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같은 섬’ 볼음도를 걸음으로 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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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같은 섬’ 볼음도를 걸음으로 채우고
  • 이재은
  • 승인 2016.03.02 10: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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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의 섬마을 사진 이야기]5-볼음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새해 맞이, 잘 하셨나요?
 
12월에는 ‘섬마을 이야기’ 출사를 한 달 쉬었고, 1월에는 선재도, 영흥도를 돌았는데 저는 개인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했어요. 지난주, 강화군 서도면에 위치한 ‘볼음도’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볼음도(乶音島)는 보름달의 발음을 따서 지어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조선 인조 때 명나라로 가던 임경업 장군이 풍랑을 만나 이곳에 머물던 중 보름달을 보았다죠. 만월도(滿月島)라 부르다가 보름이 ‘볼음’이 되었습니다.
 
강화에서 서쪽으로 7킬로미터 떨어져있고, 황해도 연백군과는 5.5킬로미터 거리예요. 서해 최북단으로 민통선 지역입니다. 강화 외포리 선착장에서 승선신고서를 작성, 신분증과 함께 ‘얼굴을 들이밀어야만’ 티켓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배를 타기 전, 군인들이 다시 신분 확인을 하는 등 방문 절차가 조금 까다로운 편입니다.

 
물고기 모양을 본 따 나무로 만든 이정표 ⓒ 이재은
 
 
수명을 다한 모니터와 돌이 어우러져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 이재은
 

인천의 섬 개발 정책으로 볼음도 역시 트레킹코스 및 나들길이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섬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충분히 다닐 수 있지만 ‘산책’보다는 ‘트레킹’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립니다. 섬 중심에서 가장 먼 은행나무까지 4.3킬로미터 거리거든요. 볼음도는 강화나들길 13코스에 해당하는데 선착장-물엄곶-조개골 해수욕장-영뜰 해수욕장-요옥산-은행나무-밭바위뜰-당아래마을-선착장까지 총 13.6킬로미터, 소요시간은 약 3시간 30분입니다.
 
볼음도에는 800년 전 수해가 심할 때 북쪽에서 떠내려온 것을 심었다는 천연기념물 제304호 은행나무, 1903년에 설립된 100년 역사의 볼음교회가 있습니다. 마을 언덕에 있는 볼음교회는 어디서든 쉽게 눈에 띄지만 ‘섬의 휴식 같은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 보였어요.
 
서도초등학교 볼음분교 ⓒ 이재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마을 중심에 있는 서도초등학교 및 중학교 볼음분교였어요. 섬에서 젊은층이나 학생, 어린이를 볼 수 없게 된 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어서 볼음분교도 현재 휴교상태입니다. 저희가 묵었던 흙집민박 주인의 다섯 살 어린이가 자라 입학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데 ‘단 한 명의 어린이를 위해 존재하는 학교’라는 사연을 가졌기 때문인지 꽤 낭만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겨울 섬의 매력은 뭘까요? 따듯한 볕을 받으며 해수욕을 하거나 휴가를 즐기기에 1, 2월의 섬은 적당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파도 대신 얼음 언 바다를 보거나 파란 하늘에 내걸린 뽀얀 뭉게구름을 넋 놓고 쳐다보기, 크게 숨을 내쉬며 맑은 공기로 배를 채우기에 겨울은 더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휴일 아침의 구름, 구름, 구름 ⓒ 이재은
 

정말로 사람이 살지 않는지, 겨우내 집을 비우고 육지에 나가 계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볼음도에는 빈 집이 많았는데 그 텅 빔조차 ‘휴식’에 덧대어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걸음걸음마다 바람과 햇살을 고스란히 맞으며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오래된 풍경 속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석모도 등의 유명세에 가려 알려지지 않았다며 섬 주민들은 “예쁜 사진 찍어서 볼음도 좀 알려주세요”하고 바랐지만 저는 왁자지껄한 볼음도는 상상할 수 없어요. 자분한 걸음에 놀라 날아오르던 기러기떼, 길 가던 일행을 붙잡고 외로움을 털어놓던 어르신, 볕이 닿은 마루에 걸터앉아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던 목소리가 자꾸 떠오릅니다.
 

오래된 여인숙 간판 ⓒ 이재은
 
 
볼음도는 하루 두 번 배가 닿는데 섬 주민의 편의에 맞춰져 있어 당일로 둘러보기에는 촉박한 감이 있어요. 그렇다면 하루 푹 쉬었다 오시라고 권해드립니다. 슈퍼도 없고, 비수기에는 식당 간판을 내건 음식점도 문을 열지 않지만 방문 전 홈페이지를 통해 얼마든지 숙소나 식당을 예약할 수 있어요.
 
그럴 듯한 대상을 찾아 카메라를 들이대고자 했다면 실망 가득, 여백과 낡음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했다면 새로운 관점이 선사한 신선한 사진을 얻으셨을 거예요. 새해에도 사진공간 배다리의 인천 섬 프로젝트 ‘섬마을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3월에는 2박 3일 일정으로 덕적도와 굴업도에 갑니다.
완연한 봄볕 아래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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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환 2016-06-03 18:22:37
볼롬도는 우리 외할아버지의 재산이었는데 공출당해 빼앗기었다고 들었는데 감회가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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