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기가 참 힘듭니다”
상태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기가 참 힘듭니다”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1.25 04:0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경 앞에서 1인 시위하는 ‘리멤버0416’ 엄마들

인천에 사는 엄마 5명, 아빠 1명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구 해양경찰청 앞에서 시위를 한다. 소리 높은 외침도, 떼 지은 무리도 없고, 패널 몇 개가 전부인 조용한 1인 시위다. 일주일에 한 번 요일을 정해 나온다고 하지만 과연 쉬운 일일까. 시위를 끝낸 오후 1시, 해경 앞 카페에서 최영이, 김경옥 두 엄마를 만났다.

▲ 24일 오후 최영이 씨가 13개월 된 셋째를 안고 송도 해양경찰청 동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최영이 씨는 ‘리멤버0416’ 멤버인 오지숙 씨의 활동 모습에서 용기를 얻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시민단체 회원이에요. 여기 회원들이 세월호참사 직후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했는데 거기서 그 분(오지숙 씨) 얘기를 들었어요. 새정치민주연합 당사 가서 정치인들을 꾸짖는 기사도 보고, 한겨레 ‘이진순의 열림’에 실린 기사도 봤죠. 그걸 보고 용기를 얻었어요. ‘리멤버0416’ 밴드에 가입하고 인천에 사는 분들을 알게 됐죠. 몇몇 분이 신세계 앞에서 피켓 들자고 올렸고, 같이 할 사람을 찾았는데 제가 합류했어요. 신세계 앞에서 2주 정도하다가 장소를 해경으로 옮겼죠. 오지숙 씨를 포함한 ‘리멤버0416’ 회원들이 MBC, KBS, 국회, 광화문, 대검, 대법원 등을 거점으로 두고 시위를 하고 있어요.

해경 앞에는 10월 초부터 나왔다. 엄마들 사정에 따라(요일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대개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자리를 지킨다. 최근에 합류한 남자 분은 오지숙 씨 페이스북 친구로, 옥련동에 거주하는 60대 퇴직자다.

기자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최영이 씨는 아이를 가슴에 안은 채 바닥에 패널을 세우고 서 있었다. 취재 약속을 잡으면서 최 씨가 간석동에 산다는 걸 알았다. 아이도 있는데 간석동에서 송도까지 패널을 들고 이동한 걸까?

“패널은 근처 아이쿱생협 ‘자연드림 송도점’에 맡겨요. 다행히 사장님이 이해해주셔서 조금 수월하게 할 수 있죠. 오늘은 새로운 패널을 하나 들고 오느라 조금 힘들었어요.”

최영이(36) 씨는 고1, 초5 그리고 13개월 된 늦둥이 엄마다. 함께 나온 김경옥(47) 씨는 고등학교 2학년 아들과 중3 딸이 있다.

“큰애가 고2인데, 사고 나기 3주 전에 제주도에 갔다 왔어요. 책상 위에 그때 찍은 단체사진이 있죠.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사고도 있었지만 세월호가 가장 충격적이었어요. 이전의 사고는 최선을 다했지만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이번에는 손 놓고 애들을 죽게 만든 거잖아요. 아들 책상 위에 있는 사진을 보면 단원고 애들이 생각나요. 그동안 서명운동도 하고 현수막걸기도 했어요. 고통스러워서 그냥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김경옥)

혹시 이들의 시위가 불편하다며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을까? 지지를 표명하며 힘이 돼주는 사람은 있을까?

“가슴 아픈 일인데 잊히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고 말해요. 60대 어르신이었는데, 왜 배를 인양하지 않느냐고요. 주변에 이런 얘기 하면 경계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시민의식이 깨어야 한다고 털어놓기도 해요. 인문학 강의 같은 게 있으면 듣고 싶다기에 제가 아는 강좌를 소개해 줬어요. 음료수나 커피 사다주면서 나 같은 사람도 해야 하는데 대신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분들도 많아요.”(최영이)

“세월호법이 통과되기 전에는 미안한 감정을 숨기는 듯한, 착잡한 얼굴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세월호법이 통과되고 나니 짜증난다, 통과됐는데 아직도 저러나, 표정에서 그런 게 느껴져요. 엊그제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더라고요. ‘쳇’하는 소리를 입 밖에 내면서 비아냥거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해경 직원은 그러면 안 되죠. 서 있는 건 안 힘들지만 그런 사람들 보면 화가 나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죠.”

“인상적이었던 할머니가 계셨어요. 30분도 넘게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서 패널 하나하나 꼼꼼히 읽더라고요. 문구 중에 ‘그날 아이들의 절규를 들으셨죠?’ ‘부모는 왜 아이가 죽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같은 문장이 있거든요. 할머님이 그 심정 안다면서, 다 키운 자식을 먼저 보내면 평생 부모가 어떻게 사는지 안다고 하시더라고요. 남편이 퇴역군인으로 연금 받고 나름 편안하게 사시는 것 같았어요. TV조선을 주로 보는데 텔레비전에서 하는 말이랑 다른 쪽에서 하는 말이랑 다르니 혼란이 오는 거죠. 감정적으로는 우리가 하는 말에 끌리는데 헷갈리는 거예요. 눈물을 글썽이시더라고요. 마음이 정말 고맙다면서. 할머님 오빠가 7년 만에 무남독녀를 낳았는데 4년 살고 병으로 죽었대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죽은 딸을 그렇게 그리워하다 하셨다고...”(김경옥)
 

▲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이름을 바꾼 송도 해양경찰청 본사.

동네 어른에게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거나 “고맙습니다”, “힘내세요”하는 고등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모피를 걸치고 ‘흥’ 하는 이상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어른도 있다. 시위를 하기 전과 후, 생활의 변호가 생겼을까. 달라진 점이 있을까.

최영이 씨는 “집에 있으면 뭔가 마음에 걸리고 답답했어요. 지금은 바쁘지만 마음은 더 편해요”라고 했다. 최 씨는 6명의 시위 멤버 중 가장 젊다. 30대는 최 씨뿐이고, 아이를 데리고 오는 사람도 최 씨뿐이다. 옆에서 김경옥 씨가 “한두 번 하고 안 나올 줄 알았다. 의지가 대단하다”고 지켜 세운다. 지금은 휴직 중인데 내년에는 막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게 될 것 같단다. “3년 동안 하기로 하고 카운트 숫자도 네 자리로 만들었는데 저 대신 누군가 해주길 바랄 뿐이죠.”

가족들 반응도 물어봤다. 최 씨는 “이제 봤더니 현실적인 남자더라고요. 자주 나간다고 안 좋아해요”하며 웃었다. “크게 지지하지도 않지만 발목 잡고 못 나가게 하는 것도 아니에요.”

김경옥 씨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사회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뉴스도 안 보고 태평하게 살았다. 아파트 엄마들하고 백화점 쇼핑 다니고, 김치 담그면 같이 막걸리 마시고, 애들 학교 쫓아다니곤 했다. 광우병 때 이건 아니다 싶어서 ‘손피켓’을 만들어서 초등 2,4학년 애들을 데리고 광화문에 갔고 이후 ‘속속 터지는’ 일들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이것만 지나가면 잘 되려니 했는데 아니에요. 부정선거에 세월호까지 너무 괴로워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기가 참 힘듭니다.”

최영이 씨는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사회에 나왔다’. 예전에 설계회사에 다녔는데 남녀차별이 심했다. 최 씨가 한 설계인데 여관비가 아깝다는 이유로 지방출장에 다른 남자직원을 데리고 간 것이다. 그날 최 씨는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울었다. 그 회사는 노조가 없었는데 이후 옮긴 공기업에 노조가 있어서 바로 집행부에 가입했다. “강성노조도 아니고 내부적으로 활동하는 정도인데 말단 사원인데도 집행부에 들어갔어요. 오지랖이죠.”

마지막으로 [인천in]이나 사회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지역의 다양한 소식, 비판할 만한 사안을 많이 다뤘으면 좋겠어요. 제가 가입한 밴드에 매일 올라오는 주요뉴스를 봅니다.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는 지하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힘들지만 누군가 움직이는 사람이 있으니까 변하는 것 아니겠어요?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할 것 같아요. 작은 일부터 움직이다보면 세상이 변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아서 하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이런 마음으로 1인 시위를 하러 나옵니다.”(김경옥)

“지역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더 많이 전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하는 1인 시위로 세월호 진상 규명에 바람이 일었으면 좋겠어요. 현수막, 서명, 집회 등 지역 지역마다 바람이 일어서 지속적으로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합니다.”(최영이)

▲ 최영이 씨와 김영옥 씨. 가운데는 최영이 씨 셋째 아이.(13개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옥련동여사 2014-11-25 02:11:09
"집에 있으면 뭔가 마음에 걸리고 답답했어요. 지금은 바쁘지만 마음은 더 편해요" 라는 말.. 알거 같아요. 응원합니다. 건강은 챙기시고요..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