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업은 자기 말을 하는 것,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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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업은 자기 말을 하는 것,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다”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08.21 21: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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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삶을 이야기하는 ‘예술 강사’ 신운섭 선생님을 만나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에서 시작한 예술교육사업은 2004년부터 진행됐다. 이전에 국악, 연극, 무용 분야 등은 협회별로 시범사업을 했고, 신운섭 선생님도 그렇게 연극 강사로서 발을 디뎠다.

예술교육 활성화 일환으로 문화예술교육법이 만들어지자 ‘예술 강사’라는 말이 생겼다. 꾸준히 청소년이나 노동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극작업을 해왔던 선생님은 그제야 자신이 ‘예술 강사구나’ 깨달았다. 현장에서,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함께 연극을 한 지 올해로 만 12년째가 된다.



중학교 때부터 연극 활동
극단에서 활동하다가 2002년 인천으로 이사 와

중학교 때 교회에서 처음 연극을 했다. 해마다 성탄절에 공연을 했는데 재미있었고, 사람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니 더욱 흥이 났다. 특별활동은 중학교 때 미술반, 고등학교 때는 국악반에 속해 있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지 교회 연극은 계속했다.

대학은 사회학 전공으로 입학했다. 주변에서 연극영화과에 가기보다 일반학과에 다니면서 연극동아리를 하는 게 낫다고 권했다(어떤 의미인지 독자들은 짐작 하시리라). 재수를 한 뒤 1990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시절이 하수상했다. 나름 ‘촉’이 있었던 신운섭 선생님은 대자보도 꼼꼼히 읽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예민하게 바라봤다.

“어느 날 우연히 연극을 봤어요. ‘피토 아줌마’라는 제목으로 기억하는데 여성 노동자들 이야기였어요. 연극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연극으로 투쟁을 할 수도 있구나, 연극으로 사회를 바꿀 수도 있구나, 충격 혹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신 선생님은 학교를 휴학하고 ‘내가 연극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1년간 대학로에서 극단생활을 했다. 만 1년을 꼬박 채우고 군에 입대했다. 제대 즈음 선생님은 진지하게 고민한다. 복학을 할 것인가, 연극을 할 것인가. 선택은 연극이었다.

“극단 연습실이 역곡역에 있었는데 집이 수유리라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2000년도에 결혼을 했는데 아내도 연극하는 사람이라 연습실 가까이 이사한다는 게 동암까지 오게 됐죠. 2002년도부터 인천에서 살고 있습니다.”


학산문화원에서 진행했던 ‘문화봉사단 실버극단학산’
호평 속 8년째 이어갔지만 올해 사업 중단

신운섭 선생님은 ‘실버극단학산’이 계속 운영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2005년 하반기에 학산문화원 관계자와 어르신들을 위한 극단을 기획했다. 신 선생님과 이란희 선생님(둘은 부부다)이 주축이 돼 연극단을 꾸렸고, 100% 창작극으로 공연을 펼쳤다. 첫 해에 말 그대로 ‘빵 터졌고’ 언론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주목을 받는 등 인기가 높았다.

“첫 작업의 제목이 ‘인생’이었어요. 저는 예술작업은 자기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놀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이야기도 하는 과정이 모두 공동 작업이 되는 거예요. ‘어르신들을 위한 훌륭한 대본’은 이 세상에 없어요. 다른 세대, 다른 상황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좋은 대본이 있다고 해도 어르신들이 소화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죠. 체력적으로 버티기도 힘들고요. 실버연극단에서는 모두가 주연이고 모두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젊은 날에 헤어진 남녀가 나이 들어 다시 만난다는 내용의 사랑과 인생 이야기였다. 1년 동안 작품 하나를 만들어서 지역 요양원에 순회공연도 다녔다. (행정, 재정 등의 이유로) 6-70대 어르신을 위한 극단은 사라졌지만 신 선생님은 그동안 ‘실버극단학산’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전을 계획하고 있다.



‘예술 강사’만으로 생활을 꾸리기는 어렵다
다만 “도움은 된다”

“중학교 한 곳, 고등학교 한 곳에 나가고 있어요. 한 곳은 일주일에 두 번 가기 때문에 1주에 9시간 강의하는 셈이죠. 올해 처음으로 300시수를 신청했는데 세금 제하고 연봉 1천만원 남짓밖에 안 됩니다. 먹고 살기 힘들죠. 학교에 ‘연극 선생님’으로 들어가는 것 말고 센터 등 외부 강의를 병행하고 있어요.”

진흥원 소속 예술 강사들이 최대 수업신청을 할 수 있는 시간은 476시수. 시수 제한에 대해 신 선생님은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예술 강사들은 고용보험료는 내지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구조, 직장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구조에 속해 있다. 신청한다고, 원하는 시수만큼 강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평가, 신청당일 인터넷 접속 운 등), 신 선생님은 곰곰 들여다보면 왜 예술 강사를 위한 노조가 만들어져야하는지 수긍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지난해 말 예술강사 노조가 탄생했지만 가입자는 많지 않다)


예술가가 하는 행위는 모두 ‘예술’이자 ‘예술교육’이 될 수 있을까
‘예술행위’를 하는 것과 ‘예술교육’은 다르다

“이런 질문을 해봤어요.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것을 모두 ‘예술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술가가 하는 행위는 모두 예술이고 예술교육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예술교육 활동을 통해 삶이 풍요로워지고 있을까? 하는 것들이요.”

지난해 5월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을 기념해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 강사를 인터뷰하고 글을 쓰는 자리도 마련됐다. 신 선생님은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교육이며, 또 무엇이 예술교육인지 현장에서 활동하는 선생님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일명 ‘예술가들의 발 이야기마당’이었다.

2005년부터 11년까지 국악분야 예술 강사로 활동한 이모 선생님은 알고 있던 선생님의 ‘땜빵 수업’으로 처음 학교에 갔다. 의외로 설명을 잘하는 자신을 발견했고, 가르치는 일을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7년 동안 예술 강사를 했지만 기능수업 이상의 것을 가르치지 못한다는 반성이 생겼다. 예술교육은 예술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 돼야 한다. 새로운 시도를 통한 수업을 하고 싶어 강사를 그만뒀다.

만화분야 예술 강사였던 조모 선생님은 종일 회사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 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진흥원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고 예술 강사 내에서의 경쟁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재는 그만둔 상태다.

강모 선생님은 사진분야 예술 강사로 활동 중이다.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 카카오톡도 하고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사진이 뭘까 찾아보고 직접 찍어서 교재로 활용한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배우는 것이다. 일방적인 것은 교육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신운섭 선생님은 종종 독립영화나 저예산 상업영화에 배우로 참여한다. 올 가을에도 ‘의사’ 역할을 맡아 작품 속에 등장할 계획이다.

“소위 예술 한다는 사람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예술적인 충만함을 경험했던 순간이 있을 거예요. 그게 어떤 걸까, 어떻게 교육 속에서 전해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가끔 대체 뭐하고 있는 거지? 예술을 가르친다고? 하는 의심도 들지만 연극을 통해, 또 연극배우로 제가 맛본 충만함을 알려주고 싶어서 이 일을 계속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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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숙 2014-08-22 09:40:32
예술강사의 활동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습니다.제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연극강사님이 오시는데 연극수업을 하는 몇년동안 학교상황이 아닌 강사님의 상황에 최대한 협조해 드렸습니다.
진솔한 삶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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