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사랑과 공동체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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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사랑과 공동체복원
  • 윤현위
  • 승인 2016.02.24 14:2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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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윤현위 / 자유기고가(지리학박사)


조금 지난 일이지만 나는 요즘 어린 아이들을 보면 옥상에서 ‘캠맘 피살 사건’이 생각난다. 아파트 옥상에서 벽돌을 던진 아이들을 보며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자꾸 그 생각이 떠오른다.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더욱 더 충격인 것은 사건 이후 부모의 태도였다. 자기 자식이 잘못될까봐 걱정하는 모습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캠맘 사건 이후에 문득 몇 해 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벌어졌던 성추행사건이 기억났다. 의대에 다니는 남학생들이 동기인 여학생을 성추행해서 크게 언론에 났었던 일이다. 언론보도 이후 비난 여론이 커지자 고대는 해당학생들을 출교 조치했었다. 출교를 당하면 학적이 지워진다. 한국에서 학적이 지워진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국적은 바꿔도 바꿀 수 없는 학적 아닌가?


출교를 당한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학교 앞에서 피켓 시위를 했었다. 재판에서 판결이 났음에도 어머니는 아들의 출교가 억울하다며 피켓 시위를 했었다. 극한상황에서 자식에게 큰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이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잘 못된 일일 때, 부모된 입장에서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까? 그리고 취했을까?


아주 일부의 일이긴 하지만 우리가 아이들을 이기적으로 키웠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필자는 자식이 없기에 자식을 키워보지 않았다. 그래도 과거와 아이들이 자라나는 환경이 달라졌다는 것쯤은 안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탁구이야기다.


필자는 탁구를 가끔 친다. 예전에는 탁구장이 정말 많았었다. 석바위 사거리에 탁구장은 지금도 건재하고 있지만 예전엔 경인상가 꼭대기층에도 주안초등학교 옆에도 탁구장이 있었다. 레슨을 할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주위 사람들과 동네 형들에게 배웠던 기억이 난다. 밖에서 탁구를 치면 지나가던 인하대학교 다니던 형들이 자세와 서브 넣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간혹 갓 대학에 들어온 지금의 14학번이나 15학번 학생들과 탁구를 칠 일이 있는데 탁구를 안치는 학생들은 아예 칠줄 모르지만 치는 학생들은 모두 장비를 갖추고 폼도 매우 좋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린 시절에 탁구교실을 다녔다는 것이다. 탁구교실의 주인들은 88올림픽시절부터 탁구를 보시던 분들은 다 알만한 선수들이다.


사실 좀 놀랐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탁구교실에서 배우다니, 이건 잘 살고 못 살고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농구와 축구도 모두 동네 형들에게 배웠던 나와 달리 지금 어린 학생들은 대부분 스포츠교실에서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좋은 시설에서 정규코스를 밟은 선수나 체육관련 전공을 한 선생님에게 운동을 배우는 일이 무엇이 문제겠는가?


허나 이건 역으로 생각하면 더 이상 골목에서 동네에서 아이들이 만나서 놀고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 사라져가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아이들이 그러진 않겠지만 하교시간에 학교문 앞에서 차를 대고 기다린다. 학원에 데려다주기 위해서다. 학원을 데려다주고 끝나면 다시 집으로 태워온다. 이 광경은 아이들이 대학시험을 볼 때까지 이어진다. 과도한 경쟁구조의 입시제도도 문제고 아이들이 모여서 놀 수 있는 동네자체가 별로 없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사는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이제 절반 이상이 아파트이다. 아직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도시라 할지라고 그 동안 계속적으로 아파트를 지어왔기 때문에 동네는 사라져갔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지만 역설적으로 철저하게 분절되어 사는 생활환경이 더 이상은 아이들을 모일 수 없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제 실시간으로 학교에 간 아이들과 연락이 된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장학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아졌다. 이러한 환경변화가 혹시 우리의 아이들을 이기적으로 이기적인 부모를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동네에서 아이들을 끼리 어울리면 나쁜 것도 배우지만 사회성도 기르고 친구도 만난다. 적어도 덜 이기적인 아이들이 된다. 이때 동네, 마을공동체는 아이들이 자라나는 환경이 된다. 지금의 부모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자신들이 학교에 다닐 때, 부모님들이 본인을 자신을 어떻게 키우셨는지, 지금 자기가 할 줄 아는 악기, 운동은 누구한테 배웠는지, 친구와 싸우면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지 말이다. 지금 아이들을 옥죄는건 그때의 반동이나 불만 때문에 그런게 아니라는건 다들 동의 하실게다.


‘우리는 주택이 아니라 근린에 산다’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 밑에서만 자라고 성장하지 않는다. 지금은 사회성을 길러주던 동네가 그리고 동네의 형 누나들이 없다.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자식이 잘못했을 때에는 따끔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도덕적 인성이, 입시설명회에 따라다니고 과외선생과 과외그룹을 모집하는 열정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야 아이들이 계약직 선생님을 때리지 않는 학교가 된다. 그래야 ‘내가 자식같이 생각해서 그래’라는 말에 진정성이 담길 수 있다.



<사진은 지난 2015년 여름 '배다리 바깡스' 행사 때 마을주민들이 행사를 벌이고 있는 장면. 사진은 강영희 객원기자가 촬영하여 인천in에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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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위 2016-02-24 19:10:40
아 사진을 제가 넣지 않았는데, 편집하시면서 신문사에서 넣은 것 같습니다. 문의해보고 다시 답글 남기겠습니다.

강영희 2016-02-24 15:56:40
헉! 제 사진이 왜 여기에 ^^; .. 출처는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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