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같은 간호사에게 벌벌 길 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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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같은 간호사에게 벌벌 길 때도 있어요”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0.20 00:5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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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②-간병인 조모씨

조영선씨(가명, 57)는 불안해 보였다. 지난 여름의 ‘사건’ 후유증으로 머리와 눈, 어깨, 허리, 무릎 등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남편 없이 아들딸과 셋이 지내고 있는 탓에 돈을 벌어야 하는데 40여일째 일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일하러 가기가 너무 무섭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하루 24시간 근무에 일급 7만원. 간병인들은 가능하면 오래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는다. 병원에서 먹고 자며 24시간을 지내려면 미리 옷, 화장품, 생활용품, 식사 등을 챙겨 와야 하는데 그 짐을 들고 며칠새로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기 힘들기 때문이다.

경력 있는 간병인들은 석션 환자는 피한다. 의식 없는 중증 환자도 되도록 맡지 않으려고 한다. ‘의식 없는 환자에게 석션을 해야 하는 경우’는 최악에 속한다. 조영선씨가 지난 여름에 맡았던 환자가 그 경우에 해당했다. 20-30분에 한 번씩(물론 밤에도) 석션을 해야 했다. 잠을 잘 수 없었다. 주변 환자들이 “저 환자는 중환자실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였다.

석션(suction)은 가스나 공기, 기압의 힘으로 물 등을 빨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환자의 목이나 코, 입을 통해 가래, 액체 등을 빼낸다.

“다른 간병인들이 꺼려하는 중증 환자를 협회에서 나한테만 맡겼더라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주는 대로 했어요. 이번에 일이 터지고 보니 그렇더라고. 간병인은 기본적으로 석션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어요. (간호사들이) 암묵적으로 시켰던 거죠. 왜 그러는지는 몰라요. 바빠서 그럴 수도 있고.”



나이 먹으니 할 게 없더라

조영선씨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간병 활동을 했다. 일주일 정도 교육을 받으면 수료증이 나와 그 증명서가 ‘간병 자격 허가’ 기능을 했다. 이후 조씨는 슈퍼도 하고 밥상 만드는 공장에 다니기도 했다. 남편 없이 혼자 벌어서는 대출금을 갚고 아파트 관리비와 생활비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딸도 회사를 다니지만 학자금 대출을 갚기 바쁘고 아들은 벌이가 시원찮다.

어쩔 수 없이 올해 5월 20일부터 다시 간병을 시작했다.

“나이 먹고 할 게 없더라고요. 환자 잘 만나면 밤에는 잠도 잘 수 있고 괜찮다고 생각했죠. 협회에서 연결해 주는 대로 일했어요. 다른 간병인들은 짧게 하는 일은 안 하려고 하고, 중증 환자는 꺼려하지만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했어요.”

간병인은 5, 60대가 가장 많고 40대는 드물다. 이따금 경력이 많은, 70대 초반의 베테랑 간병인을 만나기도 한다.

“몸을 닦이고 옷을 갈아입히고 밥을 챙기는 일은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그런데 한 시간에 두 번씩 쉬지 않고 석션을 하는 건 얘기가 달라지죠. 이틀 밤을 샜어요. 내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니더라고요. 도저히 안 되겠어서 간호사한테 도와달라고 했는데 난리를 치더라고요. 어디서 (감히) 그런 말을 하냐고요. 쫓아낸다고 협박 비슷하게 말하기도 하고요.”

조영선씨에게 생긴 일

8월 19일 오후 4시, 조씨는 부천 모 병원 8층에 입원한 김일건(가명, 51) 환자를 돌보게 됐다. 오토바이 사고로 머리를 다쳐 두 번 수술을 했지만 환자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막 일반병실로 옮겨왔지만 상태가 심각한 중증환자였다.

조씨가 해야 할 일은 가래 때문에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석션을 하고, 겨드랑이에 열이 나지 않도록 얼음주머니를 대고, 비위관을 통해 식사를 제공하고(소화를 시키지 못해 1시간 정도 걸렸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2시간마다 체위를 변경해주는 일 등이었다.

김일건 환자는 석션을 계속 하지 않으면 숨이 막혀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다. 밤낮으로 석션을 해야 했기 때문에(40-50분 간격) 길어야 50분 정도를 잘 수 있었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그런 식으로 환자를 돌봤고 조씨는 체력에 한계가 와 몸살이 났다. 김일건씨를 돌본 지 6일째 되는 일요일, 환자가 크게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변비약 섭취 탓인지 변이 양도 많아 기저귀도 수시로 갈아야 했다.

딸에게 몸살약을 가져 오라고 했다. 오후, 엄마를 보러 병원에 들른 딸은 치킨을 사왔고, 조씨는 환자에게 석션을 해주고 불편한 게 없나 점검한 뒤 1층에 내려가 딸과 치킨을 먹었다. 간호사에게 말하지 않고 30분쯤 병실을 비운 것이다. 돌아와 보니 소동이 났다. 환자를 두고 30분씩이나 자리를 비웠다며 간호사가 조씨에게 삿대질을 했다. 조씨는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빌었다.

“그건 제 잘못이 맞아요. 조금 오래 자리를 비울 때는 간호사실에 말을 해야 하거든요. 잘못한 걸 알았기 때문에 ‘노예처럼’ 싹싹 빌었어요. 단도리를 잘 하고 갔고 그 사이 환자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지만 실수는 실수였죠.”

딸꾹질 때문인지 환자는 가래가 많아져 석션 간격이 30-40분으로 줄었다. 그날 조씨는 한 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밤새 기저귀를 갈고 석션을 해야 했다. 석션 주기는 더욱 짧아져 20-30분 간격이 됐다. 같은 병실에 있던 한 환자가 쉴 새 없이 하는 딸꾹질에 불만을 표했다.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다며 조씨에게 “당신이 가래를 계속 뽑지 않아 그런 것 아니냐”고 화를 냈다. 조씨는 또 간호사에게 불려갔다. 불만을 표한 어르신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다음 날 오후, 조씨는 이틀을 자지 못한 탓에 정신이 몽롱했다. A 간호사에게 너무 피곤해서 그러니 조금 잘 동안 환자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A 간호사는 거절했다. 조씨는 다른 병원(동일 병원 다른 층)에서는 이런 상황일 때 봐줬었다고 말했다. 간호사는 신경질을 내며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가서 자라”는 식으로 대꾸했다. 보호자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리가 어지럽고 멍했으며 몸이 찌릿찌릿 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환자는 20-30분마다 한 번씩 석션을 해야 하는데 간호사는 1회 석션을 하고, 다음에는 살짝 얼굴만 비치고 그만이었다. 조씨는 그날 밤도 밤새 석션을 했다. 눈앞이 빙빙 돌고 숨이 막혔다.

새벽 3시 15분,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보호자를 불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보호자가 오자 간호사가 복도로 조씨를 불러 “어디서 잠을 자겠다며 간호사한테 석션을 해달라고 하냐”, “여사님은 일을 많이 안 해봤나 봐요”하며 비아냥거렸다. 인터넷사이트에 조씨 이름을 올리면 일을 못하게 할 수도 있다며 협박했다.

조씨는 기가 막혀서 눈물이 났다. 오전에 출근한 수간호사의 태도도 비슷했다. 어디서 교육을 그 따위로 받았느냐는 식이었다. 조씨는 그 병원 10층 간호사는 도와주더라고 얘기했다가 더욱 더 원망을 샀다. 24일부터 27일까지 조씨의 수면시간은 50분이었다. 석션 때문에 쪽잠을 잘 수도 없었다. 몸무게가 2킬로그램 빠졌다.

돈 때문이든, 책임감 때문이든 만 24시간이 되는 오후 4시까지 환자 곁을 지키다가 병원을 나왔다. 집에 돌아왔지만 세상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노예 부리듯 무시하던, 비꼬듯 말하던, 입술을 삐죽이며 깔보던 간호사들의 표정과 말투,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간호사 전부가 그랬던 건 아니지만 하필이면 그 병원 8층에는 그런 간호사가 많았다. 간병인들은 보호자, 환자, 옆 환자, 간호사 등과 크고 작은 트러블 때문에 힘들어하지만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다.

간병인은 간호사들 밥, 화풀이 대상 아냐

“주인이 노예한테 하듯이 하는 거예요. 비위에 안 맞으면 보호자한테 전화 걸어서 ‘여사님 바꾸는 게 낫겠다’고 말하고요. 보호자는 우리보다 간호사 말을 들을 수밖에 없잖아요. 이번에 제가 맡은 환자는 중증이어서 다른 간병인 구하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바꾸라는 말은 안 하고 저를 괴롭힌 것 같아요.”

조씨가 속해 있는 협회 담당자는 조씨에게 수간호사한테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요구했다. 수간호사가 협회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어떤 협회가 수간호사 맘에 들지 않으면 그쪽 간병인을 안 받는 형태다.

“내가 그렇게 안 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냐고 했더니, 꼭 그런 건 아닌데 잘못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네도 약자, 을의 위치기 때문에 무조건 빌어야 한다고요. 협회 선택은 수간호사의 권위에 달려 있어요. 협회는 수간호사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해요.”

조씨는 현재 모욕과 가혹행위에 대해 간호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인권위원회에도 고소장을 제출했다. 변호사는 "사립병원은 터치하기 힘들다“ 말하고 경찰은 ”아주머니 넋두리밖에 안 돼요. 간병인은 석션을 할 수 없는데 했다면 아주머니한테도 잘못이 있는 거 아니에요?” 겁을 줬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에 글을 올리고, 원미구보건소를 찾아가고, 무료법률사무소를 방문해 조언을 구했다.

조씨는 ‘내 일만 잘하면 욕먹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약자라는 이유로 참고 넘어가는 것이 아닌, 환자가 아닌 간호사와 수간호사 눈치를 보며 벌벌 기는 것이 아닌 노동을 꿈꿨다.

“자기도 부모가 있고 이모, 고모가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물론 좋은 간호사도 있어요. 고생한다고 말해주는 사람, 실수하면 그럴 수도 있죠, 라고 이해해주는 사람... 애들하고 먹고 살려고, 한 푼이 아까워서 참고 참았는데...”

조씨는 돌아서는 기자를 붙잡고 조금 전에 한 당부를 하고 또 했다.

“부탁입니다. 신문에 크게 좀 내주세요. 텔레비전 방송에도 이런 걸 나가게 할 수 없나요? 정말 너무 억울해서요...”

감정노동 희생자는 주로 여성, 심하면 감정 불감증에 이르기도

감정노동이 심해지면 겉으로는 웃으면서 마음은 침체의 늪에 빠지는 가면우울증, 내가 남이 된 것 같은 이인화현상을 겪을 수 있다. 자신이 못나 이런 데서 일한다는 자기 비하, 자기 존중감 저하도 이들의 특징이다. 심한 경우 감정 불감증에 이르기도 한다.

억눌린 감정을 풀지 못할 경우 화병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의욕상실로 심신의 피로를 호소하거나 소화불량, 불면증, 생리불순,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같은 심인성 질환을 호소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감정노동의 희생자가 주로 여성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서비스업종의 노동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가사노동과 유사하다. 문제는 기업이나 고객, 상급직원이 비인격적인 대우와 차별로 이들의 감정 노동 여건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업무환경은 결국 경험있고 능력있는 직원의 직장 포기와 기업 손실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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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밍 2014-11-06 17:12:42
엄마 생각난다..........ㅠ ㅠㅠㅠ아..엄마한테 잘해야겠다...

수채화 2014-10-24 10:16:10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간병인 요양사 등 새로운 직업군에 속한 분들이 대부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인권감수성에 대해 돌아보는 기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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