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게 나가면 시민들이 따라준다"
상태바
"용감하게 나가면 시민들이 따라준다"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5.01.11 2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5년이 기대되는 인천의 인물/단체 - ② 이만재 민족문제연구소 부지부장

‘나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리더의 슬로건이다. 리더는 미래에 매료돼 있다. 현 상태를 발전, 변화시키기 위해 ‘현실태’와 ‘가능태’를 충돌시킨다. 리더는 미래에 대한 이미지를 말하고, 생각하고, 반복해서 되새기고, 수정하고, 덧붙인다. 비현실적이고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보일 만큼 낙관적인 사람. 거창하게 시대를 앞세울 것도 없다. 우리 지역의, 내 주변의 리더는 누구인가.

사고가 아닌 사건.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 사건’의 발단과 전개 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5년이든 10년이든 싸울 각오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이만재(53) 민족문제연구소 부지부장도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한 경험으로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깃발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명 이름을 새긴 현수막이 신선하게 느껴질 거라고 믿었다. 리더는 겸손한 목표를 정하지 않는다. ‘낙관적이고’, ‘사람의 가치를 알았던’ 이만재 씨는 스스로 리더가 됐다.

그는 많은 인천시민들의 도움을 얻어 현수막을 만들었고 각 구청과 경찰서에 ‘세월호 캠페인’으로 집회신고를 했다. 한때는 혼자 관리하는 현수막이 300개 가까이 됐지만 훼손, 분실로 현재는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다. 문구를 시의성 있는 걸로 바꾸고, 50개, 100개 단위로 다시 제작해 계속 뜻을 이어갈 예정이다. 얼마 전 여야가 세월호 배/보상법에 최종 합의했지만 그걸로 된 걸까. 정말 괜찮은 걸까.

“오늘도 집회허가를 연장하고 왔어요. 대우자동차와 부평쉼터공원, 구산삼거리, 가정오거리 쪽에 아직도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120여개 남짓 될까요? 지난 9월부터 걸다보니 많이 시커메지고 낡아서 새로 만들기 위해 (문구 등)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만재 부지부장은 “우리 세대만 해도 나름 기득권이 있었다”고 했다. 민주화운동 하다가도 대기업에 갈 수 있었고 취직 걱정도 거의 하지 않았다. 경제규모가 커지는 시대여서 먹고 살 수 있었고, 더 잘 살게 되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대선에 지고 나서 (희망을 잃어버린 것 같아) 젊은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 와중에 ‘터져버린’ 세월호. 성년식도 치르지 않은 수많은 아이들이 방치된 채로 죽었다.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한 달 내내 밤마다 눈물을 흘렸어요.”


세밑, 그는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이따금 애절한 시가 생각났다. 신석정, 윤동주, 박인환 같은 시인들의 배경이 다시 보였다. 윤동주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노래했는데 제국주의에 저항하면서도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던 마음이 새롭게 느껴졌다. 논리 이전의 심정적인 어떤 것. 꿈틀거림의 목표는 하나였다. 사회를 바꿔야 한다. ‘전혀 다른 사회’로 바꿔내야 한다.

이해관계가 개입하고 직계 조직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에 반대했다. 모든 힘을 동원해 전체를 보고 가기로 했다. 세월호 캠페인은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았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공부방연합회 등등 신뢰를 기반으로 쌓은 단체에 20개, 30개씩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어느 때보다 자발적인 시민 참여가 많았다. 그동안은 그런 게 없거나 약했다. 이만재 씨는 세월호 이후 ‘전례 없이 많아졌다’고 확신했다. 전국적으로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것도 젊은 엄마들의 자각 덕분 아닌가. 소속 정당도 없는 교육감 후보를 엄마들이 꼼꼼하게 따져보고 찍은 거다. 거기서 희망을 봤다.

“주권자 의식을 갖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시민들, 이 층이 두터워져야 해요. 젊은 층과도 더 많이 소통해야 하고요.”


상상, 공감이 힘이다

“주어진 틀을 넘어서지 못하면 바꿀 수 없어요. 사고가 자유로워야 해요. 구상한 걸 현실화시킬 필요가 있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부분에서 상상해야 해요. 요즘 시민단체는 상상력, 역동성이 부족하죠. 아쉬운 부분이에요. 역동성을 가지려면 구상한 것 위에 상상을 덧붙여야 해요. 진보단체도 정의당, 노동당, 노사모 등으로 나뉘잖아요. 그걸 그대로 놔두면 도약을 못해요. 함께 갈 수 있는 매개 요소를 만들어서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상상력을 발휘해야죠. 그래야 힘 있게 몰아칠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다양한 사람들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지난해 말, 이만재 부지부장은 원로 사학자이신 스승을 찾아뵀다. “세상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답답하다”며 조언을 구했다. 스승님은 “용감하게 나가라. 용감하게 나가면 시민들이 따라준다. 이것저것 따지면 시민들도 잰다. 단, 철저히 준비해서 지혜롭게 나가라. 그래야 이길 수 있다”고 하셨다. 알아야 나설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다. 그는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한다.

<공감의 시대>를 언급했고, 요즘은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의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제레미 리프킨은 역사, 사회학, 심리, 자연과학까지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요. 공감과 협력은 동물 세계에 있는 본능이에요. 공감하지 못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죠. 인간적인 진보가 아닌 말로만의 진보는 아무 소용없어요. 이론에서 탈피하고, 외부에서 진보 이론을 끌어오지 않아야 해요.”

전태일 열사는 자기 버스비를 아껴서 여공들에게 빵을 사줬다. 어려움을 공감하고 실천한 것. 전태일은 7-80년대 노동 운동을 확산시키고 지식인을 각성시켰다. 세월호에 대한 공감 영역이 확장되고 체계화되면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을까? 세월호를 통한 공감에서 우리사회 변화의 길이 정리되지 않을까?


시민과 함께 가는 길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은 독일 관념 철학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일본의 영향일 수 있죠. 연역적 방식에 익숙한데 대체로 실패했어요. 대체로 모양만 바꾸는 식으로 결론 났죠. 영국의 경험적이고 귀납적인 방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틀을 먼저 만들어 놓고 사람을 맞추지 말자는 것이죠. 시민 속에 제대로 뿌리내리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제가 나아갈 근거는 젊은 층과 새로운 시민이에요.”

이만재 부지부장은 정당과 정파를 초월한 국민전선, 시민의 전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무엇을 새로 만들면 해결되고 대안이 찾아진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선'으로 나와야 한다.

“문익환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꿈을 꾸면서 치열하게 싸우셨죠. 몽상가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지만 몽상가가 아니라 선구자죠.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시민 주도, 민중 주도의 통일노선을 지향하셨어요. 민주와 통일의 길을 가면서 남북 모두를 껴안으셨죠.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그런 꿈을 꾸는 어른이 없어요. 저도 문 목사님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지난 대선 때 시민사회의 역량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알았다. 이래서 사회가 바뀌겠나, 개혁이 되겠나 하는 생각을 했고, 너무 많은 걸 보고 느꼈다. 보고 느끼고 고민한 사람이 나서야했다. 10년 15년쯤 건너 뛰어 젊은 세대, 후배들에게 좋은 걸 물려주고 싶다는 강한 바람이 있다.

“좀 더 거리로 나가야죠. 1인 시위 형식의 거리 홍보를 지속적으로 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어요. 해양경찰청 1인 시위도 오랫동안 이어 왔고, 부평역 세월호 피켓 홍보도 계속되고 있고요. 시민 정치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그 중심으로 가야 해요. 정당이 기능하기 힘든 상황을 시민의 활동으로 돌파해 나가야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