼하시고 아버지와 사는데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자였다. 재혼한 어머니는 도와줄 상황이 아니어서 생활비조차 없는 상황에서도 아이는 참 밝고 씩씩하게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 등을 벌었다.
 
일반계 고등학교로 옮겨 와서도 어려운 아이들은 여전히 많았다. 학비지원 서류를 제출하는 학기 초면 학교장 추천서를 보통 다섯 명 이상 작성해야 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아이들이 많아서 좀 적은 편이었다. 전화를 걸어 어려운 집안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며, 작년까지는 받았는데 올해는 탈락했다면서 추천서를 써달라고 부탁한 학부모가 두 분이 있었다. 아이와도 상담을 해보니 많이 어려운 상황임이 분명하여 추천서에 이런 상황을 자세히 쓰고, 관련 서류(파산신청서, 임대아파트 입주와 대출금 서류 등)도 충분히 제출했다. 그러나 모두 학비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학교장 추천에 의한 지원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관련기사 : 7월 17일, 23일자 인천in ‘저소득층 지원’ 관련 기사 참고)
 
나의 학창시절엔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았다. 어쩌면 대부분이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당연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서 어느 새 30여 년이 흘렀다. 이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GDP)이 24,000달라가 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도 학비나 급식비를 걱정해야 하는 아이들이 이 땅에 아직도 많다. 경제의 발전과 교육복지는 무관한 것인가. 작년보다 더욱 나빠진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교육부는 이러저러한 수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학교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학비나 급식비 지원을 받아야 할 만큼 어려운 학생들이 많은 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그저 해당 조건이 안 되니 알아서 하라고 하면 그만일 것일까. 급식비를 낼 수 없으면 굶을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교육복지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복지(福祉)’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행복한 삶’이라고 나온다. ‘복지정책’이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민 전체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교육복지는 복지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삶의 질을 높이기는커녕 기본적인 교육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 34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한 ‘헌법 31조’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능력에 따라’가 부모의 경제적 능력을 말하는 것은 아닐진대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헌법에서는 복지를 국가의 의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정부는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은 복지에 관해 많은 공약을 내세웠다. 그런데 ‘무상보육을 위한 누리과정’과 ‘초등학교 돌봄교실’을 실시하면서 관련 예산은 지방교육청에 떠넘겼다. 또 ‘고등학교 무상교육’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자신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지방교육청의 재정을 악화시켜놓고는, 내국세 감소를 이유로 정부교부금은 갈수록 줄이고 있어 인천시교육청의 경우 2015년에는 약 1,300억 원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인천시에서 시교육청에 지원해야 할 법정 전입금마저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약 750억 원 정도가 미지급 상태이다. 그 결과 인천시교육청은 올해 1,000억 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한다. 재정 악화로 교육복지 예산이 대폭 축소된 상황에서 인천시교육청에 교육복지의 확대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교육비 부담이 불러온 새로운 신분제도

그렇다면 이 상황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흔히 거론하는 OECD 지표를 살펴보자.
OECD가 발표한 ‘2013년 교육지표’ 조사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가 7.6%이다. 이 중 정부부담은 4.8%로 OECD 평균 5.4%에 한참 못 미치는 반면, 민간부담률은 2.8%로 OECD 평균 0.9%를 훌쩍 넘어서며 2001년 이래 13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초중고교의 민간부담률은 GDP 대비 0.9%(OECD 평균 0.3%)였고, 대학 이상은 1.9%(OECD 평균 0.5%)로 모두 1위였다. 게다가 사교육비 부담에 있어서는 OECD 평균의 3배를 넘어서며 단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은 공교육에 있어서도 사교육에 있어서도 엄청난 부담을 떠안고 있는데 반해 정부는 이런 상황을 뒷짐 지고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아니, 오히려 사교육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렇듯 교육에 지출하는 비용이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모의 경제적 능력은 교육 불평등을 낳고 있다. 2013학년도 서울대 입시 결과를 보면, 수시 합격자의 50.5%가 강남 출신이고 여기에 노원구, 양천구까지 합하면 67.9%에 달했다. 정시 합격자는 더 심하다. 70.1%가 강남출신이며 노원구, 양천구까지 합하면 무려 81.8%에 달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의미 있는 결과라 할 수 있다. 학벌사회인 대한민국에서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이 소위 SKY 대학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사회의 어떤 계층으로 자리 잡을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이라는 수단을 통해 세습되면서 새로운 신분제도를 형성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불행한 아이들! 그리고…

얼마 전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내 말에 아이 하나가 “선생님! 전 왜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을까요? 네덜란드나 핀란드,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가슴이 뜨끔했다. 어디 입시지옥에만 해당하는 얘기겠는가. 교육비 부담에 있어서도 무상교육 또는 준무상교육에 준하는 유럽의 나라들을 그저 부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저 씁쓸할 뿐이다. 무너져가는 공교육. 흔히 하는 얘기다. 그런데 이 무너져가는 공교육을 받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은 OECD 국가에 사는 어느 부모들보다도 가장 큰 부담을 떠안고 있다. 그리고 교육이 신분 상승의 수단이 되는 나라에서 신화를 이루어내기 위해 허리가 휘도록 사교육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교육으로 인해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모두 불행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정부에 당당히 요구하자!

선거 때마다 교육을 살리겠다며 온갖 교육복지 공약을 내세우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허공에 흩어지는 공약들을 이제는 당연한 듯 여기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국민에게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고, 공평하고 균등하게 교육받게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교육복지 향상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이제 이 의무를 저버리는 정부를 향해 헌법을 지키라고, 공약을 이행하라고, 정부의 의무를 다하라고 교사와 학부모, 아니 모든 국민들이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부교부금이 나날이 줄어들어 교육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교육청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정부를 향해 교육재정을 늘리고 교육비 정부 부담을 높이라고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교육을 희망하며 진보교육감을 뽑은 우리가 공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해야 할 중요한 일들 중 하나인 것이다.
 
우리는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으며 공평한 교육의 기회를 누릴 권리가 있다. 교육이 부모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신분을 형성하지 않도록, 부모의 부에 의해 새로운 신분제도가 탄생하지 않도록 우리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는 아이가 없는 나라가 되도록 해야 한다. 가난한 부모 때문에 고통 받고 주눅 드는 아이가 없도록 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교육권, 대통령의 공약 이행, 국민 전체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정부. 이런 것들을 희망하는 나는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이상주인자인 것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