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 사라졌다 유령처럼 나타나는 그 섬, 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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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 사라졌다 유령처럼 나타나는 그 섬, 그 바다…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5.10.21 18: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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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의 섬마을 사진 이야기] 3-백령도, 대청도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강화도, 무의도, 장봉도에 이어 이번에는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백령도와 대청도 이야기입니다.
 
서해 5도를 아시는지.
서해 5도(西海五島)는 대한민국 관할 아래 있는 섬들 가운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남도의 남쪽 해안과 가까운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를 일컫습니다.
 
서해 5도의 대부분은 행정구역상 인천시 옹진군에 속하지만, 우도는 강화군에 있어요.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우도 대신 유인도인 소연평도를 넣어 서해 5도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다섯 개의 섬에는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격 등 유사시에는 섬 주민들에게도 화기를 지급할 수 있다고 하네요.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 두무진,
심청이의 전설을 간직한 섬, 백령도

 
백령도는 일제 말까지 황해도 장연군 백령면에 속해 있었으나 해방 후 3.8선이 그어지면서 3.8선 이남인 백령도는 남한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6.25 후 휴전선이 백령도와 장연군 장산곶 사이로 지나가는 것으로 정해짐에 따라 남한에 귀속됐습니다.  
여의도의 다섯 배가 넘는 이 섬은 우리나라에서 여덟 번째로 큽니다. 바로 2킬로미터 앞이 38선으로 오랫동안 군사요충지였으며, 법에 따라 선박 운항이 통제되는 해상교통 취약 지역이기도 해요.
 
섬을 ‘버드 아이 뷰’로 찍으면 한 마리 새가 북쪽 장산곶을 향해 날아가는 모양과 비슷합니다. 고구려 영토였을 때는 고니 떼가 모이는 도래지였기도 했고, 섬 모양이 고니 같다하여 곡도(鵠島)라고 불렀습니다. 고려 태조 때는 고니가 따오기로 바뀌어,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펴고 나는 모습, 흰 백(白) 날개 령(領)을 써 백령도로 명명했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인천 섬의 명칭은 형상을 본뜨거나 섬의 전체 모양을 반영한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일 먼저 세계에 두 개밖에 없는 천연 활주로로 유명한 사곶 해변을 찾았습니다. 백령도에는 천연기념물이 많은데 이 해변도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썰물 때면 300미터 이상의 단단한 도로가 생겨 군수송기 이착륙이 가능하고 자동차도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 달릴 수 있다고 합니다. 여름에는 장병들의 야영장과 일반인을 위한 해수욕장으로 개방한다고 해요.
 
탁 트인 해변에는 먼저 도착한 관광객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해변 어딘가에 서 있으면 낯모르는 이들이 프레임에 걸리고 바다 쪽으로 다가가면 ‘그저 바다’만 담겨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출을 한껏 오버시켜 찍어보기로 합니다. 며칠 전 본 마리오 자코멜리의 사진이 생각났거든요. 눈밭에서 뛰노는 수도사들을 흑과 백의 선명한 대비로 담은 것인데, 그런 감각과 시선을 포착할 수는 없겠지만 흉내내기는 가능하죠. 그렇지만 곧 흉내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해변과 바다의 경계를 없애 배경을 하나로 뭉뚱그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탁한 느낌에 깔끔하지가 않네요.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두무진은 유람선을 타고 둘러봤어요. 아쉽게도 북쪽으로 더는 갈 수가 없어서 섬의 반만 보고 배를 돌려야했죠. 그런데도 70여분이나 걸렸으니 백령도가 얼마나 큰지 짐작이 되시죠? 거대한 바위들이 손에 손 잡고 있는 듯, 머리를 맞대고 있는 듯한 두무진은 장군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합니다. 명승 제8호로 지정돼 있고 촛대바위, 병풍바위, 코끼리 바위 등 바위군락이 수백 미터에 걸쳐 형성돼있어요.


 
 
백령도는 ‘심청’의 고향이기도 해요. 섬은 황해도 장연과 10킬로미터, 장산곶과 1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그 사이에 심청이 공양미 300석에 팔려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흐른대요. 인당수와 장산곶이 내려다보이는 진촌리에는 2층으로 된 심청 기념각과 동상이 있습니다. 하필이면 안개가 가득 껴서 멀리 북쪽 땅은 볼 수 없었습니다.
 
몇 차례 섬에 갔지만 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갯벌이라든가 바위에는 그다지 관심 없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바위에 붙어있는 온갖 껍데기들이 신경 쓰였는데 저는 그게 해골바가지처럼 보였습니다. 바위가 몇 백 년, 몇 천 년을 그 자리에서 세월을 견뎠다면 거기 달라붙은 조개껍질도 오랜 세월 깨지고 새로 달라붙고 했겠죠. 물살에 밀려와 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껍질이 해골의 무덤 같았어요.

 

 
해골은 사람한테만 쓰는 단어인가요? 사전을 찾아보니, “시체 중 뼈 부분을 이르는 통칭. 혹은 뼈 부분만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오네요. 또 “해골이라 할 때 머리 부분의 뼈인 두개골만을 칭하는 경우도 많다. 사람의 두개골이 사실상 죽은 시체의 것이라 대체로 죽음을 상징하는 표식으로 쓰이며…”
 
앗, 이런 의미도 있군요. “해골이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먼저 간 선조의 흔적으로 경외시 되기도 했는데 카타콤이 세워진 이유가 일종의 그런 것이었다. 후손들이 와서 ‘저기 옆에서 몇 번째 있는 해골이 너네 할아버지고 그 옆은 너네 삼촌(…)’ 같은 식으로 선조들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위에 깊게 달라붙어 있는 조개껍데기 하나가 한 시대, 한 사건, 한 인물 같았다면 제가 너무 오버한 건가요?
 
이후 콩돌 해변에서는 자욱한 안개 속에서 유령처럼 떠돌며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사진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울창함이 눈썹을 그리는 푸른 먹 같다”
수목이 무성한 큰 섬, 대청도(大靑島)

 
2박3일 일정으로 두 섬을 돌아보기로 하고, 이틀째 대청도로 이동했습니다. 차량운행을 맡았던 기사님이 백령도는 ‘관광지’, 대청도는 ‘휴양지’라고 설명하네요. 어느 섬이 더 좋았다고 말할까요? 서해 최북단 섬으로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4시간이 걸리지만 ‘의식적으로’ 그보다 훨씬 멀게 느껴지는 백령도? 백령도의 위엄(?)에 밀려 ‘백령도 오가는 길에 들렀다가는 섬’처럼 인식되는 대청도?
 
저는 대청도가 더 좋았습니다. 백령도는 두 번째지만 대청도는 처음이라 그 낯섦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아닐 거예요. 편안한 곳에 있거나 여유로운 시간을 맞게 되면 흔히 하는 말 있죠? “다 내려놓게 되더라고.” 정말 그랬어요. 긴 백사장을 걷고, 딱딱한 갯벌을 밟고, 보이지 않는 수평선에 선을 긋고, 파도에 귀 기울이고, ‘섬존재’ ‘인간존재’ 운운하며 낙서했던 나만의 의미들이 모두 대청도에서 만들어진 거니까요.
 
대청도에는 멋들어진 해변이 많아요. 모래사막으로 잘 알려진 옥죽동 해변, 경첩의 디귿자 모양으로 된 지두리 해변, 소나무가 우거진 사탄동 해변, 농여 해변, 답동 해변 등등.
 
아래 사진을 좀 보세요. 사람 키보다 작은 것은 바위가 아니고 돌이라고요? 바위는 위엄 있게 커야 한다고요? 사진작가들이 천 년 만 년의 세월을 굽어다 보고 있네요. 그 아래 사진을 또 보세요. 바위는 바위일 뿐이라고요? 그 안에서 발견할 게 없다고요? 사진작가들이 억만 년 세월에 올라 틈을 찾고 있네요. 비어진 시간, 또는 공간에 살아있는 생물체가 있을까하여. 거기서 또 다른 의미를 만들 수 있을까하여.

 

 

 
 
 
머리를 날리게 하는 바람보다는
개발 바람, 파괴 바람을 주제로 잡아라

 
 
사진리뷰는 마지막 날 밤, 펜션 야외마당에서 진행됐어요. 어둠 속에 하얀 천을 내걸고 별빛 아래 프로젝터 빛을 쏘았죠. 가을이슬을 맞으며, 얕은 추위를 견디며, 지난달 장봉도에서 찍은 사진을 함께 봤습니다.
 
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섬마을 이야기’를 함께 진행하는 이영욱 교수님은 먼저 애드워드 버틴스키의 다큐를 소개했습니다. 버틴스키는 환경과 현대산업 문명을 주로 다뤘는데 ‘WATERMARK’와 ‘MANUFACTURED LANDSCAPES’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중없이 섞인 수십 장의 사진을 보고 주제별로 다시 감상하는 과정에서 ‘주제 정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지만 연결이 어렵다면? 강력하게 하나로 묶으려고 할 때, 그 방법은?
교수님의 충고는 이렇습니다.
1. 여러 섬에서 똑같은 대상을 찍는다.
2. 하나의 개념으로 엮는다.(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부각하기 위해 제목을 단다)
 
어떤 참여자가 이번 섬 프로젝트 타이틀을 ‘바람, 바람, 바람’으로 하려고 한다고 하자, 교수님은 ‘바람’ 한 단어가 낫다고 자르면서 그 바람이 ‘wind’가 아닌 개발 바람, 건설 바람으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조언했습니다.
 
버려진 유모차가 섬에서는 ‘조개를 담는 바구니’ 혹은 ‘섬에서의 운송 수단’으로 쓰인다는 걸 발견한 참여자에게는 ‘재미있다’는 소감을 전하면서 그걸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작품화하라고 강조했습니다.
 
무인도에 가면 유토피아가 있지 않을까? 장봉도에서 5개의 무인도를 찍은 분에게는 역사적인 장소성을 가지면 의미가 풍부해지니 섬에 대한 사전지식도 꼭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두 시간여의 리뷰가 끝나자 펜션 앞마당에는 사장님의 배려로 모닥불이 피워졌습니다. 열기에 조금씩 나무 테이블이 말라가는 걸 느끼며 반대로 우리의 입술과 가슴은 촉촉이 젖어갔죠. 경험과 관계로 느끼는 이런저런 배움도 많지만 추위에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들은 이 말 한마디가 기억에 남습니다.
 
“렌즈의 광학적 효과에 의지하지 마라. 인간의 시각에서 지나치게 벗어나지 마라.”
 
대충 이런 뜻이었던 것 같은데 취기에 멋대로 기억을 조작했을 수도 있어요. 제 마지막 사진은 이 곡선입니다.
 
 

 
 
가을 속에 푹 빠지세요.
11월 대이작도, 소이작도 여행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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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철 2015-10-21 19:59:51
백령도는 일제 말까지 황해도 백령면으로 북한의 생활근거지였으나 해방 후 휴전선이 생기면서 북한이 섬에서 철수했습니다.

이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백령도는 일제 말까지 황해도 장연군 백령면에 속해 있었으나, 해방 후 3.8선이 그어지면서 3.8선 이남인 백령도는 남한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6.25이후 정전협정이 맺어 지면서 휴전선이 백령도와 장연군 장산곶 사이로 지나가는 것으로 결정되어서 계속해서 남한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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