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치인들은 왜 조용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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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정치인들은 왜 조용한가?
  • 김성미경
  • 승인 2015.12.2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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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김성미경 / 젠더고물상 연구위원·전 인천여성의전화 회장
바야흐로 선거시즌이 도래했다.

20대 총선이 4개월도 채 안 남아있는 지금, 정치 지형은 혼란 그 자체이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위에서는 힘겨루기를 하고 아래에서는 어느 줄에 서야 할지 정신못차리고 우왕좌왕 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지형은 늘 보스정치로 상징되는 줄서기의 모습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는 보스가 없는 2000년대 정치판의 혼란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지금도 여전히 DJ, YS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고 이어 친노 비노, 친박 비박등이 언설에 오르내리고 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상당수 정치인들은 이 계보의 끄트머리라도 잡고 있을터이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정치 지형 속에서 소수자로서 여성정치인들은 어떠한 선택을 하고 있을까? 한 마디로.. 조용하다..

여성운동의 결과로 얻어낸 30% 여성 할당제를 열매로 따 먹고 정치권에 진입했던 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있다. 이들은 정치 초입에서부터 출구까지, 어딘가에 남성 보스에게 줄을 대고 있지 않으면 다음 번 당선은 힘들다는 이야기를 입 모아 한다. 이런 와중에 개인의 정치적 신념 따위는 챙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줄을 찾아 설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줄이란 보스정치, 계보정치, 계파정치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상관없이 일방적인 방향으로 힘있는 상층 권력에 속하여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속하는 선택이나 행위를 말하며 위계 관계 위에 성립된다. 기존의 권력이란 제로섬 게임처럼 나누면 나눌수록 작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성정치를 대변하는 이 제로섬 게임의 대표 상징이 바로 계파정치이다. 여기의 줄에서는 여성이나 소수자들에게 나누어줄 파이는 적거나 없다.

예를 들자면, 우선 지역 위원장에게 줄을 대지 않으면 정치활동을 시작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의원들은 지역위원장의 권력에 무릎을 꿇었다고 이야기 한다. '정치를 하려고 한다면 지역 위원장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부하면 정치판에 들어갈 길 자체가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돈도 주고, 표도 주고 온갖 심부름도 해야 한다. 그리고 눈치빠르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여성이 정치를 하려면 뛰어난 능력보다도 눈치가 제일의 능력이 된다. 그렇더라도 그 자리는 언제라도 날아갈 수 있다. 눈독 들이는 남성의원이나 지역위원장에게 더 잘 하는 다른 여성후보가 있을 경우.. 그러니 평소에 지역에 좋은 정치를 잘하고 의정활동을 잘 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고 줄을 잘 서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번 재선을 위해서는 국민이 아니라 줄의 눈치를 본다.

반면에 네트워크는 관계망을 말하며 일방적인 줄과 달리 다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위계가 아니고, 가치의 우위를 겨루지 않으며 이념관계를 뛰어넘어야만 가능하며, 그래서 평등한 관계에서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네트워크 권력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

2004년 17대 총선 때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활동이 바로 그 예이다. 그 시절,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여성들이 연대하여 함께 좋은 여성 국회의원후보들을 냈고 적극적으로 당선운동을 했던 것이다. 아쉽게도 이후엔 네트워크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여성들이 네트워크의 가치에 충실하지 않고 기존의 개별적 줄서기 방식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여성정치란 돌봄과 나눔, 소통과 협력등 '여성주의적 가치'를 기반한 관점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등 차별의 기준을 드러내고 그 간극을 없애가고자 하는 평등의 가치를 가지고서 말이다. 이러한 가치 실현을 위해 정치권력을 필요로 하는데 남성과 똑 같은 방식으로 해서는 얻을 수가 없다. 기존의 판에 끼어들기 방식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판을 짜고 키워가기 위해서 여성들은 여성과의 연대를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과의 연대를 먼저하는 것이 바로 '줄서기' 이다. 여성들과의 네트워크가 기본으로 깔리지 않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줄 이기 때문에 썩은 동아줄이 될수도, 잘린 줄일수도 있는 불안한 것일수 밖에 없다.

이렇게 전적으로 "행운"에 기대는 여성정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남자와 결혼하는가에 따라서 계급이 달라지는, 뒤웅박팔자와도 같은 것이다. 배우자에 따라서 삶이 바뀌는 영원한 2등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강요하는 이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바꾸고자 여성주의 정치를 하려 하는 것인데, 여전히 계보정치의 줄을 잡고 뒤웅박 팔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여성정치를 포기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조용한 것이다.

여성들이 정치를 한다면 남성들과 다르게 해야 한다. 기존의 방식으로 그대로 한다면 그것은 이미 실패한 정치이고 구태이다. 어차피 판은 흔들라고 있는 것이다. 판이 흔들리지 않으면 진보하지도 않을 것이고 새로운 정치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권력은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작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정치인들을 줄서게 하는 막강한 권력/ 줄이라는 것은 결국 그 권력을 작동하게 만든 자기 자신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바꾸어야 한다. 권력을 작동하게 하는 것도, 그 작동을 멈출 힘도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면 이 구조를 바꾸어낼 수 있는 힘도 있는 것이다.

기존의 권력/줄, 낡은 동아줄이 아니라, 신 소재로 만들어진 네트워크, 그게 다른 소수자들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해, 그 뜻을 함께 하는 자들이 모여 만든 네트워크, 새로운 동아줄..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모여드는 것. 여성들은 바로 이 이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튼튼한 정치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판을 만든다. 정치인은 한 철이지만 정치는 영원할테니까.

여성들이 함께 만든 신소재 '줄/네트워크'를 통해 여성의 정치력을 키우고 성장시켜 여성정치판을 만들어내 보자. 그리고 쭈욱.. 같이 지켜보고 격려하고 비판하며 함께 가보자. 뽑아 놓고 잊어버리지 말고. 이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제 2016년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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