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 긴 여운, 장봉도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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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만남 긴 여운, 장봉도 산책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5.09.23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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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의 섬마을 사진 이야기] 2-장봉도

섬마을 이야기 프로젝트를 위한 세 번째 출사지 장봉도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19일은 날씨가 정말 좋았어요. 기상캐스터가 “가을하늘에 파란 꿈을 담아보세요”라고 인사했을 정도니까요. 1박 2일 일정으로, 숙소는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장봉혜림원이었어요.

 

공식적인 진행은 오후 2시에 시작했지만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오전 일찍 들어와 섬의 숨결을 느끼고, 냄새를 마시며 ‘도시와는 다른 호흡’을 즐겼습니다. 낯선 곳에 가면 시선과 말투, 걸음걸음이 달라지듯 호흡도 미묘한 차이가 나기 마련이잖아요.


 

볼록볼록하지만 울퉁불퉁하지는 않은

 

길 장(長), 봉오리 봉(奉)을 쓰는 장봉도는 섬이 길고 봉우리가 많다고 해서 ‘장봉’이라 이름 붙었습니다. 삼목 선착장에서 매 시간 출발하는(주말에는 수시운항) 배를 타면 신(시, 모)도에 들른 후 40여분 후 장봉 선착장에 닿습니다.

 

고려 말 몽고 군사를 피하기 위해 강화도 주민들이 피난해 살기 시작한 이 섬은 2010년경 약 900여명이 거주했대요. 주민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예전에는 김양식으로 높은 소득을 올렸으나, 인천국제공항이 생긴 뒤 중단되었다고 해요.

 

장봉도에는 세계적으로 5백여 마리밖에 없는 노랑부리 백로와 괭이 갈매기가(천연기념물 제360호, 제361호) 집단 서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지난 여름휴가를 보내기도 한 옹암 해수욕장과 한들 해수욕장이 관광지로 특히 유명하며, 트래킹이나 사이클을 즐기는 사람도 섬을 자주 찾습니다. 소나무 숲이 무성하고, 암석 갑각과 해식애가 발달해 절경을 이루는 곳도 많다고 합니다.

 


 

아주 특별한 산책

 

처음에는 혜림원에서 생활하는 원생들을 위해 장수사진(영정사진)을 촬영해 주려고 했어요. 사진을 갖고 있는 분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라고 원장님이 말했거든요. 나중에 조사해보니 모두 영정사진을 갖고 있대요. 얼마 전 사회적 기업 ‘바라봄 사진관’에서 촬영해주었다고 합니다.

 

혜림원 측에서, 원생들의 생활모습을 담아주면 어떻겠냐고 부탁해 왔어요. 보통 7~8명이 한 방에서 생활하고, 그걸 ‘가정’이라고 부르는데 이용자들의 일상을 포착해달라는 거죠. 장봉도 출사에 참여한 사진가는 마흔 명쯤 됐는데 열한 분이 흔쾌히 참여의사를 밝히셨어요. 저는 황선규(53), 김상근(49), 손용호(49), 이석원(48), 장호진(41) 님 가정을 맡아 사진공간 배다리 김승혜 실장님과 그들이 산책하는 모습을 찍었습니다.(아쉽게도 이분들 사진은 기사에 싣지 못했어요)

 


 

눈꽃 102호에서 생활하는 분들은 장애 정도가 심한 것 같았어요. 산책을 함께 한 다섯 명의 이용자 중 ‘단어’를 알아듣는 분은 황선규 님뿐이었거든요. 102호를 담당하는 최주영(38) 사회복지사와 짧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15년쯤 복지관에서 일했어요. 재활공학(보장구 제작, 설계)을 공부했는데 장애에 관심이 많아서 대학에 편입해 다시 사회복지를 전공했어요. 혜림원에서 근무한 지는 1년 조금 넘었지만 오랫동안 이곳에서 봉사했기 때문에 제게는 매우 익숙한 곳이에요.”

 

최주영 씨의 집은 서울 영등포. 일주일에 한 번 배를 타고 들어오는데 거리에 대한 심리적 부담은 있지만 특별히 힘든 점은 없다고 해요. “이용자들이 좋아해주면 저도 좋고, 속상해하면 저도 속상해요. 더 힘들고 덜 힘들고의 기준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잖아요.” 복지사와 이용자들이 가깝기 때문인지 가끔 최주영 씨를 시설 이용자로 착각하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장봉혜림원은 올해 개원 30주년을 맞았다고 해요. 오는 11월에 축하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평균 나이 47세. 60여명의 이용자가 40여명의 사회복지사와 함께 생활하는 곳. 이용자와 사회복지사 모두 서로를 ‘님’이라고 부르며 존중하는 곳. 소나무로 둘러싸이고 까치발을 들면 바다를 볼 수 있는 혜림원에서 정말 특별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색깔 있는 갯벌을 담아라

 

저녁 식사 후에 시작한 사진리뷰에서는 ‘(사진에 대한) 선생님들의 고민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대답에 대한 물음과 반문들.

 

- 세월이 흔적을 주제로 섬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 세월의 흔적은 보편적인 주제다. 세월과 연결되지 않은 게 없으니 섬에서 그 주제를 찾는 것은 '임팩트'가 약할 수 있다.

 

- 그냥 찍었다.

: 사진에 유별남이 없다. 남을 따라하는 게 아닌, 내 마음이 온통 빼앗겨 정신없이 ‘막 찍은 사진’이 궁금하다.

 

- 섬은 대개 다 비슷한 것 같다. 뭘,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 ‘섬은 고립돼 있다’는 등식이 깨지는 순간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섬에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 중 하나가 갯벌입니다. 너무 흔한 대상이므로 찍지 말아야 할까요? 이영욱 교수님은 다른 방법론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갯벌? 좋다, 찍어라.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현장에 가서 다시 갯벌을 관찰하라. 흑백인 줄 알았는데 갯벌에 빛이 반사돼 색이 있음을 발견했다면 ‘밝은 갯벌’을 카메라에 담으면 된다. 경험에서 문제가 봉착된다. 어떤 문제는 새로운 걸 만들어내게 하는 힘이 된다. 또 한 가지 쉬운 방법은 남들이 찍은 걸 찍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당장 사진이 달라진다.”

 

세 번째 섬마을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완연한 가을 속, 10월에는 2박 3일 일정으로 백령도, 대청도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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