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山寺) 체험 일지 - 전등사
상태바
산사(山寺) 체험 일지 - 전등사
  • 김기용
  • 승인 2016.01.18 11: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자칼럼] 김기용/교사
 
늘 어수선한 느낌. 일단 이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태. 게다가 뭔가 어디서 엉켜있는 것 같은 데 영 풀리지를 않는다. 있는 듯 없는 듯, 늘 목에 걸려 있는 오래 묵은 가래 같다. 맙소사. 나 같은 단순 치들은 이런 상황에 참으로 난감하고 무력하다.
어디 피접이라도 가고 싶은데, 일정이 만만치 않다. 방학 중에도 이러 저런 일이 촘촘히 엮여있다. 남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외국도 나가고 그러는데 도대체 나라는 위인은 왜 이 모양이람? 아~, 정말 어디 조용한 절간이라도 있다 오고 싶네…
별다른 숙고도 없이 결정해버린 템플스테이. 인터넷에서 템플스테이를 검색하고 가까운 지역, 가까운 사찰을 찾았다. 그래서 전등사.
 
 
첫 날 11시 00분 전등사 도착
 
템플스테이 사무국에서 보내 온 안내 문자에 의하면 오후 3시까지 도착하면 된다. 그러나 ‘11시 30분까지 오시면 점심공양을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끄트머리 문장에 아침부터 서둘러 출발했다. 도착하니 11시. 너무 이른 탓인가? 사무국 문은 잠겨 있고 전화를 했더니 담당 직원은 외국인 경내 안내 중이라며 기다리라고 한다.(전등사는 외국인을 위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경내를 돌아보는데 조그만 서점이 눈에 띈다. 무조건 들어가 둘러보다 손닿는 얇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禪房日記). 강금실 전 장관이 검사들에게 선물하여 유명세도 탔다는데, 선채로 훑어보니 저자 소개가 심상치 않다. 저자를 소개하는 문장의 끝이 ‘…로 추정된다, …라고 한다, …이나 확실치 않다.’가 대부분이다. 뭐지? 지허 스님이 실존인물이긴 한 건가?

 

<전등사 도착 후 잠시 돌아본 경내>
 
 
15시 30분 사찰 습의(習儀)
 
의식을 미리 배워 익히는 것을 습의라고 한다. 여기서는 주로 예불 안내 및 공양간 안내를 일컫는 것 같다. 숙소(여기서는 방사(坊舍)라고 한다)를 배정 받았는데 예상과 달리 독방인데다가 난방 및 화장실 등의 시설이 부족함 없이 잘되어 있다.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방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한다. 금세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래, 잘 왔어, 잘 온 거야…
 


<방 중앙에서 방문 쪽을 찍었다. 고풍스런 모습과 달리 부대시설은 현대적이다.>
 
 
17시 00분 저녁 공양
 
하루 끼니를 절에서는 공양이라고 한다. 사찰문화에 무지한 나는 저녁 공양이라고 해서 헌금을 드리는 것처럼 저녁에 뭔가를 바치는 건줄 알았다. 여기서는 밥을 먹을 때 일부러 함께 먹을 필요가 없어 좋다. 야근을 하며 혼자 밥집 출입할 때는 더러 처량도 하더니만 여기서는 혼자인 것이 오히려 자유롭고 편안하다. 아마 이런 느낌 때문에 사람들이 템플스테이에 오는가 싶기도 했다.
 
18시 00분 사물 타종
 
보통 북, 징, 장구, 꽹과리를 사물이라고 하지만, 사찰에서는 법고, 범종, 목어, 운판을 가리킨다. 북면을 수소와 암소 가죽으로 만든 법고는 땅위의 모든 생물을, 범종은 모든 중생을, 목어는 모든 물속 생물을, 운판은 공중의 모든 생물을 제도(濟度)하는 의미가 있다.
난 범종 소리가 가장 좋았다. 가까이서 직접 치고 들으니 물결치는 울림이 생생했다. 길다가 짧게, 높다가 낮게, 은은하다 굉음으로… 소리는 두 귀로 들어와 내 전체를 휘젓고 나가는 것 같았다.
 
 
18시 30분 저녁 예불
 
아주 간단하다. 스님 따라 절 몇 번하면 끝. 예불 이후 스님의 금강경을 따라 읽거나, 백팔배를 하거나 조용히 앉아 명상을 하거나 숙소로 들어가거나 자유롭다. 나는 명상을 택했다. 한참 지나 눈을 떠 보니 옆에서는 아직도 절에 열중하고 있다. 왜 저렇게 필사적으로 절을 할까? 결핍의 만회를 위해서? 아니면 무엇인가를 버리기 위해서? 그런데 나는?
비우고 풀기 위해서 왔다. 생활과 사고의 틀을 아주 쉽고 단순하게 하고 싶었다.
 
이튿날 04시 00분 도량석
 
사찰에서 예불 전에 도량(불도를 수행하는 장소)을 청정히 하기 위해 행하는 의식으로 새벽 4시경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경내를 순회한다. 대개 그 소리에 일어나는 데, 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전날 밤 9시에 누웠는데 여러 번 깼다. 산중이라 그런지 해 떨어지니 칠흑 같았다. 한참을 자다 깨어 보면 열한시였고, 새벽 두시, 새벽 네 시였다.
 
04시 30분 새벽 예불
 
안 나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 나는 예불 후 명상을 하다 방사에 들어와 명상을 계속했다.
 
06시 00분 아침 공양
 
새벽인데도 밥맛이 좋았다. 절밥은 육류가 안 들어가 소화가 금방 되어 늘 밥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누구한테 들었더라? 아, 그래. 학교 유 선생이 그랬었지.
 
10시 00분 스님과의 차담
 
차담 중에 성균관대에 교환학생으로 왔다는 필리핀 아가씨가 울었다. 서른 넘은 늦깎이에 공부를 끝내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두렵다고 했다. 유난히 부산한 꼬마와 함께 온 젊은 엄마는 누군가와의 인연을 끊고 싶단다. 그런데 상대가 불쌍한 마음이 들어 자꾸 만나게 된다고 하소연하다 끝내 눈물을 짓고 말았다. 모두 초면인데도 내밀한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풀어간다. 누구라도 마찬가지.
 
“무엇이 어려운가요?”
“잔잔하고 고요하게 내면을 유지하고 싶은 데 자주 일렁이게 됩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데 화를 자주 내십니까?”
“아니오, 화를 내지는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는 데 그런 고난이 있으신지?”
“혁신학교를 만들어 가려는데 여럿이 함께 추진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습니다.”
“사람 마음 모으는 데 어려움이 있으시군요. 쉽지 않은 일이지요. 하지만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니 보람도 있으시겠습니다.”
“네, 그럼요, 보람도 많지요.”
“그런 좋은 감정으로 고단함을 상쇄시키며 지내보시지요. 이쪽이냐, 저쪽이냐의 선택은 언제나 본인에게 있기 마련입니다. 좋은 학교도 꼭 성공하시길….”
 

<경내에 찻집이 있다. 빌리홀리데이 같은 재즈싱어의 음악이 종일 흐른다. 의외로 잘 어울린다.>
 
 
11시 00분 방청소(운력)
 
‘함께 일한다’는 뜻의 운력(運力)은 울력이라고도 하며, 여럿의 힘을 구름처럼 모은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한다. 별다른 주전부리가 없어서일까? 이부자리 개고 비질 한 번 하니 더 치울 것이 없다. 혼자 살면 다 이렇게 단출한가? 설마 그렇지야 않겠지.
 
 
11시 30분 점심공양 그리고 회향(回向)
 
점심을 먹으면 각자 회향이다. 회향이란 본래 자기가 닦은 공덕을 널리 베풀어 깨닫도록 한다는 의미인데 일정을 끝내고 돌아간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차에 시동을 걸어 놓고 잠시 주위를 거니는데 ≪선방일기≫의 〈본능과 선객〉중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갖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갖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자주 만나 괴롭다.
 
애증(愛憎)을 떠나 오직 무심(無心)으로 살라! 아, 그렇게 간단히 정리가 된다면야 더할 수 없이 좋겠지만, 갖은 세상 부침을 겪으며 사는 뭇 인간에게 어디 쉬운 일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