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정규화
상태바
비정규직의 정규화
  • 윤현위
  • 승인 2015.12.09 14: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칼럼] 윤현위 / 자유기고가, 지리학박사

밴드 혁오를 모두 아실게다. 그들의 히트곡인 '위잉위잉' 중에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사람들 북적대는 출근길의 지하철엔
좀처럼 카드 찍고 타볼 일이 전혀 없죠
집에서 뒹굴뒹굴 할일 없어 빈둥대는
내 모습 너무 초라해서 정말 죄송하죠
 
일자리가 없는 경우에는 아침에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이 부러울 수도 있다. 가끔 대학가 식당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뉴스꼭지가(요즘은 그나마도 잘 나오지 않지만) 나오면 비정규직의 상황이 아니라 '일 좀 했으면 좋겠다'고 자기는 금요일 야근 아니라 주말에도 출근하겠다고 늘어놓는 푸념에 혼자 웃기도 했다. 그러나 지하철을 타고 아침에 일터를 가는 사람들도 모두 즐거운 건 아닐게다. 그들 중에 절반정도는 아마도 비정규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아마도 YS정권 당시 노동법의 개악으로 만들어졌다고 사람들은 많이 이야기한다. 전에는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니고, 공론화 혹은 공식화되었다고 보는게 정확할 듯하다.

지금은 비정규직이 이제 정규직이 아니라 정규화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나아질 기미나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자리가 자기 자리가 될 희망은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비정규직인 사람들의 의견이나 행동을 모으는 게 쉽지 않다. 희망도 희망이지만 그래서 소위 날라가는 사람들을 우린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최근에 시간강사법이 통과되었다. 대학에서 아주 오래된 말이다. 강사도 아니고 시간강사다. 최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란 책이 화제를 모았던 것처럼 시간강사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박사학위를 받고 자리잡기 전까지 잠시 스쳐지나가는 자리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건 이후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고 실제로 강의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1년에 8개월을 일하고 출퇴근 시간이 없으니 얼마나 좋냐고, 수업자료는 한번 만들어서 계속 쓸 수 있지 않냐는 질문을 정말 수없이 많이 들었다. 필자도 4년간 전업시간강사를 한적이 있다. 가끔 사람들 중에 강의료를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학점당 강의료를 알면 그 사람이 얼마를 버는지 알수 있는데, 보통 자기가 받는 연봉보다 적으면 안도했고, 혹 많으면 못 참아했다.

시간강사법이 통과됐으니 이 법안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서 정책과제를 한국연구재단에서 공모했다. 제안서를 쓴 사람 중에서 채택된 사람들은 3개월간 2,500만원의 용역비를 받고 보고서를 만들어야한다. 공모를 보다보니 웃음이 나온다. 시간강사들을 위한 과제인데, 시간강사들이 단독으로 이 과제에 참여할 수 없다. 대학교수나 학술연구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정규직인 사람들과 함께 공모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비정규직인 강의전담교수나 비정규직 연구원들이 여기에 참여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녹록하지 않다. 상급기관에서 하달된 일도 아닌데 비정규직이 쓴 제안서에 의해서 정규직들이 부차적인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쉽지도 않다.



필자는 공공기관에서 여러번 비정규직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데, 작고 소소한 차별 혹은 선 긋기가 있다. 일단 비정규직한테는 사원증을 주지 않았다. 사원증이 없으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바코드를 찍을 수 없어서 밥을 먹을 때마다 바코드 기계 옆에 있는 공책에 이름을 쓰고 밥을 먹어야했다. 회사 내부망과 이메일을 발급해 주지 않아서 여러 번 곤란스러운 적이 있었는데 특히 타부서 사람들 중에서는 내부망이 이름이 없어서 자료를 주는 것을 무척 조심스러워했고, 부탁한 일이 아예 뒷전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명절엔 선물세트가 두 개가 나왔는데, 정규직은 두 개 다 비정규직은 그냥 한 개만 준다. 시간강사들은 대학에서 주차권을 살 때 자기가 강의하는 시간표를 들고 가야하는 학교도 있다. 물론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주는 게 어디냐고 말한다.

IMF 이후에 우리는 구조조정이란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제 정말 많은 부분들이 구조조정이 됐고, 현재는 IMF이후의 구조, 계약직과 아웃소싱으로 얼룩진 세상을 살고 있다. 그 사이 가구는 1인 가구들이 많아졌는데 고시원과 열악한 월세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수억 원대의 전세난은 신문에 나지만 주거비가 생활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커서 신음하고 있는 월세에 대한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주택가격이 올라가는 속도도 속도지만 실질임금이 오르는 속도도 큰 문제다.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은 것은 계속 계약직으로 대체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를 버티기 위해서 높은 노동강도를 계속 견뎌 내야한다. 이런 푸념 때문에 나온 말이 금수저 은수저가 아닐까? IMF 이후로 공무원시험과 임용고시로 사람들이 계속 몰리는거에 대해서 젊은이들이 꿈이 없다고 욕할 일도 아니고 욕해서도 안되는 이유다.

계약직의 문제는 더 이상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법?제도와 경제를 공부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분석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 분석이 분석을 한 사람들의 생계를 해결하는 것 이외에 직접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시킬 수는 없다. 가장 가까운데부터 돌아봐야한다. 혹시 비정규직이니까 언젠가 쓰고 버릴 사람들이니까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다. 경제가 안 좋다는 말을 한지 오래되었다. 결국 이 문제는 학연과 지연의 초고도화로 귀결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경제가 좋아지면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될까? 근데 인생에 정규직이 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