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틀려도 돼. 다만 너희의 진심을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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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틀려도 돼. 다만 너희의 진심을 들려줘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2.14 23:03
  •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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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18개 모둠으로 만난 학교 이야기


“무대에서 부끄러워하면 게임에서 지는 거다. 이건 너희와 관객의 게임이야. 관객들은 너희가 실수했는지 모른다. 역할에 충실하면 관객은 최고로 집중하게 돼있어. 자신 있게 틀려라. 오케이?”

신운섭 예술강사는 발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기죽지 말고 자신 있게 틀리라고 강조했다.

신 선생님은 3년째 계산고에서 예술강사를 맡고 있다. “총 12개 반을 절반으로 나눠 1학기에 6개반, 2학기에 6개반에서 수업을 합니다. 한 학기에 열두 번 내외로 수업을 하는데 두 번 발표회를 해요. 지난번에 ‘연극언어의 이해’를 무대에 올렸고 이번이 두 번째예요. 학교 이야기로 아이들이 직접 스토리를 짜고, 역할을 정하고, 소품 등을 준비했습니다.”

신 선생님은 연극을 잘 만들었는지, 연기를 잘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친구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나누는 데 의미가 있다.

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 요청하면 센터에서 강사를 파견해준다. 센터는 문체부 지원으로 움직이고, 학교에서 부담하는 건 없다. 계산고는 ‘창의적체험활동부’라는 이름으로 2학년 대상, 3년째 주1회 연극 수업을 하고 있다.

이날 수업발표회는 2학년 3개 반 각각 6개의 팀이 참가, 총 18개의 모둠이 발표했다. 한 모둠 당 5-6명의 아이들이 참여했고, ‘학교 이야기’라는 주제 내에서 아이들이 창작한 3분 내외의 짧은 연극을 선보였다.

가장 인기 있는 소재는 야튀(야간자율학습 째는 이야기)와 급식(매점) 새치기였다. 그밖에 교장이 바뀐 뒤 축제가 축소된 데 대한 아쉬움을 마임 형식으로 표현하거나 슬로우기법을 활용한 슬리퍼던지기 게임, 게임캐릭터를 활용해 학생과 선생의 특징을 묘사한 극이 소개됐다.

대부분 코믹하게 꾸몄지만 그 안에 ‘뼈’가 있는 것도 많았다. 게임에 빠진 학생을 그린 연극의 마지막에 진중한 내레이션으로 “인생을 다시 시작하겠습니까?”라는 멘트가 사용되는가 하면, 축제 문제로 교장을 만나고 싶은 아이들의 좌절을 그린 이야기의 결말은 “왜 우리 말을 안 들어주십니까?”라는 서글픈 질문으로 끝이 난다.

한 친구가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자 도미노처럼 친구들이 쓰러지고, 그걸 알면서도 1등을 위해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학생, 아무리 ‘내가 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 선생님 때문에 고통 받는 학생의 이야기 등은 ‘2014년 대한민국 인천’에 사는 아이들의 현실과 세계를 엿보기에 충분했다.

18개 모둠의 마지막 발표에서는 참여 학생 모두가 인기 랩 가수 바비의 ‘연결고리’를 열창하며 끼를 발산하고 스트레스를 풀었다.

배우 못지않은 연기를 펼친 모둠도 눈에 띄었다. 옆 친구의 괴롭힘(쿡쿡 찌름)에 감정이 폭발해 격하게 울분을 토하는 학생 역을 맡은 아이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이가 오해를 받고, 선생은 그 아이의 말을 믿지 않고 체벌하려고 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같은 반 친구가 마지막에 “학교가 왜 이래. (선생에게)너도 똑바로 해. 제대로 가르치란 말이야.”라고 말하는데 자기가 맡은 역할에 충실해 감정몰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각 반의 발표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의 박수로 관객심사상을 선정했는데 이 팀이 단연 최고의 호응을 얻었다.

다만 인기가수의 공연을 보기 위해 아이들이 버스를 타는 과정에서 하필이면 ‘장애인용카드’를 줍게 되고, 아이들이 몸을 배배 꼬며 ‘아픈 사람’ 연기를 하는 모습에서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장애인을 비하하는 느낌이 들어 불편했다. 강사는 “준비 시간이 부족하고 대개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 많아 꼼꼼히 체크하지 못했다. 그 동작이 어떤 움직인 줄로만 알았다. 왜 장애인버스를 타는 걸로 설정했는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겠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연속 두 번씩 연기했다. 반복하는 이유에 대해 신운섭 예술강사는 “그 과정에서 실수를 고치고 좀 더 집중하게 되는 효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배우가 아닌 학생들 연기에서만 볼 수 있는 장점이다. 두 번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모둠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다시 할 때는 대사를 바꾸고 행동을 다르게 하는 등 더 재미있게 응용하면서 ‘연극적’인 형태로 만들어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난해 연극수업을 받고 올해 관객으로 참여한 이현석, 주승민(3학년) 학생에게 소감을 묻자 “재미있었어요. 감정이 풍부하고 목소리가 큰 애들, 평소에 잘 노는 애들이 (연극을) 잘 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 흉내 낸 애들 완전 똑같아요”라고 대답했다.

다른 친구들은 “우리 때보다 잘한 것 같아요.” “부끄러워하지 않고 활기차게 한 것 같아요.”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좋았어요.” “아이디어가 많았던 것 같아요.” “작년과 비슷한 내용이 많았어요.” “이해 안 되는 코드도 있었어요.”라고 느낌을 전했다.

서승택 선생님(한문교사, 교무부장)은 “지난번 발표 때보다 훨씬 잘한 것 같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어서 더 많은 아이들이 보지 못한 게 아쉽다”고 전했다. 인문계고에서 3년 연속 연극 수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내년에도 진행할 생각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서 선생님은 “또 지원할 생각이다. 입시에 찌든 아이들이 다양한 끼를 표출할 수 있고 연극을 통해 쉴 수 있는 면에서도 좋은 경험이 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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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디 2014-12-19 21:30:08
진짜 핵노잼 왜하는지모르겠음

갓산고 학생 2014-12-18 00:32:09
친구들과 함께해서 재미있었던것같아요, 나중에 또 이렇게 모여서 같이 해보고 싶네요. 내년엔 수능이 기다리고있으니 다음이란게 없으려나 ㅠㅠㅠ

('.')_)_)_)_)_)_) 2014-12-17 11:09:53
반도의 흔한 몸부림

김머중 2014-12-17 11:09:08
목포해상방위대 목포해상방위대 전라부대장을 맡고잇습니다

전라도사는 노무쿤 2014-12-17 10:35:14
연극이 너무 재미있어서 손발이 부들부들떨리고 배꼽이 밖으로 튀어나가서 빙글빙글 돌아가고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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