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세월호냐고요? 우리는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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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세월호냐고요? 우리는 엄마입니다!”
  • 송은숙 객원기자
  • 승인 2015.07.2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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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세월호 1인시위 하는 엄마들
“저는 엄마입니다. 제 아이를 안전한 나라에서 살게 하고 싶은 엄마입니다.”
 
연일 무더운 날씨,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지난 5월부터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엄마들이 든 피켓 문구이다. 그냥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면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을 받는 이들을 만났다. 시민단체, 정당에서 활동한 적 한번 없고 아이를 안전한 나라에서 살게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뭉친 엄마들이다. 처음에는 혼자서 서명을 받는 일이 버거워 3명이 함께 서명을 받았다. 하지만 2~3명이 함께 하면 신고를 해야 한다는 말에 1인시위 형태로 바꿨다.
                                                                                                           

시간 쪼개어 참여하는 목요일 서명지기 이순미 씨
 
목요일인 오늘(7월 23일)은 세 아이의 엄마인 이순미(44·남동구 만수동) 씨가 1인시위를 하는 날이다. 이씨는 베이비시터로 오전 2시간, 오후 3시간을 일하는 사이에 짬을 내어 목요일마다 참여한다. 매일 새벽 5시 반에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는 그는 대학생인 큰아이, 중학생인 둘째, 초등학생인 막내의 아침식사 준비를 해놓고 7시 40분에 오전 일을 하러 집을 나선다. 1인시위를 하는 목요일에는 오전 일을 마치고 바로 로데오거리에서 와서 2시간 정도 서명을 받고 오후 일을 하러 간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독서토론 모임을 하고 동네 도서관에서 자원봉사 하는 평범한 아줌마였어요. 그러다 세월호 참사를 기록한 책들을 읽고 나서 ‘책만 읽을 게 아니라 뭔가 행동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경찰에 잡혀 가지 않게만 하라’고 웃으며 응원해 주는 남편이 고맙다. 아이들 중 가장 적극적인 지원군은 중학교 2학년인 둘째다. 일하랴, 1인시위하랴 힘든 엄마를 안쓰러워하며 같이 나와 피켓을 들고, 반 친구들에게 서명을 받아온 적도 있다. 안 그래도 집안일을 잘 도와주던 아이였는데 엄마가 1인시위 참가한 이후로는 설거지, 빨래 개는 일을 도맡아하며 더 많이 도와준다.

“아이에게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제가 보는 관점에서 말하지 않으려고 해요. 구할 수 있었던 아이들을 왜 구하지 않았는지 제대로 말해줄 수도 없었고. 아이 혼자서 책을 읽고 저에게도 많이 묻고 스스로 알아가는 듯해요.”
 
이씨는 시간을 쪼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월요일 점심에는 웃음치료 수업을 듣고, 수요일은 국수를 대접하는 봉사로, 금요일에는 독서토론에 참여한다. 유일하게 화요일 오전과 오후 업무시간을 제외한 때만이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이다.
                                                                                                이순미 씨는 바쁜 시간을 쪼개 목요일마다 1인시위를 하고 있다.
 
 6명의 엄마 중 4명이 세 아이의 엄마
 
로데오거리 1인시위에는 이순미 씨를 포함해 6명이 각자 맞는 요일과 시간을 정해 매주 하루, 이틀씩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우연히도 그 중 4명이나 세 아이를 둔 엄마들이다.
 
월요일에 1인시위를 하는 신현주(41·남동구 구월동) 씨는 5살 막내를 둔 세 아이의 엄마이다.

“세월호 추모 걷기나 관련 행사에서 받은 노란리본, 뱃지를 보고 주변에서 ‘어디서 구하느냐?’, ‘하나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직접 만들어서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노란리본을 만든 거죠. 그러다 ‘우리가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는 엄마들 몇이서 피켓 들고 서명이라도 하자 이렇게 됐어요. 처음에는 왜 구할 수 있는 아이들이 죽어야 했을까 생각하니 화가 났지만, 그것보다는 내 아이를 안전한 나라에서 키우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피켓 문구도 부드럽게 바꿨어요."


 
신씨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안현주(42) 씨 역시 세 아이를 뒀다. 매주 금요일마다 피켓을 드는데 초등학교 2학년인 막내가 가끔 따라 나온다.

“리본을 천 개 만들고 나니 이렇게 우리 동네에서 잊지 않고 옆 동네로, 다시 옆 동네로 퍼져 나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1인시위를 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인 ‘리멤버0416’의 도움으로 한 발짝 걷게 됐어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낮 시간에 서명을 받다 보니 가끔 1인시위를 이해 못하는 어르신들을 만난다.

“집에서 애 잘 키우고 돈이나 벌지 왜 불쌍한 대통령 자꾸 괴롭히느냐?”
“도대체 진실이 뭐냐? 어느 정당 소속이냐?”
“뭐하는 거냐? 뒤에 누가 있느냐?”
 
처음에는 이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했으나 지금은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뿐 어르신들과의 말다툼을 피해 간다.
 


심지어는 남편도 갑자기 피켓을 든 아내를 이해하지 못해 만류한다.

“애들 아빠가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꼭 당신이 나서야 되는 거냐고 해요. 그럼 전 혼자서 열 걸음 가는 것보다 여럿이 한 걸음씩 갈 때 세상이 바뀌는 거 아니냐고 말해요. 말은 그래도 걱정되는지 첫 날은 같이 와서 보고 갔어요.”
 
토요일에 1인시위를 하는 최영이(37) 씨는 고2, 초6 그리고 3살 늦둥이를 뒀다. 7월부터 직장에 나가기 시작해 쉬고 싶은 모처럼의 주말이지만 로데오거리에서 피켓을 든다. 송도 해경앞 1인시위에도 열심히 참가해 왔다.



건강상의 이유로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쉽지 않았던 신지우(48·남동구 만수동) 씨는 수요일에 1인시위를 해왔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아이가 살아갈 나라는 달랐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처음에는 노란리본만 만들어야지 했어요.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외칠까 했는데, 어느 순간 외치고 있더라고요. 사람들에게 반감을 안 줘야 하니 저도 모르게 웃고… 정해진 장소에서 서명을 받으니까 주변 직장인들이 몇 번을 그냥 지나치다가 나중에는 미안해서 서명을 하고 가요. 또 어떤 날은 ‘왜 더운데 그늘에서 서명을 받지 햇볕에 서서 하느냐?’고 하던 시민도 계셨어요.”
 
가장 나이가 어린 참가자는 이다인(23) 씨, 유일하게 미혼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부평역, 송도 해경 등 인천지역에서의 1인시위에 꾸준히 참가해 왔고 지금은 직장에서 가까운 이곳 로데오거리에서 화~수요일 퇴근 이후에 1인시위를 한다.



“평소에 엄마랑 많이 이야기를 나누는 편인데요. 엄마가 시간 내서 해보면 어떠냐고 하시더니 엄마는 안 하시고 저만 하고 있어요. 제가 서명을 받는 시간은 다행히 어르신들이 적고 10~20대 젊은 층이 많아서 서명도 잘 해주고 관심이 많아요. 몸은 힘들어도 서명 마치고 나면 뿌듯해요.”
                                                                                           왼쪽부터 로데오거리 서명지기로 참여하는 이다인, 안현주, 이순미, 신현주, 신지우 씨.
 
‘리멤버0416’ 언제까지 하느냐고요?
 
무더위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받은 서명이 많을 때는 100명이 넘는다. ‘더운데 고생한다’며 시원한 음료를 사오는 시민들도 있고 피켓과 서명대를 매번 들고 다니기에는 번거로운데 흔쾌히 보관해 주는 고마운 가게도 있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어서 3명이 서명하는 데 그치는 날도 있다. 신현주 씨의 말이다.

“서명을 안 하는 시민들도 피켓에 적은 문구는 읽고 지나갑니다. 그것만으로도 저희가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서명을 하는 시민들에게 처음에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여기까지 와주셔서 힘이 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서명 부탁합니다’라고 외쳤지만 ‘서명 받습니다, 안전한 나라 만들기에 동참합시다!’로 바꾸었다.
 
‘현수막을 걸면 안 된다’고 하는 주변 건물 관리인의 눈총을 받은 뒤로는 피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명을 마치고 나면 5분 정도 주변의 담배꽁초도 줍는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나라를 물려주는 일은 많은 마음이 함께해야 하는 일이기에!
 
“언제까지 1인시위를 하실 건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때까지 계속 하려고 해요. 1인시위를 그만두고 다른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아이들에게 안전한 나라를 물려주려면 뭔가는 해야죠. 우리 뒤에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순미 씨가 1인시위를 마칠 즈음, 방학을 맞은 중학생들이 서명을 하러 왔다.

※ 노란리본과 세월호 뱃지, 가죽팔찌, 책갈피, 열쇠고리, 스티커 등은 ‘노란리본의 기적’ 사이트( http://yellowribbon.kr )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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