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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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
  • 편집부
  • 승인 2016.02.1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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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두레 공동체 현장을 찾아]⑪우각이 통두레

도로의 모양이 소의 뿔 모양을 닮았다 하여 지어진 ‘우각로’는 인천이 개항을 맞이한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여러 질곡의 시간들을 담고 있는 거리다. 이 고갯길은 옛 개항 당시 서울을 오가는 가장 큰 길이었다. 그래서인지 인천에서 서구문물이 가장 먼저 찾아온 곳이 기도 하다. ‘우각이 통두레’는 그 길의 한 가운데서 어제의 기억과 오늘의 상흔을 안고 황소처럼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전도관이 품은 옛 이야기

예전부터 인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숭의동 109번지 ‘전도관 마을’의 명성에 대해서 한 번 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6,70년대 아이들에게 이곳은 미지의 공간, 공포의 장소로 기억되었다고 한다. 전도관에 위치했던 예루살렘교회의 여파로 동네 전체가 매일 들썩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다 지난 추억이다. 폐·공가들이 마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어 밤이 되면 동네 전체가 캄캄해지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언덕 위 살짝 빛바랜 전도관 건물이 내뿜는 미묘한 자태가 그 옛날 이야기들에 신비감을 더한다. 어쩌면 이 모습에 반해 예술인들이 찾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재개발이 안고 있는 어두운 면모들에 서로가 적지 않은 생채기를 떠안았지만 그 상처를 디딛고 마을을 위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는 ‘우각이 통두레’의 모습을 가슴 깊이 담아왔다.


“이 주변에 빈집이 굉장히 많아요. 예전에 전도관에 교회가 있었을 때는 그 분들이 이 주변에 거주하느라 마을 전체가 빽빽하게 사람들로 다 차있었어요. 그런데 교회가 나가고, 여기가 재개발 지구로 지정되면서 외지 사람들이 집을 사고, 개발 이익을 노리기 위해 세를 안주고 그냥 빈 건물로 방치해 놓았어요. 그런데 지정되고 나서 15년이 지나도록 재개발은 아직도 안하고 있고.. 집은 그대로 비어 있는 것이죠.”

집들이 비고 골목에 불빛이 없어지자 그 틈을 비행 청소년, 노숙자, 그리고 무단으로 투기되는 쓰레기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주민들은 불안에 떨었고 자신들이 몇 십년 동안 삶의 터전으로 삼아왔던 마을에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탄생한 ‘우각이 통두레’는 매주 한 번씩 밤마다 마을 순찰을 다니면서, 빈집에서 발생하는 사고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주민들에게 안정감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든든한 마을 지킴이

가파른 지형도 힘들지만, 아직까지 주민참여가 많지 않은 점도 힘든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통두레 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도 많다. 여름철 평상에 앉아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건네주는 수박 한조각과 음료수 한 캔에 지금까지의 수고가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든든하다’는 한 마디가 소의 뒷발길질 같은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게 한다.

“다과 준비나 장비 지원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주민들이 대부분 노인이고 하다 보니까 주민들 중에서 같이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어요. 그런 와중에서 7명 정도의 사람이 모였는데 그 사람들 끼리 각출해서 장비나 진행비를 준비 하는건 한계가 있단 말이에요. 이런 상황에서도 주민 분들이 우리 돌아다니는걸 보고 마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우리에게도 힘내라고 말씀해 주시면 그것으로 보람을 느끼고는 있죠.”


아직 느리지만, 황소의 걸음이기에 가능한 일

지금은 활동이 주춤하지만 3-4년 전 부터 예술인들이 동네에 들어와 마을 주민들과 함께 활동했다. 그들은 빈 집을 수리하고, 새롭게 단장하며 자신들의 색과 마을의 특성을 조화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마을 내 자리 잡고 있던 재개발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지역의 주된 구성원이 활동이 불편한 노인분들이란 사실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는데 한계로 작용했다. 또한 이러한 동네 분위기 탓에 외부활동과 마을의 적절한 조화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아직까지 무엇을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우각이 통두레를 정착시키고 주민들에게 많이 알리는게 지금은 가장 급한 일이에요. 궁극적으로는 우리 동네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많이 들렸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미래잖아요. 그 만큼 사람들이 살고 싶고, 아이 키우고 싶은 곳이 되었으면 해요.”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에 대한 애정을 한 순간에 져버리는 일은 쉽지 않다. 많은 이가 떠난 이곳에서 아직까지 남아있는 몇몇의 사람들에게 전도관 마을은 개발이익의 수단이기 보다는 지난날의 연민과 추억의 대상이다. 그것이 우각이 통두레가 멈추지 않는 이유이고, 가능성이다.

지역 안에서 민과 관의 협치 형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때이다. 그럴수록 지역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지원의 다양성도 보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소의 걸음처럼 묵묵히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갖고 걸어 나가는 사람들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들의 합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지역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공론장과 참여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게 아닐까? 통두레와 함께 서서히 밝아질 마을의 모습을 기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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