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어떻게 집이고, 또 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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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어떻게 집이고, 또 집이 아닐까?
  • 이재은
  • 승인 2016.04.04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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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객원기자의 섬마을 사진 이야기’ 6-덕적도, 굴업도

 

덕적도 북리의 폐가가 과거라면 백패킹으로 인기 있는 굴업도 개머리 초원의 텐트는 현재입니다. 사진을 좀 보세요. 색깔부터 다르죠? 과거는 무채색, 현재는 알록달록 무지개 색입니다.
 

  덕적도 북리 ⓒ 이재은

  굴업도 개머리초원 ⓒ 이재은


섬에는 폐가가 많습니다. ‘모든’ 섬이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섬이 그렇습니다. 도시처럼 ‘개발’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아 단독으로 집을 짓거나 식당을 리모델링 하는 일이 드문드문 일어날 뿐입니다.

자식들이 도시로 떠나지 않고, 뭍에서 오는 손님이 넘쳐났다면 어떻게든 집을 유지했겠지요. 한평생 섬에 살아 병원과 문화시설, 편리한 교통에 끌려 섬이 인구는 점점 줄어듭니다.
 

덕적도 북리 방문은 두 번째입니다. “변한 게 없더라”라고 말할 수도, 말도 못할 정도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전에는 일몰 무렵에 마을 어르신의 집에서 불을 쬐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밝은 오후에 도착해 마을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을 보여주는 폐가 내부에 들어가 한참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람은 없고 빛과 넝쿨가지, 거미줄, 낙엽 같은 자연에 둘러싸인 마당 한가운데서 우물을 발견합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우물 속에는 텅 빈 봄하늘만 있네요.

 

덕적도 북리 ⓒ 이재은

 

북리어항은 1950-60년대 파시(고기가 한창 잡힐 때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로 성황을 이루던 곳입니다. 개도 지폐를 물고 갈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고 하죠.
 

“그때 당시에 화장실이 어딨어. 똥 바위 아래다 오줌도 싸고 똥도 싸고 그랬지. 깜빡하고 휴지를 안 갖고 오면 주머니를 뒤지는 거야. 오백 원짜리도 나오고, 천 원짜리도 나오거든. 그걸로 밑을 닦고 버리는 거지. 그만큼 잘 살았다고. 다 잘 살았어. 밑 닦고 버린 돈을 개가 주워 물고 돌아다녀서 ‘개도 지폐 물고 다니던 시절’이라는 말이 나왔어.”
 

아직도 당시 파시의 풍경을 짐작케하는 주택, 창고, 목욕탕, 다방, 여관 등의 건물이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터만 남거나 다른 건물이 들어섰지만 마을에 극장도 두 개나 있었으니 덕적도의 파시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죠.
 

큰길에서는 개구멍으로 진입해(?) 어부들이 하루 머물고 가는 숙박시설의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칸칸이 반듯하게 나누어진 방은 깜짝 놀랄 정도로 작았는데 누군가 갑자기 떠나기라도 한 것처럼 이불이며 선풍기, 텔레비전이 그대로 놓여있었습니다. 마침 해질 무렵이라 햇살이 창을 넘어 분홍빛 방을 비추더군요. 1호, 2호, 3호, 문 이마에는 손으로 쓴 것 같은 이름이 정직하게 적혀있습니다.
 

덕적도 북리 ⓒ 이재은

 

굴업도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1994년 정부가 핵폐기물 투기장으로 굴업도를 지정하면서부터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이 굴업도에 갔고, 굴업도의 자연이 외부에 알려졌습니다.
 

이후 CJ 그룹이 굴업도 땅의 98% 이상을 소유하면서 골프장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개머리 초원에 골프장을, 주민이 사는 마을에 콘도 미니엄을, 선착장에는 요트 계류장을 건설하겠다는 거였죠. 시민단체와 문화예술인들은 적극적으로 반대했고 여전히 운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민이래야 열한 가구 20여명이 전부. 이들 중에는 개발을 찬성하는 사람도 있는데 섬 밖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속내까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개머리 초원에 올라가 보고서야 ‘골프장이라니, 말도 안 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섬을, 이 고요한 섬을, 섬 속에 하루살이용 집을 짓고 섬의 모습으로 사람을 품어 안는 섬을 밀어버린다니 말도 안 돼.’
 

굴업도 개머리초원 ⓒ 이재은


뭍 사람에게 섬은 잠깐 왔다 가는 여행지일지 몰라도, 섬 사람에게 섬은 집입니다.
한때 살아있던 곳이어서, 그리고 지금 살아있어서 아름다운 집을 보았습니다.

 

4월에는 승봉도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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