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그 자체가 역할놀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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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그 자체가 역할놀이입니다
  • 류이
  • 승인 2015.06.2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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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컬럼] 류이 / 미디어교육연구소 이사장

<이건 앙대요> 2014년 학산마당극놀래 21개동 마당극 경연대회 주안4동 참여작품, "자네가 저번에 버리는 것 내가 봤어!" "증거 있어?!" "여기서 이러시면 앙대요~!"


자기표현에서부터 심리치료, 민주시민 평생학습에 이르기까지

부모님 기일이어서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갔다가 밤늦게까지 가족들과 함께 현실 정치문제로 설왕설래를 하고 왔습니다. 뒤끝이 씁쓸합니다. 설왕설래만 있지 제대로 된 의견을 나누고 합리적인 토론이 쉽지 않은 까닭입니다. 결국은 네 생각은 네 생각이고 내 생각은 내 생각일 뿐, 서로 삼투가 되고 상호간의 이해를 도모하고 더 나아가서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데까지 가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심지어 가족끼리인데도 그렇습니다. 물론 같이 생활하는 가족이 아니라 제사 때나 만나는 사이이긴 하지만 말이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적 당파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정책 토론이나 합의 과정을 겪어본 적은 더더군다나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주입식 암기식으로 배워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거나, 아니면 열외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교육을 받은 것이지요. 역지사지를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역할놀이를 많이 해볼 것을 권합니다.
 
인생은 그 자체가 역할놀기입니다. 태어나서는 아기로 어린이로 청장년으로 늙은이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역할을 놉니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애인으로 남편에게는 아내로, 말이죠. 역할놀기는 자기와 세계를 객관적으로 구성하는 주요한 통로입니다. 자아는 다양한 역할관계 속에서 스스로 일어섭니다. 서로 기대지 않고서는 설 수 없는 게 사람입니다. 이때 서로 기대는 관계가 한 쌍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자아가 여러 방면으로 시방(十方)으로 쌍을 이루며 얽혀듭니다. 자아는 여러 가지 역할들의 그물코 속에서 먼저 변화하고 성장하고 소멸해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할놀기를 통해서 창조체험을 하는 - 준비하고 되돌아보는 - 역할놀기와 실제의 역할놀기는 중첩됩니다.
 
자아의 역할 쌍들이 객관과 만날 수 있는 주요한 매개가 역할바꾸기입니다. 자아는 상대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을 번갈아가며 맡을 수 있을 때, 주관 자아(미성숙 자아)에서 객관 자아(주객관 통합 자아)로 성장해 나갑니다. 주관과 객관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실체가 아닙니다.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촉을 나눈 것뿐이지요. 객관을 나누어 인지할 수 있을 때 주관이 성장합니다. 자아의 여러 쌍들이 점하고 있는 지점들이 연결되어 원을 그리면 그것이 곧 자기의 안마당입니다. 안마당을 다져서 튼튼하게 서야 합니다. 주체의 형성 과정은 그 안마당의 원을 점점 더 크게 그려 나가는 것인데요, 일그러지게 그려진 원을 둥근 원으로 새롭게 그려나가는 것이 곧 자아를 변화시키고 완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원들이 여러 개가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사회 속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자율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 자아와 역할이 있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면서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류의 문화

역할놀기는 즉흥으로 시작해서 즉흥으로 끝납니다. 역할바꾸기놀이를 하는 것이지요. 극이 아니고 놀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역할극이라고 쓰는 것이 꼭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 극을 연행하는 것이니까 - 적절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보여주는 연극’(드라마Drama)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함께 노는 연극’(퍼포먼스Performance)을 보여주고 참여하고 즐기는 것도 아닙니다. 함께 극을 짜며 노는 ‘놀이’(플레이Play)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할바꾸기놀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영어로는 롤 플레이(role play)입니다.
 
어린이는 모두 역할놀이꾼입니다. 무엇이든 보고 금새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집중의 힘이 있습니다. 재미나게 놉니다. 그것은 따라쟁이가 아니라 창조체험 놀래입니다. 그것을 모방이라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하나만 보고 둘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춤추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눈도 깜박하지 않고 집중해서 보고 있는 아이에게 춤을 춰 보라고 하면, 처음에는 따라쟁이를 하는 것 같지만 금새 장단을 타기 시작하고 그게 재미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자기 춤을 창조하기 시작합니다. 소꿉놀이를 잘 보십시오. 모방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할을 노는 것입니다. 창조하는 것입니다. 역할놀기에는 상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관계를 창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A라는 상대에게는 ‘가’로 반응하고 상대가 B로 바뀌면 ‘나’로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다’로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에 따라 상대방의 대응에 따라 나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합니다. 즉흥적으로! 소꿉놀이는 친구에 따라서 늘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역할극을 하자고 하면 처음에는 낯설어 합니다. 특히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 주눅이 들어있는 한국 사람들은 배워서 시키는 대로 하려고 하는 습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대본을 쓰고 대본에 의지해서 극을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잠깐 인사말을 하라고 해도 써서 읽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극이 아니라 역할바꾸기놀이입니다. 우리가 늘 해오던 소꿉놀이입니다. 우리는 늘 이야기 속에 들어가서 역할바꾸기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수다 떨면서 흉을 보는 것도 다 역할놀이의 변형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면서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류의 문화입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학교 수업과정에서 역할놀이를 많이 합니다. 토론도 역할놀이로 하기도 하구요. 자기표현을 위해서도 합니다. 작품을 이해하고 재창조하는 역할극도 하구요. 어학이나 역사 사회과목이나 예술과목 등 모든 과목에서 역할놀이를 많이 합니다. 또한 민주주의 시민교육 프로그램이나 리더쉽 프로그램, 심리치료 프로그램에서도 역할놀이를 많이 합니다. 우리나라도 학교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자기표현에서부터 심리치료, 민주시민 평생학습에 이르기까지 역할놀이 프로그램을 확대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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