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도시산책’ 전시하는 이영욱 작가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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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도시산책’ 전시하는 이영욱 작가와의 대화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09.21 2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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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서 아름다운’ 인천을 산책하다

이영욱 작가에게 이 도시는 ‘차갑다’. 그는 정감 있는 것, 사라지는 것들을 그리워한다. 과장되고, 뒤범벅되고, 스펙터클하게 변하는 ‘이상한 도시’는 마치 피부에 스며들지 못하고 겉도는 화장 같다. 하지만 그는 ‘이상한 도시’를 찍은 자신의 사진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지난 토요일 오후 세 시, 사진공간배다리 2관 사진방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도시와 산책,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스펙터클함’을 보여주는 사진은 아닙니다.

밋밋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자세히 보면 특징이 있습니다. 몽타주 느낌이라고 할까요. 특별한 앵글로 대상을 포착하고자 의도한 건 아니에요.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정제된 느낌이랄까, 좀 더 오래 보게 됩니다. 사진은 프레임이에요. 어떤 대상을 잡아놓느냐는 작가에게 달려있죠.

내 사진에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적어도 내가 사진 안에 담고자한 의미는 없죠. 의미는 사진 밖에 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죠. 결정적 의미를 전달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언뜻 못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겁니다.


‘기억의 공간’ 배경이 되는 곳은 어디인가요.

어린시절에 용현2동에 살았습니다. 뛰놀던 기억이 생생해요. 우연히 지나다가 재개발하는 걸 보게 됐어요.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가 된 거죠. 40년 만에 돌아가니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생겼습니다. 그걸 사진으로 기록했죠.

10년간 중국에서 생활했습니다. 돌아오니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인천에서는 한국, 현대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특징과 많은 게 연결돼 있어요. 기억 속 공간을 찾아 산책하는 기분으로 찍었습니다.


동영상에 담긴 ‘풍경 속 사건’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인천상륙작전기념관과 실미도를 담았습니다. ‘실미도’라는 영화도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싶었어요. 지금 과거 역사를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죠. 남아있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바로 그 장소, 역사적인 현장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우겨대면, 역사를 환기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완결된 작업이 아닙니다. 다른 방법론이 적절히 결합되면 나중에 다른 작업이 될 수도 있겠죠.
 

이영욱의 개인전은 사진, 영상, 책, 세 가지로 진행된다. 책에는 ‘이상한 도시산책’의 부제 세 가지를 뒤섞어 333개의 컷을 실었다.

“책 속에는 친절한 설명이 없습니다. 동네를 기록하거나 재현하는 관점으로 구성한 게 아니니까요. 어찌 보면 불친절한 사진책이죠. 하지만 찬찬히 보면 구석구석 볼만한 게 많아요. 책은 전시에서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출판 목적은 아닙니다. 사실은 지금보다 더 두껍게 하고 싶었어요.”


표지 사진은 어떻게 찍게 됐나요.

처음에는 핸드폰으로 찍었어요. 나중에 좋은 카메라를 들고 그 장소에 다시 갔어요. 처음의 그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수십 번 찍었는데도 그랬죠. 나중에 또 갔는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사진만큼 만족할 수 없었어요. 내 눈이 카메라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아요. 이번 전시 역시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욕심을 많이 냈어요. 크게 뽑느라 돈도 많이 들었고요. 하지만 그러면서 방향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순간적인 느낌이 중요해요. 처음 대상물을 봤을 때는 감성이 작용하고 후에 다시 갔을 때 이성이 작용됐다는 식으로 구분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여러 차원이 섞였을 겁니다. 계획하면서 사진 찍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이토록 이상한 사진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자세히 보면 재미난 요소가 많습니다. 해변가에 선글라스 낀 여자와 실내에 있어야 할 소파가 함께 있다든가 하는 어설픈 부조화 같은 거죠. 사물과 텍스트가 같이 있는 것도 많아요. 우연히 찍힌 게 아니라 전부 내가 주의 깊게 보면서 담은 겁니다.

구도를 잘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지만 일부러 삐딱하게 찍은 건 아니에요. 균형 있고 조화로운 사진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게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리돼 있지는 않지만 생각할 거리를 주고 볼만한 것들을 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 곳곳에는 불편한 느낌이 있잖아요.


당신의 사진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신다면요.

협회 사진은 코드화돼 있어요. 나 역시 그들과 다른 코드를 갖고 있을 테지만 인위적인 느낌은 덜할 거라고 믿어요. 지금의 코드가 다른 걸로 바뀔 수도 있겠죠. 절대적인 건 없어요. 이게 내 감성이고, 이게 내 스타일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변하게 될 거고요.

어느 하나를 주제로 택하지는 않아요. 나무, 전봇대, 전깃줄, 노인 모든 게 주제죠. 내 사진을 공모전에 내면 틀림없이 떨어지겠죠. 초보자가 찍은 것 같다고 여기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나는 이게 너무 좋아요.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산만하다고 말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산만함 속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면 바로 그걸 노린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분위기예요. 분위기는 사물과 사물의 관계, 공간, 사물의 색감 등에서 나옵니다. 내가 느낀 걸 다른 사람도 동일하게 느낄 수는 없죠. 각자의 무의식에서 나오니까요. 어쨌든 그 대상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선택한 겁니다.




향후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인천을 10년쯤 찍어보고 싶어요. 이제 2, 3년 찍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속 작업할 거예요. 인천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어서라기보다 인천이 한국사회 전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재미난 곳이기 때문이에요. 인천에는 담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사실 내가 한 건 별로 없어요. 대상이 스스로 말한 거죠. 대상을 바라보다가 그걸 찍고, 적절한 걸 골라서 사진, 동영상, 책으로 결과물을 만든 거예요. 사물이 말하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사진은 말이 없습니다. 말은 배치에 있죠. 천천히, 구석구석, 자세히 봐 주세요. 사진 속에 작은 것들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이영욱 작가의 사진에서 정치적 풍경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겠다는 사명감은 없다. 좋아서, 즐거워서 하는 것이다. 사회적 발언도 중요하지만 그걸 목적으로 작업하지는 않는다.

사진공간배다리에서 열리는 ‘이상한 도시산책’은 10월 1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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