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치인과 공직자의 ‘너무 느슨한’ 음주운전 관념 -> 월
상태바
[기자수첩] 정치인과 공직자의 ‘너무 느슨한’ 음주운전 관념 -> 월
  • 배영수 기자
  • 승인 2014.12.07 1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 음주운전 삼진아웃제에 “심하다” 황당 발언
올해 이 물건들은 또 얼마나 공직자와 정치인들을 인사불성으로 만들고 운전대를 잡게 할 것인가.

기자는 지난 11월부터 의회에서 본회의를 비롯한 각 상임위원회 회의를 종종 들어가 보고 있다. 민선 6기 의원들 활동하는 것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들의 말과 습관, 제스처 등 면면을 유심히 파악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기에 겉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내심 시간이 되는대로 들어가 보고 있는 중이다. 특히 기획행정위나 문화복지위 소속 의원들은 기자와 얼굴을 마주친 적도 있을 거라 본다.
 
헌데 지난 11월 18일 기획행정위가 감사관실 대상으로 행정사무감사를 진행하던 때, 해당위 소속의 유일용 의원(동구2, 새누리당)이 정중석 시 감사관에게 공직자들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될 시 징계를 어찌 하는지를 질문하는 과정에서 “삼진 아웃의 적용 기간을 몇 년으로 해서 보는 것이냐”는 질문을 던졌다(현 공직자들의 음주운전 징계는 1회 경징계와 2회 중징계, 3회 직위해제 등으로 징계토록 하는 이른바 ‘삼진아웃’ 제도를 실시중임.). 이에 정 감사관은 “2012년 4월 30일 이후의 기간부터는 적발 건수를 해당 공직자에게 영구히 적용토록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 뒤에 반응을 보인 유 의원의 반응이 실로 '가관'이었다. 정 감사관의 답변을 듣자 “너무 심한 거 아니냐”는 발언을 한 것. 이 발언은 아직 이날 상임위의 회의록이 시의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지 않지만, 곧 회의록에 올라오게 되면 (누군가 ‘장난’을 치지 않는 한) 그 내용은 시민들께서 확인 가능할 것이다. 만약 의롭지 못하게 내부에서 누군가 그걸 삭제한다 쳐도, 18일 당시 기획행정위 회의장 현장 뒤편 의자에 앉아 있던 기자의 속기록과 스마트폰 녹취에 담겨 있어 이 발언에 대한 증거는 충분히 남아 있다.
 
기자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인천시를 대표해 활동하는 정치인의 입에서 음주운전에 대해 두 번이나 회생 기회를 주고 세 번째서야 아웃시키는 삼진아웃 제도를 “너무 심하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기자의 귀엔 도무지 정상적이지가 않아 보였다. 정 감사관도 그 반응이 황당했는지, “국가의 표준안이기도 하다”고 냉정히 답변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었다.
 
인천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 회의 모습.

음주운전에 대한 시민 및 대중들의 판단은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실상의 공인’들이다. 일각에서는 연예인을 자꾸 공인이라 부르지만 그들은 시민 혈세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엄연히 ‘개인’이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적용되는 음주운전에 대한 대중들의 ‘사실상 징계’는 상당히 엄격하다. MBC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상/하반기에 각각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하차한 가수 길(본명 길성준)과 방송인 노홍철은 지금까지도 TV에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대중들이 그들에게 내리는 철퇴가 막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자와 같은 언론인도 마찬가지. 최근 방송국 OBS의 노조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김학균 OBS 보도국장에 대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책임을 물어 해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보도국장은 지난 10월 27일 밤 11시 경 인천 계양IC 부근을 지나다 경찰 단속에 걸려 혈중 알콜 농도 0.09% 판정으로 면허정지 100일을 받은 바다. OBS 노조는 "OBS 보도를 책임지는 보도국 수장이 사회적 지탄이 큰 음주 운전을 한 것은 OBS 보도의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행위"라며 "이는 지역사회와 시청자의 신뢰를 크게 저해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책임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이렇게 음주운전에 대해 대중들이 엄격한 자세를 취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음주운전은 잘못하면 타인의 목숨도 앗아갈 수 있는 중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운전면허를 획득하기가 너무 쉬운 나라라서 그렇기도 하고, 한국인들 중에서도 특히 40대 이상 세대들이 아직 음주운전에 대해 ‘관대한 분위기’에 취해 있어 체감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음주운전 등 잘못된 운전습관을 가진 사람 때문에 소위 ‘애먼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MBC [무한도전]의 11월 15일자 방송에서 노홍철의 음주운전과 관련해 출연자들이 시청자 사과를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길과 노홍철 등은 연예인으로 사실상 ‘가짜 공인’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 번에 방송가에서 그냥 ‘아웃’이 되고 만다. 그런데 그보다 더 공인에 해당하는 공직자들은 두 번까지는 징계 받는 것으로 용서가 된다. 정치인들은 아예 죄의식이 없는 경우도 수두룩해서 소위 ‘걸린 놈이 계속 걸리는’ 행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거꾸로 서민들과 가짜 공인들에게는 엄격하고, 더욱 엄격한 공인들에게는 이리 관대한, 정말 무언가 이상한 나라다. 차라리 폴이나 앨리스가 간 이상한 나라가 더 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말이다.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이 음주운전에 대해 받는 징계는 한 마디로 ‘그 정도면 감지덕지’인 것이지, 절대 심한 것이 아니다. 삼진아웃이 아니라, ‘원 스트라이크’로 그냥 아웃을 시키고 제도적 장치를 걸어 다시는 그 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러고보니 올해도 이제 연말이다. 각종 술자리가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을 또 부를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분명 별 죄의식 없이 술에 취해 운전대를 잡고 거리를 폭주하는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분명 나올 것이다. 그 자체에 거리낌이 없을 게 분명하고 최소 두 번은 봐준다니 얼마나 막 나가겠는가. 언제쯤 이 나라는 공인들에게 엄격한 나라가 되어, 음주운전 삼진아웃에 대해 “너무 심하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는 정상적인 나라가 될 것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