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군거리는 청년들] ① 왜 다시 청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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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거리는 청년들] ① 왜 다시 청년인가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5.02.01 2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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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새 기획연재 - 프롤로그



다시, 청년이다

청년은 누구인가. 청년은 무엇인가. 진부하게 시작해보자. 청년의 사전적 정의 1.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 2. 성년 남자. 유의어는 ‘젊은이’, ‘꽃봉오리’라고 나온다. 한자어로는 靑年. 푸를 ‘청’에 해 ‘년’을 쓴다.

정말 그런가. 성장하거나 무르익었나. 성년인가. 청년은 푸른가. 쉽게 고개 끄덕여지지 않는 것은 나도 모르게 ‘한국의 청년’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인가. 나도 모르게 ‘그럭저럭 잘 사는’ 청년이 아닌 빈곤 청년을 연상한 탓인가.

많은 사람들이 청년세대, 혹은 젊음이 ‘내몰리고’ 있다고 말한다. 한 해 전에도 그랬고, 몇 해 전에도 그랬고, 십 년 전에도 그랬다. ‘아직도’ 이 땅의 청년들은 행복하지 못하다. 어느 대학 교수는 학기 중 학생과의 면담이 대화 주제 대부분이 ‘학점관리, 토익 토플, 오픽, 영어공부와 어학연수, 취업스터디, 자기소개서, 인적성 검사, 알바, 인턴, 공모전’ 같은 단어들로 채워진다고 고백했다.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관리를 하는 청년들은 ‘젊음’과 ‘꽃봉오리’와 ‘푸름’을 내던지고 스펙과 학력, 취업을 좇는다.

‘배타당하는’ 청년들

청년 문제를 ‘사회적 배제’로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청년들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정상적인 시민으로서 누려야할 권리에서 배제된 상태 혹은 권리를 행사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빈곤, 실업, 저소득과 같은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등 심리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청년들의 사회적 배제가 가장 크게 부각되는 것은 실업률일 것이다. 2014년 12월, 청년 실업률은 9%대. 역대 최고치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단기 계약직으로 취직한 청년 비중도 2008년 11.2%에서 6년 만에 2배 가까이 높아졌다. ‘미생’ 신드롬은 우발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수면에 가려져있었을 뿐, 지상파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않았을 뿐,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픈 청년들’이 존재하고 있다.

청년 실업자와 신용불량자를 더한 ‘청년실신’이라는 신조어를 아는지. 한 학기에 350만원 이상 하는 대학 등록금을 내려고 돈을 빌리지만 시급 5000-6000원하는 아르바이트로는 갚지 못해 (졸업하고 나면 원금보다 이자가 더 많아져) 신용불량자가 되고 마는 청년들의 사연이 슬픈 언어를 만들어냈다.

‘청년’ 호출하기

몇 해 전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88만원 세대론’은 청년실업과 사회의 양극화가 분석과 문화적 해석 차원이 아닌 실질적이고 긴급한 사회이슈임을 확신시켰다. 이전의 청년인식이 신세대와 감성주체, 촛불/광장세대의 명명에 머물렀다면 ‘88만원 세대론’은 경제적 모순과 양극화, 계급과 학력자본을 매개로 한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청년들의 위치를(위기를) 쟁점화하는 역할을 했다.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가둘 수 없는 청년세대들의 물리적 상황이나 주체형성 사례, 현실에 존재하는 복합적인 지표가 ‘88만원 세대론’ 이전에는 이슈로 나타나지 않았다. 혹은 어떤 세력에 의해 부각되는 것이 꺼려져왔다. 청년은 20대를 말하는가. 혹은 20대에서 30대 초반인가. 청년들은 어디에 있는가.

왜 다시, 청년인가.

‘푸르지 않은’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겠다

청년세대는 스스로 말할 수 없다. 기성세대가 386세대를 만들고, 386세대가 신세대를 만든 것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청년(세대)’을 말하고 있지만 그들 스스로는 자신들을 말할 수 없다. 대학생과 취업준비생도 청년이고 직장인도 청년이 될 수 있다. 20대 초반의 기혼이라 해도 그 역시 청년이다. 청년세대가 스스로를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세대를 벗어나야 한다. 다시 말해, 청년세대는 여전히 누군가가 불러주길 기다리고 있다.

청년들은 지금 수군거린다. 거리에서, SNS에서, 블로그에서, 책에서, 술집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불안한 현재에 대해 수군거린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탄식한다. 그 모든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찾겠다는 것은 아니다.

[인천in]은 불안해서 빈곤하고, 가난해서 불편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정신적/육체적인 곤궁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소외받은 청년들, 혹은 스스로를 소외시킨 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들여다본다.


이 기획은 위로를 목적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열정과 도전, 희망을 주장할 마음도 없다. 공감도 쉬운 이해에 불과하니 그조차도 피하겠다. ‘들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할 거라고 말한다면 지나치게 도도한 인사가 될까. 아니라고 믿는다.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따듯한 ‘청자’의 역할에 많은 독자들이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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