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함’에 공감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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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함’에 공감하는 당신에게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5.01.12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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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의 인천문화 관람기] 8-영화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프랑수아 오종의 신작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는 에드거상을 수상한 바 있는 추리소설 작가 루스 렌델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했다.

지난해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공개된 후 해외 언론과 평단은 "히치콕 영화를 보는 듯한 자유로운 섹슈얼리티", "부드럽고, 우아하고, 패셔너블한 프랑수아 오종의 새 영화", "거장다운 유쾌한 스타일“, "눈부신 연출과 반짝이는 내러티브" 등의 찬사를 보냈다.

(스포일러 있음)
둘도 없는 친구 로라를 잃은 후 시름에 잠겨 있던 클레어. 자기 아이를 돌봐달라는 로라의 부탁이 떠올라 오랜만에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가 거실에서 ‘낯선 여자’를 만난다. 로라의 옷을 입고, 그녀의 딸을 안고 있는 당신은 누구? 로라의 남편 데이빗은 어디에?

절친 로라의 옷을 입은 ‘낯선 여자’가 데이빗이라는 걸 안 클레어는 깜짝 놀란다. 불안하고 불편한 표정으로 도망치듯 나가려는 클레어를 붙잡고 데이빗은 (로라가 그랬던 것처럼) 클레어에게만 자신만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어릴 때부터 여자 옷에 관심이 많았어. 로라가 죽고 난 뒤 여자가 되고 싶다는 이전의 욕망이 되살아났어.”

‘게이보다 지독한 성도착자 데이빗.’(영화 속에서 클레어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숨겨오다가 “성도착자보다는 게이가 낫잖아?”라며 데이빗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털어놓는데(거짓말하는데) 클레어 개인의 판단인지 프랑스 문화의 일면을 반영한 건지 모르겠다) 그는 ‘생식적으로’ 분명 남자지만 여성의 옷을 입고 여자처럼 보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나뿐인 딸의 아빠도 되고 싶어하고 엄마도 되고 싶어하는 데이빗의 독특한 정체성.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부탁이야, 내 (유일한) 친구가 돼줘.”

클레어는 새 친구 ‘버지니아’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누구에게도 소개하지 않는 자기만의 ‘사적인’ 여자친구로. 그들은 동성의 우정을 나누면서, 미묘하게 이성적 사랑을 공유한다. 데이빗이자 버지니아인 그/그녀를 대하는 클레어의 감정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모호하게 그려진다.

클레어와 남편, 클레어와 데이빗, 클레어와 버지니아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시종일관 진지하다. 버겁다는 뜻이 아니다. 긴장감 속에서 드러냄과 감춤을 반복하는 인물들은 발칙하고 사랑스럽다. 영화는 관객보다 앞서 비판이나 동의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데, 그 점이 내가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해. 데이빗이 여자 옷을 입고 가발까지 썼더라고.”

교통사고를 당해 누워있는 데이빗의 장모가 병원에서 마뜩찮은 얼굴로 말한다. 다음에 덧붙여진 대사는 “남사스러워서 원”으로 번역되는데 ‘어떤 영문인지 모르지만’이 함축된 그녀의 대사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위를 믿고 있다는 마음이 포함돼 있다. 인간에 대한 세련된 존중.

포인트는 이거다.
금기에 함께 저항할 수 있는가. 비밀을 함께 나눌 수 있는가.

데이빗이 잠시 ‘여장’을 중단했을 때 클레어가 하는 말. “버지니아가 그리워.” 버지니아는 클레어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존재를 드러낼 수 있었다. 남자의 접근에 흥분했던 버지니아, 보고 싶다는 말에 다시 살아난 버지니아. 우리 모두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인정받고 사랑받길 바라는 ‘버지니아’다.

‘관습’과 ‘코드’를 애용하는(?) 감독이라면 차별받는 데이빗을 정면에 배치하고, 데이빗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영웅을 대립각에 세워 티격태격하는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약자와 영웅의 비현실적인 결합으로 해피엔딩을 맞았겠지. ‘안심하고 보는 영화’를 선호하는 분들에게는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를 추천하지 않겠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알고 세상에 대한 경외를 소중히 여기는 당신에게.

2015년 1월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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