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일단 공연 자체가 많이 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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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일단 공연 자체가 많이 열려야 합니다”
  • 배영수 기자
  • 승인 2014.10.28 2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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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중음악인 릴레이 인터뷰 - 1. 성용밴드

성용밴드. 왼쪽부터 서성용(보컬, 기타), 신드럼(드럼), 윌 리(기타), 넬슨(베이스) 

인천의 8090시절은 가히 ‘록과 헤비메탈의 시대’ 그 자체였다. 지난 5월 글쓴이가 ‘음악으로 듣는 세상’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연재글을 통해, 지금은 철거되어 야외공원으로 남아있는 인천시민회관과 현 인천예총 건물인 수봉공원 문화회관 등에서 인천에서 태동한 록 밴드들의 공연이 자주 열렸던 것을 언급했던 바 있다. 그리고 그때 활약한 인물들은 상당수가 음악계를 떠나기는 했어도 아직 인천에 남아 있다. 80년대 중반 인천에서 최초로 헤비메탈 공연을 펼쳤던 양범석씨를 비롯해 일본까지 진출했던 밴드 ‘사하라’의 우정주, 현재 [클럽 글래스톤베리 인천]을 운영 중인 이진우, 그리고 한때 [MBC 록 음악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B4U의 주요 멤버들은 아직 인천에서 각자의 삶을 지속하고 있다.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는 ‘성용밴드’의 리더 서성용 역시 인천 출신으로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인천에 거주하며 뮤지션의 삶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MBC 록 음악제] 대상으로 인해 서울에까지 그 이름이 알려졌던 B4U의 전신 밴드 ‘440E’(이 팀은 당시 인천에서 록 음악을 듣는 마니아들이면 거의가 알고 있는 나름 이름이 있는 팀이었다)의 기타리스트 출신으로 다른 뮤지션들이 IMF 이후 생활고를 이유로 음악을 포기하는 상황에서도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놓지 않았다. 결국 2012년 그는 생애 첫 솔로 앨범 [Love Drive]를 발표하는 쾌거를 누렸다. 그러나 솔로 앨범 이후 자신의 음악적 출발점이었던 ‘밴드 음악’에 대한 염원을 마음 속에 품었던 그는 결국 작년부터 프로 뮤지션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이름을 딴 ‘성용밴드’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사)서해문화가 주최하고 [인천in] 등이 후원해 월미도에서 열렸던 콘서트 [버스킹 인 인천]에도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지난 10월 중순, 글쓴이는 서성용의 거주지 인근인 연수동의 한 카페에서 성용밴드의 멤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멤버 중 기타리스트 윌 리가 연주 스케줄 상 인터뷰에 함께 하지 못해 이 부분은 독자들의 양해를 미리 구한다. 
 

9월 월미도서 열렸던 [인천in] 후원 콘서트 [버스킹 인 인천]에서 성용밴드의 공연 모습.

멤버 소개 부탁합니다.
성용 : 먼저 안 온 친구 소개부터 할게요. (웃음) 기타에 윌 리. 저는 보컬 겸 기타리스트 성용이고, 베이스에 넬슨, 그리고 드러머 신드럼입니다. 본명은 신규섭이에요.

멤버 별로 예전엔 어떤 음악 활동을 했는지 궁금해요.
성용 : 저는 고교 졸업 후 바로 밴드 생활을 했어요. 인천에서 밴드 ‘440E’ 활동을 하다 군대에 갔고, 제대하니 팀 이름이 ‘B4U’로 바뀌었는데 그때 서포트 멤버 자격으로 팀에 참여했고 팀이 1995년 [MBC 록 음악제]에 출전해 대상을 수상했죠. 그때 음악제 참여 밴드들이 음반 녹음을 다 했는데 그때 B4U의 기타 연주가 바로 저에요. 팀은 97년 정도까지만 함께 했고 저도 제 음악을 해야 해서 그 뒤로는 솔로 활동을 계속 했어요. 이곳의 음악 신이 사라진 이후엔 미사리 등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도 하고 행사도 하고 그러다 2012년 기회가 닿아 앨범을 내게 된 거죠. 꿈이었던 제 밴드는 작년 5월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신드럼 : 저는 CCM 신에서 세션 드러머로 장기간 활약했습니다. 신의 특성 상 해외 순회공연 같은 것도 자주 하고, 전쟁이 발생한 나라 가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공연도 했고 그랬어요. 지금까지 계속 드럼만 했고, 성용밴드에는 작년에 합류했어요. 밴드보다는 페이를 받고 연주를 해 주는 생활에 익숙하긴 한데, 그래도 나이를 더 먹기 전에 밴드를 한번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성용이랑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어요.
넬슨 : 저는 필리핀 출신입니다. 1991년에 한국엘 왔고, 저 같은 필리핀 뮤지션들끼리 팀을 결성해서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이태원이나 호텔 같은 곳의 클럽 무대에도 자주 올랐어요. 기타리스트 김도균(백두산) 등의 앨범에서 세션 연주도 하고요. 주로 세션 활동이 많았네요. 성용밴드엔 올해 초 합류했습니다,

원래 성용씨는 솔로 앨범을 냈었잖아요?
성용 : 음악 하는 사람은 자신의 앨범 내고 싶기 마련이죠. 저는 어릴 적 밴드에 대한 로망이 있었지만, 제 밴드를 온전히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는 못했었어요. 솔로 앨범은 막연히 “어찌 되든 하나 내서 이름은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기회가 닿아서 내자마자 그룹 결성하게 된 거에요. 앞으로도 밴드를 계속 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지금 밴드 음악이 비슷비슷한 면들이 좀 있죠. 그래서 전 음악에 있어서 아이디어를 많이 쌓아두고 장르는 굳이 정해두지 않고 할 생각입니다. 아직 팀 앨범이 없는데 지금 한창 작업 중에 있고, 빠르면 올해 말 디지털 싱글 낼 생각입니다. 내년 활동도 그 디지털 음원에 기반해 하게 될 것 같아요.

[버스킹 인 인천] 공연 때 보니 스타일이 록 음악이던데요?
성용 : 월미도에 모이는 불특정 다수는 연령대가 다양하잖아요? 그래서 레퍼토리도 많은 분들이 알 만한 것으로 준비했어요. 그런데 홍대 등에서 공연을 하면 레퍼토리는 또 달라져요. 처음엔 제 솔로 앨범의 곡들을 위주로 하다 보니 록 음악 치고는 데시벨이 약하다는 생각이 좀 들어서 기타리스트 영입 후에 좀 더 록 음악답게 바꾼 부분도 많고, 또 제가 본디 록 기타리스트 출신이니까 그런 영향도 좀 있을 거에요.

당시 무대 시스템이 좀 열악했는데 프로답게 열연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어요.
성용 : 노하우는 많이 있죠. 아직 20대인 기타리스트를 제외하면 밴드 멤버들이 적어도 20년 이상 해온 베테랑들이고 기타 치는 친구도 경력이 아주 많은 편이죠. 그게 우리의 장점 같아요. 밴드로서의 노하우는 무대를 많이 서보는 것 외에 다른 경험을 통해서는 쌓을 수 없거든요. 저만 해도 밴드 공연을 한 횟수가 800번이 넘거든요. 90년대에는 인천서 1년 내내 열린 [365일 마라톤 콘서트(인천서 열린 기획 콘서트 중 지금도 간간이 회자될 정도로 화제가 됐었다)]도 했었으니까요. 물론 제가 보컬이 아닌 기타리스트 출신이라 모니터링 시스템이 불안하거나 하면 보컬엔 좀 영향이 있기도 해요.
신드럼 : 많이 해야죠.
성용 : 우리 멤버들이 말주변이 별로 없어요. (웃음)

멤버들이 다 다른 음악을 했는데 어떻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을까요?
성용 : 그렇죠, 저나 기타리스트는 오직 록을 했던 사람이었고 옆에 넬슨은 팝, 드러머는 CCM 음악이었으니까요. 지금 여기 멤버들은 밴드 음악이 대중적인 면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 사하라 출신 우정주 형이 “독도메탈 할 거냐, 너희들만 알아듣는 음악 하면 안 된다”는 얘길 하기도 했는데 우리는 ‘대중음악인’이고 간혹 사람들이 알아보기도 하니까 트렌드를 맞추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만 해도 과거에 음악 하다가 군대 가니 알아보는 선임이 있었어요. 선임이 440E 팬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독자적인 스타일은 있어야겠죠, 하지만 그것에 너무 경도되어도 문제라고 봐요.

척박한 한국의 음악 시장에서 어떻게 계속 생존할 수 있었나요?
성용 : 대부분 그만두는 경우가 많죠. 인천 뮤지션들이 어디 가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실력들이 다들 좋았는데 그래서 지금도 그 점이 안타까워요, 인천만 해도 스쿨뮤직 안정모씨나 현 부활의 드러머 채제민씨, 김경호 밴드의 박창곤씨 등을 빼면 지금까지 활동하는 경우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사실 저도 생활이 넉넉하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오기로 버텼어요. 여기 넬슨과 드러머 형도 레슨 등 강의를 하고 세션이나 행사 등을 하면서 음악 신에서의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거에요. 아마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부천에서 야외공연을 하는 성용밴드.
 
성용밴드는 요즘엔 어떤 활동을 주로 하나요?
성용 : 공연도 하고, 지금은 곡 작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물론 멤버 별로 각자 활동도 있고요. 행사의 경우 지금 구성된 밴드로 많이 소화하려 하는데, 만약 주최 측이 다른 포맷을 원하면 드러머 형하고 포크 음악 하는 유니트 활동을 가끔 하기도 해요. 제가 언플러그드 같은 포크 음악도 좋아해요. 나중엔 이글스 같은 분위기의 밴드를 하고 싶기도 할 정도로요.

어디서 주로 공연을 하세요?
성용 : 인천의 경우 월미도에서도 많이 했고요, 클럽 [글래스톤베리]에도 종종 서요. 인천시에서 주최하는 축제도 자주 가는 편이고요. 요즘 인천시가 재정난에 있다 보니 축제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아서 안타깝긴 하지만요. 그 외엔 최근까지 인천밴드협회에서 무대지원팀장을 하기도 했고, 지금은 예전처럼은 자주 못하지만 협회 가서 자원봉사도 가끔 해요. 물론 서울이나 일산 등 인접한 도시에서도 공연을 종종 해요.

성용밴드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어떤 반응들을 주로 보이던가요?
성용 : 팬들은 무조건 좋은 소리 많이 해 주죠. 팔은 안으로 굽으니. (웃음) 그런데 간혹 냉정히 평가하는 분들이 있어요. 앨범을 듣고 온 분들은 앨범이 좀 올드한 느낌이라는 이야기도 하셨고요. 기본적으로 저희 밴드는 공연할 때 박진감 넘치게, 흥이 나게 하려 해요. 지금은 새로 곡을 쓰는 작업을 한창 하고 있는데, 트렌드에 맞출 생각도 많이 하고 있어요.
신드럼 : 공연마다 연령대가 차이가 있어서 극히 좋은 반응이 나오거나 한 건 사실 많이 없어요. 특히 월미도 같은 곳에서는 열광적인 부분을 기대하면 안 되는 것도 있고...(웃음) 나이든 분들은 록이나 저희 같은 밴드 음악에 좀 어색함을 느끼시잖아요. 그만큼 밴드의 무대가 우리나라에 많이 없다는 뜻이에요.
넬슨 : 관객 반응보다 저는 그냥 우리 팀에서 연주하는 자체가 좋아요. 저는 다른 팀의 세션 등도 자주 하는데 우리 팀하고 할 때가 제일 재미있거든요.
성용 : 넬슨 형이 우리 팀 들어온 게 아주 다행이에요. 제가 해외 팝의 정서를 전달하는 능력은 좀 떨어진다고 보는데 넬슨 형의 합류로 그게 보완될 것 같아요.

인천은 예전처럼 록 음악 문화가 활성화되어있지 않습니다. 아쉬움이 클 텐데요.
성용 : 당시에는 저같은 인천지역 뮤지션들이 서태지가 전혀 부럽지 않았어요. 글래스톤베리 운영하는 이진우하고 대화하면서 그런 얘기 많이 했어요. 옛날에는 공연하면 여고생 여자 아이들 비명소리가 많이 들리는데 지금 그 세대들은 다 방송국에 가서 음악프로 녹화 본다고. 그래도 서울의 홍대 같은 경우 1,500개가 넘는 팀들이 있어서 그나마 좀 상쇄가 되는데, 인천은 팀 자체가 없다보니 안타까워요. 실력을 좀 쌓았다 싶으면 서울로 떠나는 경우도 많고요.
신드럼 : 최근에 판교에서 추락사고 있었잖아요. 전 그런 것이 공연문화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야 뭐, 음악을 하는 것이 인기 얻어서 방송국에 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여태까지 그냥 자연스럽게 해온 거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사건 사고들 일어나고 경기도 안 좋으니 설 무대가 점점 없어지는 거죠. 우리한테 특별히 답이 있다 생각하진 않아요. 음악 하는 사람은 힘들다고 중도에 그만두지 말고 그저 열심히 하는 게 정답이에요.
성용 : 인천만의 아쉬움은 사실 아니에요. 제가 440E에서 활동하던 때는 핸드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잖아요. 그냥 합주실에서 합숙하면서 연습하는 게 전부였어요. “날 좋은데 공연 할까?” 하는 마음이 들면 어디든 악기 놓고 공연하고 그러다가 사람들하고 친해지고 그러던 분위기가 있었죠. 우린 그렇게 살아온 종자들이에요. 예전에 어떤 선배가 “머리 자르면 밴드 잘 키워줄게”라고 제안하면 “우리는 머리 안 자르고 그거 안 할래요”라고 할 정도로 자존심도 있었고요. 그러니까, ‘연예인’이 아니라 ‘음악인’이었다는 자부심요. 당시 안 좋았던 기억이 거의 없어요. 지금은 그에 비하면 음악 신이 산업적인 특성 강해서 우리 같은 언더그라운드 밴드들 입장에선 아쉬움이 크죠.
신드럼 : 제가 KBS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탑밴드]의 1,2회 전문심사위원이었어요. 장미여관도 제가 심사했죠. 그런 오디션 프로가 5~6년 사이 많이 생겼는데, 그런 데에 우연히 얼굴만 비춰도 행사 등에서 페이가 많이 늘고, 그렇게 나오면 대중들도 연예인 취급을 해요. 예전엔 마니아들끼리 소문나고 그런 거였는데, 지금은 매스컴에 나오고 연예인 취급을 받고, 안 나오면 아무 취급도 못받는 상황이죠. 그래서 후배들도 그런 부분에 영향 받고 연예인처럼 활동하려는 의도가 많아지는 부분이 있어요. 아쉽죠. 순수치 못하니까.
 
성용밴드, 왼쪽부터 넬슨, 신드럼, 서성용, 윌 리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성용 : 우리가 아직 소속사가 없으니 홍보에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소속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알아보고 있어요. 여러 관계자분들도 만나고 있고요. 내년에는 친분 있는 뮤지션들과 공연도 계획하고 있어요. 또 일전에 저희가 중국에 가서 우리 팀을 홍보하고 온 적이 있는데, 현지 관계자 눈에 띄어서 중국 공연도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고요. 밴드로서의 전국투어도 소망이 있어서 그 계획 역시 세우고 있습니다. 나이를 더 먹기 전에 미루지 말고, 계획했던 것들 이루도록 하자고 마음먹고 있어요.

인천시민에게 혹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지?
성용 : 인천시 공직자 분들에게 부탁이 하나 있어요. 예전엔 인천이 음악 문화가 강했던 도시죠. 우리는 그 문화를 부활시키고 싶어요. 그러려면 인천에 영향력이 있는 분들이 공연을 많이 여셔야 해요. 질을 따지고 하기 전에 일단 많이 해야죠. 여기 밴드들 서울로 떠나가는 분위기가 되면 그거 상당히 아쉽잖아요. 그리고 힙합이나 댄스 뮤직도 물론 훌륭한 음악이지만, 트렌드가 그러하다고 너무 그쪽으로 경도되지 말고 밴드 무대도 다양하게 형성해 주었으면 해요.
신드럼 :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같은 큰 무대 보면 참 훌륭해요. 그런데 그런 것 말고도 작은 무대라도 자주 열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인천은 공연장이 문제가 아니라 공연을 열어주는 분들이 많지 않아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성용 : 예전에 송영길 전 시장님이 [글래스톤베리] 클럽에 오신 적이 있어요. 인천을 공연 많이 열리는 도시로 만들겠다 약속했는데, 낙선하셔서 안타깝더군요. 지금 시장님께서도 관심 좀 많이 가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또한 인천밴드협회가 사단법인이 아직 되지 못했습니다. 사단법인이 시급하다고 봐요.
 

인터뷰 현장에서의 성용밴드. 왼쪽부터 서성용, 넬슨, 신드럼. (윌 리는 참여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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