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결한 마을, 소통의 시작... 풀려가는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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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한 마을, 소통의 시작... 풀려가는 갈등
  • 이세민 통두레실록 '틈만나면'
  • 승인 2016.01.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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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두레 공동체 현장을 찾아]⑩노적산 호미마을 통두레
남구에 ‘통두레’라는 소모임들이 생긴지 올해로 3년째다. 지역의 리더를 중심으로 5명 이상 모여 마을환경개선 사업을 비롯, 방범·안전, 주차, 지역봉사, 육아 등의 마을 현안을 주민 스스로 해결해 주민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남구에는 21개 동에 현재 53개의 통두레가 조직돼있다. <인천in>은 통두레 현장에서 활동하는 ‘통두레 실록’팀(팀명 '틈만나면')의 청년 작가들과 함께 통두레별로 현장을 찾아 그들의 활동을 취재, 연재한다.


우리 집 앞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을 때 취할 수 있는 행동 몇 가지가 있다. 민원을 부를 수도 있고 수고스럽지만 직접 치울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자연스럽게 쓰레기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가령, 쓰레기가 자주 버려지는 곳에 꽃을 심어본다면 어떨까? 마을을 좋고(好) 아름답게(美) 만들고 싶은 개인의 노력이 서서히 마을 곳곳에 퍼지기까지, 호미마을이 엮어가는 마을 이야기를 주민들로 부터 들어본다.

“온 동네가 쓰레기였어.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위 아파트 쪽 사람들 까지 우리 동네에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했지. 미쳐 버리겠는 거야. 통장님들이 나와서 치우는 것도 한계가 있었어. 지키고 있지 않는 한 쓰레기가 줄어들지를 않았거든. 버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건 어떨까 싶어서 주민센터와 협력해 거기다 화단을 만들고 꽃을 심었지.”

여차여차 화단을 꾸미고 난 뒤 마을을 돌아보니 쓰레기의 흔적들이 벽들에 새까맣게 남아 있었다. 애초에 시작한 일 화끈하게 마무리 짓자는 심정으로 페인트칠을 시작했다. 통·반장님들, 자원봉사센터 사람들 모두가 하루 만에 마을 하나를 들었다 놓았다. 동시에 산적한 쓰레기 더미들과의 작고를 선언한 것은 물론이다.




서서히 풀어나가는 갈등의 실마리

“여기는 지금 주변의 여러 상황으로 보아 개발될 가능성이 드물어. 그래서 주변의 다른 곳들은 보다시피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그 사이에 끼어서 우리 마을만 이렇게 남아 있어. 재개발을 열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포기하고 지금 있는 집 잘 고쳐서 그냥 살자는 사람도 있어. 또 한 동네에 세입자와 집주인들의 관계도 묘하게 얽혀있고, 아파트 사람들이 이 동네를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 우리들 때문에 집값 떨어진다고.”

쓰레기를 걷어내니 마을의 문제들이 서서히 수면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 때 동네를 휩쓴 재개발 열풍이 남긴 감정의 잔해들이었다. 지난 십 몇 년 동안 동네는 재개발 덕에 보상금을 많이 받은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같은 마을에 살면서 구역이 다르단 이유로, 집주인이 아니란 이유로 각자 다른 결과를 맞이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 가슴속에 응어리가 없을 리 만무했다. 쓰레기가 쌓여감에 따라 갈등도 깊어져갔지만 문제를 풀어나갈 어떠한 방법도, 장도 마련되지 않았다. 꽃으로 쓰레기 더미를 막아냈던 사람들은 생각했다. 각자 갖고 있는 재능을 마을에서 나눌 수 있다면? 벌어진 갈등의 틈은 그것으로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그림수업이다.

곧 마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을 강사 본인의 작품과 더불어 사람들의 벽화와 작품들이 골목을 채워가니 동네의 온도가 달라졌다. 한 때 인천 남구의 대표적인 우범지역이라 외출을 꺼리던 거리로 사람들이 나오고, 모이고, 서로의 그림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한 두 사람의 일방적 봉사였던 일들이 마을 전체로 확산되면서 봉합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했다. 호미마을의 벽화는 이제 주변 아파트에서도 구경 올 정도로 다양해졌고, 주민 상호간의 정으로 단단해졌다. 갖가지 노력들이 송글 송글 맺힐 무렵의 2014년 여름, 호미마을은 워크숍을 통해 ‘2020년 마을 계획’이란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




마을을 만들어 간다는 것

“마을 계획의 최종 목표는 청결한 마을, 주민들 간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마을, 그리고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마을이야. 그 중간 단계로 지금 마을 축제를 생각하고 있어. 마을에 하나 둘 모이는 관심을 구체적으로 끌어내서 주민들 서로가 소속감과 끈끈한 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믈론 아파트 사람들과 우리 동네 사람들 간의 소통도 기대하고.”

수리를 미루던 집들이 올해부터 슬슬 주택 여기저기를 손보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주민들이 현재의 주거환경과 삶의 행복에 초점을 맞췄다는 신호임은 분명하다. 예전보다 정비되고 깔끔해진 거리를 ‘신뢰’하고 ‘인정’ 한다는 뜻이다. 마을이란 단어가 성큼 주민들에게 다가간 듯하다. 유행처럼 쭉 늘어져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같은 색의 기와들이 마냥 촌스럽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너와 내가 다르고 우리와 저들이 다르기에 갈등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그 다름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마을을 만들어 나가는 큰 과정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갈등의 정도가 개인의 범위를 뛰어넘거나 ‘나는 우리 동네 사람’ 이라는 인식이 희미해 질 때 상황은 여러모로 악화되기 마련이다. 개인이 치울 수 있는 쓰레기의 양이 너무 많거나, 쓰레기가 마을에 있든 말든 상관 없어하는 두 태도 모두 문제가 되듯이 말이다. 그렇기에 그 상황을 조율해 줄 수 있는 중간자 입장의 마을 리더가 중요하다. 갈등을 건강한 방향으로 풀어나감과 더불어, 우리가 함께 한다는 의식을 주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 마을을 만들어 간다는 것의 시작은, 그와 같은 사람들과 주민들이 마을 안에서 빚어내는 하모니의 첫 소절과도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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