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시민’ 케어도 우리 몫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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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시민’ 케어도 우리 몫이죠.”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1.04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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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④-콜센터 상담원
상담전문가들은 감정노동자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고객이 내 앞에서 욕을 했을 때 그 욕이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상기하라.”

“욕하는 고객을 대하기에 앞서 ‘누가 우리에게 욕설을 한다고 해서 우리의 존엄성, 소중함, 고귀함, 아름다움이 손상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라.”

“우리는 고귀하고 아름다우니까 고객이 욕을 할 때 ‘이게 날 뭘로 보고!’라고 생각하지 말고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혹시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라고 말하라.”

 
(자료사진 출처=제주인뉴스)

불량고객을 만났다고 누구나 고통 받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무례가 상처를 유발하는 직접적인 요인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과의 만남은 지혜를 기르고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쌓는 고마운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정신무장(?)을 한다고 해도 ‘그 순간’ 상처받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연륜이 있고 경험이 깊어도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친절과 존중을 원한다.

한국통신(114) 상담원부터 우체국콜센터, 서울다산콜센터, 인천미추홀콜센터까지 10년 이상 상담원으로 근무한 진선희(가명.33) 씨를 만났다.

진선희 씨는 관공서만 찾아다녔다. 일반 콜센터는 아웃바운드(전화를 걸어서 영업하는 형태)가 많지만 관공서는 인바운드(고객서비스 사업)를 주로 행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틀이 있고, 책임질 수 있는 상급기관이 있으니 상처에 대한 부담이 적다.

진 씨도 통신사에서 잠깐 아웃바운드 업무를 한 적이 있다. 고객에게 싸늘하게 거절당했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감정노동자로서의 훈련은 됐을지 몰라도 지속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관공서는 ‘문의할 게 있는’ 자가 전화를 거는 구조라 상담자 입장에서는 근무하기 편하다.

편하다고?
정말?


누군가 전화를 걸어 “나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말한다. 느낌이 좋지 않지만 이쪽에서 먼저 “자살을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상대가 정말 힘들어하는 게 느껴지지만 상대가 ‘힘들다’, ‘죽고 싶다’,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말해야만 ‘생명의전화’로 연결해줄 수 있다. 이런 경우 표현을 달리 해서 물어야 한다. “지금 본인이 위기라고 느끼세요?” 맞다고 하면 상담사를 연결한다. 진 씨는 올해 들어 (그런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다시 전화를 걸어 너랑 이야기하겠다고, 왜 자꾸 전화를 돌리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 치료나 전문적인 상담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한 번은 나 죽는다고, 죽을 거라고 전화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 생각하지 마시라고,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주무시고 힘 내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죠.”

전화를 건 시민은 “나 죽으란 소리지? 알았어, 죽을게.” 대답했다. “시민님, 그게 아니고요.” 상담원은 심히 당황스럽다. “알았어, 죽을게, 끊어.” 전화를 끊어버린 시민. 진 씨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해 112에 도움을 요청했다. 전화번호로 주소를 확인해 찾아갔더니 시민은 태연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런 경우에 오히려 경찰을 불렀다고 역정을 내는 사람도 있다.

“걱정돼서 한 일인데 시민이 불만만 어필할 때는 서운하죠. 그런 게 감정노동자의 비애인 것 같아요.”

상담원은 어떻게 시작했나?

진 씨는 고교 졸업 후 오빠 친구의 소개로 한국통신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는 휴게실에 침대도 있고 (지금과 비교해) 센터 내 복지시설도 좋았다. 명절 때 화장품 같은 사은품이나 보너스도 많이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오히려 요즘이 더 일하는 기계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미추홀콜센터는 낮근무, 저녁근무, 밤근무,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진 씨는 저녁근무를 맡고 있고, 평일은 오후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주말은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 일한다. 일주일 2회 휴무는 자기가 정할 수 있다. 낮근무보다 저녁근무가, 저녁근무보다는 밤(야간)근무를 할 경우 급여를 많이 받는다. 진 씨도 2년간 야간에 일했는데 오후 7시 출근, 오전 8시에 퇴근했다. 급여는 기본급+인센티브 형태로 지급되기 때문에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야간근무는 자영업을 하거나,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아이를 키우거나, 낮에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주로 일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쌍둥이 엄마도 있었다. 하룻밤 일하고 다음 날은 쉬는 격일근무 형태였다.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진 씨는 상담에 관심이 많았다. 심정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는 괜히 욕먹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어느 정도는 인생 공부도 된다. 진 씨는 다시 한 번 ‘아픈 사람’이 너무 많은 게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 여자 시민이 아시아경기대회 티켓 예매방법을 묻는 전화를 걸어왔다. 예매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오케이티켓 사이트 오른쪽에 보면 물범 세 마리가 있는데요, 거길 클릭해서 종목별로 선택할 수 있어요.”
“물범이요? 물범은 없는데요.”
“네? 그럼 뭐가 보이세요?”
“물범은 없고 곰만 있네요.”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한 뒤 직접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했다. 아시아경기대회 마스코트인 물범이 여러 포즈와 도구로 경기종목을 표현하고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곰처럼 보이기도 했다. 진 씨는 시민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곰 같이 생긴 물범이 많네요."
시민은 큭큭, 웃더니 “아니, 정말로 곰이에요.” 주장했다.

일반 콜센터와 비교해 어떤 점이 다른가?

인천시민을 위한 콜센터이기 때문에 제품판매, 영업 콜과는 다르게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 시 구정 전반에 대한 업무이해와 내용숙지는 기본이고 인천시 행사 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진 씨는 정보를 빨리 알 수 있어서 그 부분에서 도움도 된다고 한다. “신문을 꼼꼼히 보지 않으면 승용차 요일제 운영 등은 알 수 없잖아요. 먼저 알고 안내해야 하는 처지니까 정보력이 빨라요.”

최근에는 아시아경기대회에 대한 고객 불만이 많이 접수됐다. 아시안게임을 왜 했느냐, 서구 주경기장 건축은 왜 했느냐, 인천시 재정난에 대한 책임을 시민에게 돌리기도 한다. 언론에 소개된 걸 보고 전화해서 시민으로서 불만사항을 얘기하기도 한다. 상담원은 시민의 의견을 접수해서 조직위에게 이런 이런 민원이 있었으니 체크, 검토하고 시정해달라고 전달한다.

그밖에 맨홀 뚜껑이 열려 있다든지, 도로에서 물이 올라오고 있다는 누수신고 등은 최초 신고자한테 포상금도 준다.

“유기동물 사체처리는 각 구청에서 하고 있는데 시민이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구청별로 지정 요일제가 있어, 요일별로 밤 9시까지 업무하는데 그것도 홍보가 많이 안 됐죠.”

가장 힘든 점은?

무엇보다도 콜센터이기 때문에 감정노동자로서의 스트레스가 많다. 푸는 방법은 딱히 없다.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

“시대가 변하면서 아픈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시대적 문제거니 하고 넘기게 되거든요. 콜센터나 상담원에게 악의를 갖고 전화하는 분은 없거든요. 풀 데가 없어서 그런 식으로 해소하는 것 같아요. 강성 민원(심하게 욕을 하는 등 상담원을 힘들게 하는 시민)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지만 안타까운 사연도 있어요. 자녀 두 명이 모두 희귀성 난치병을 앓고 있는데, 1년에 1번씩 재검을 해서 지원대상자를 뽑나 봐요. 해마다 검사하는 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난치 판정을 받았으면 계속 지원해주면 될 텐데 1년에 한 번씩 가슴을 아프게 한다는 거죠.”

진 씨는 그 경우 시행처가 보건복지부라 인천시가 도움을 주긴 어렵지만 재선정 기간을 축소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하소연할 곳이 필요했던 아이 엄마는 울면서 감사하다고, 화가 나서 연락했던 것뿐이라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희끼리 ‘팔 아픈 아저씨’라고 부르는 분이 계세요. 1년쯤 됐는데 잊을만하면 전화를 걸어 팔이 아파서 취직 안 된다고 얘기해요. 동 주민센터, 구청, 인천시 일자리지원센터 등에 연계해줬지만 사실은 ‘팔 아픈 것’이나 ‘취직’은 핑계예요.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예요.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예요. 외로움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궁금증이나 전달사항을 갖고 전화를 거는 경우가 60%라면 ‘아픈 사람’의 콜은 40% 정도 된다. 적지 않은 비율이다.

예전에는 집에 가서도 근무 중에 받았던 전화가 생각나고, 억울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별로 안 그런다. 이 사람들이 왜 이럴까, 어느 때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해하는 면이 많아졌다.

좋지 않은 콜을 받았을 경우 다음 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람이다 보니 친절하게 말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심한 욕을 들으면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컨트롤이 안 된다. 그 자리에서 혼잣말로 하소연 하거나 하면 옆 사람에게도 심적인 부담을 주게 된다. 대부분 공감을 해주지만 심한 욕설을 들었을 때는 계속 상처가 돼서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으니 그걸 못 견뎌 오래 일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마음이 넉넉하고 이해심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나이가 너무 어린 사람은 그런 부분에서 많이 힘들어하기도 해요. 꼭 나이 때문은 아니겠지만 젊은 사람들은 성질대로 하다가 그만두는 경우가 많거든요. 연륜 있는 사람이라고 욕먹지 않는 건 아니에요. 때로 나이 어린 사람한테 왜 욕을 먹나, 욕 먹을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하며 상처받기도 하죠. 하지만 살아온 경험으로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요.”

예전과 달리 지금은 무조건 친절하게 해야 한다는 강요는 많지 않다. 하지만 감정교육이나 공감교육에 대한 디테일한 케어가 없어 이따금 기계처럼 일하는 노동자로 느껴지기도 한다. ‘강성민원’, ‘블랙시민’에 대한 대처도 상담사의 몫이다. 동료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이해해줄 때가 많다.

시, 상습적인 폭언, 욕설, 성희롱 등
악성민원 법적조치하기로


인천시는 120미추홀콜센터로 걸려오는 민원전화의 언어폭력 심각성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 오는 12월 1일부터 상습적인 폭언, 욕설, 성희롱을 일삼는 악성민원에 대해 법적조치 등 강경 대응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앞서 11월 한 달을 계도기간으로 정해 악성민원전화 유입을 사전에 차단하기로 했다.

언어폭력이 심한 악성민원전화는 매달 평균 약 390건. 시는 상담원들이 따로 보고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참고 넘기는 사례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상당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시는 상담매뉴얼 및 ARS 경고멘트를 정비해 사전 차단을 위한 예방활동을 실시하고, 성희롱 등 유형별 대응지침을 마련해 고소/고발 등 법적조치를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상담사 보호를 위해 근무여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심리건강 상담교실 확대 등 힐링 프로그램을 마련해 업무스트레스 경감에도 주력할 예정이다.

[인천in] 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다음 회는 15년차 미용사 오 모씨의 이야기를 전한다.


다음 기사 예고
[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① 한국인 대다수가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② 간병인 조모씨, “딸 같은 간호사가 무서워서 벌벌 길 때도 있어요.”
③ 대형마트 캐셔, “고객이 늘 왕이나 공주일 수는 없어요.”
④ 미추홀콜센터 상담원, “‘블랙 시민’ 케어도 우리 몫이죠.”
⑤ 헤어디자이너, “기술과 감정을 같이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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