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의 도화선 5.3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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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의 도화선 5.3항쟁
  • 이한수
  • 승인 2016.04.2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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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팩션] (14)차주옥 장편소설 '함께 가자 우리'

메이데이(노동절)를 맞아 5.3항쟁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메이데이는 5.3항쟁이 일어난 1986년으로부터 딱 100년 전 1886년 5월 1일 미국에서 일어난 전국총파업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한국에서 분단 이후 노동자가 사회 변혁의 주체로 등장한 때를 87년 7,8,9노동자대투쟁이라고 보는데 이 투쟁은 1986년 5월 3일 인천항쟁에서 시작되었다고 봐야합니다. 독재 정권은 그 의미를 폄훼하여 5.3소요사태라 규정했지만 그 역사적 의의는 재평가되어야 하며, 5.3민주항쟁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광주 시민을 무참하게 살육하며 권력을 잡은 부도덕한 정권을 무너뜨린 6.10항쟁은 5.3인천항쟁으로 촉발되었으며 시위 현장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5.3을 기점으로 노동자가 저항 주체 세력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메이데이를 맞아 5.3을 다시 돌아보아야 마땅합니다.

‘자고로 배운 자라야 나라 살림에 대해 이런 저런 논평이라도 할 수 있는 거지, 공돌이 공순이가 뭘 안다고 나랏일에 나서는가’ 하며 노동자를 업신여기던 구태한 시절에 ‘나약한 인텔리(지식인)를 신뢰할 수 없다’는 논쟁까지 벌어졌으니 그 격동의 현장이 어떠했을까요. 5.3으로 촉발되어 6.10항쟁으로 확산되고, 독재 정권의 6.29 항복 선언을 거쳐, 7,8.9노동자대투쟁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역사는 비약(飛躍)을 합니다. 1세기에 걸친 고난으로 굴려질 역사의 바퀴가 이 나라에서는 한 해만에 축지(縮地)를 했으니 비약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5.3항쟁이 일어나기 반 년 전인 85년 10월에 결성된 ‘전국노동자3민헌법쟁취위원회’는 그동안 신민당(당시 제1야당)이 주도했던 직선제 개헌 운동과 노선을 달리하게 됩니다. 85년 2월 총선에서 승리한 신민당이 직선제 개헌투쟁을 벌이자 전두환 정권은 4.13 호헌 조처를 발표하고 이에 맞서 야당과 재야 범민주 세력은 전국을 돌며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는데 시도별로 수십만 시위 군중이 모이는 등 국민적 지지가 대단했습니다. 그러자 청와대는 신민당 대표 ‘이민우’를 불러 협상을 하는데, 일각에서는 야당의 기회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투쟁 대오 내부에 갈등과 균열이 일어납니다.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시위를 주도하기 시작하고 민중이 국가체제 건설(삼민헌법)의 주체로 등장하면서 겪게 되는 사회 변혁의 격통이 인천 5.3항쟁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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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5월 3일 주안시민회관 앞 시위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5.3인천항쟁은 ‘인천노동운동연맹’(인노련)과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인사련)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는데, ‘인노련’은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인사련’은 재야와 대학생들을 주로 조직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은 정파 갈등으로 내분을 겪기 시작했고 노동운동은 대학생 출신 활동가들이 이끌었으니 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 자료에 의하면 86년 인천 공단 대학생 출신 위장취업자가 246명에 달해 서울 181, 경기 178명과 비교해 월등하게 많았고 거의 모든 사업장에 위장취업자가 들어가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이들에 의해 현장 노동 대중이 5.3 정치투쟁에 동원된 것이니 야당을 포함한 범민주 진영과 투쟁 노선의 격차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자생성이 없이 정치투쟁에 동원된 노동 대중의 고통은 또 다른 역사의 질곡을 낳게 됩니다. 여성 노동자가 쓴 최초의 장편소설로 평가받는 <함께 가자 우리> 그 역사 현장의 아픔을 절절하게 공감하게 만듭니다.

<함께 가자 우리>는 '얼굴 없는 여성 노동자 작가' 차주옥(실명 김연)의 작품으로 80년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여실하게 반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80년대 문학계의 노동소설 대세를 상징하는 대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을 마친 후 수 년 동안 노동현장에서 일해 온 작가가 실제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86년 초에서 87년 7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섬유업체의 여성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노동조합 건설에 나서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소설은 작가의 자서전으로 봐도 될 만큼 실제 경험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작가 차주옥(본명 김연)은 광주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교사이고 첫 딸로 태어나 참 유복하게 자랐다고 할 수 있는데 고등학생 때 광주항쟁을 겪으면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가졌을 겁니다. 공부를 썩 잘해서 연세대에 입학했지만 학업을 중단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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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연세대 김연과 2009년 자택 앞 김연

86년, 87년 자신이 직접 겪은 노동 현장 투신 경험을 ‘차주옥’이라는 필명으로 쓴 소설 [함께 가자 우리]를 1990년에 발표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작품이 그리고 있는 시대고(時代苦)는 작가의 성장통과 일치합니다. 작품에서 ‘계순’은 임신한 아이를 지우지만 작가는 남편과의 이혼을 무릅쓰면서 아이를 낳아 혼자 기릅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다시 공부하여 입학한 지 13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에는 소설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기까지 합니다. 상금으로 가평 골짜기 외딴 곳에 집을 짓고 마당에 자작나무를 심어 기르며 딸과 함께 농사짓고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함께 가자 우리]는 노동문학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는 이 땅의 소외된 여성의 삶을 그려 주목을 받았습니다. 작가의 삶 자체가 외로운 투쟁의 연속이었으니 그의 작품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감동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함께 가자 우리]에 등장하는 인물 ‘경철’은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이 노동 대중을 투쟁에 나서도록 부추기면서 저지르는 오류를 잘 형상화하고 있으며 5.3항쟁의 아픈 분열상과 비현실적인 과격한 투쟁노선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경철’은 비밀 조직 활동가로 현장 노동자를 의식화하는 일을 맡고 있고 ‘미자’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공장에 위장 취업하여 대중을 조직하면서 현장 노동자 ‘계순’, ‘경임’ 등을 만나 임금 인상 투쟁을 조직합니다. 그런데 너무 성급하게 덤비는 바람에 조직원들만 노출되고 아무도 동조를 하지 않아 투쟁은 무산되어 버립니다. 조직원들은 공장에서 쫓겨나 흩어지고 맙니다. 그 와중에 혁명 이론가 ‘경철’과 기층 노동자 ‘계순’이 사이에 연정이 싹터 동거까지 하게 되는데 그들의 사랑은 얼마 가지 못합니다.

인천 5.3항쟁 때 엄청난 손실을 입은 조직은 내분에 휩싸이고 ‘경철’과 같은 지도부는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되니 ‘경철’과 ‘계순’ 사이도 파탄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가자 우리]에서는 ‘경철’이 5.3항쟁의 실패에 격분하면서 지도부의 분열에 대해 비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5.3항쟁 지도부의 분열뿐만 아니라 80년대 중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학생 운동권 내부의 분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함께 가자 우리]는 5.3의 현장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 요즘 경철은 계순이 보기에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듯싶다. 그것은 아마 5월 3일 신민당 인천지역 개헌 현판식 싸움 뒤부터라고 기억되는데 종이에 뭐를 긁적긁적 쓰다가도 그걸 찢어서 던져버리고 다시 쓰곤 하는 그 모습이 계순에게는 웬지 불안하였다.
? 경철의 말로는 그 집회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고 또 몇 명의 사람들이 수배가 됐다고 하였다. 경철은 아직은 크게 주목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같이 일하던 주위의 동료들이 그렇게 되니 전체가 흔들리고 경철도 제대로 안 되는 듯싶었다.
? 계순이 방에 들어섰을 때 술병과 마른안주와 수북이 쌓인 꽁초과 여기저기 떨어진 담뱃재로 방은 어디 한 군데 발을 디딜 만한 데가 없는데 경철은 한 구석에 드러누워 중얼거렸다.
? “미제와의 싸움을 지금 해야 한다고? 말도 안 돼. 그럼 미국 백악관으로 쫓아가서 싸우잔 말이야. 무슨 말이야. 군부독재와 싸우다 보면 대중들이 아 이걸로는 안 되겠다 싶을 때 그때 가서 제국주의와 싸워도 전혀 늦질 않는데 말야…….”
- 소설 [함께 가자 우리] 중(中) -

86년 4월에 반미자주화를 기치로 내건 ‘자민투’라는 학생운동 단체가 결성되었고 그해 대학생들의 전방입소 거부투쟁 때에도 ‘미제 용병교육 반대’라는 구호가 등장했습니다. 이어서 5.3 때에도 반미 구호가 등장하고 성조기가 불태워지기도 했는데 이런 과격한 투쟁 전술에 대한 찬반 논쟁이 불거지게 됩니다. ‘인노련’이 계획하고 준비한 집회는 시민회관 앞에서 열리고 ‘인사련’(민통련 포함)이 준비한 집회는 길 건너 주안1동 성당에 따로 열린 것도 그 분열상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투쟁 지도부의 분열상은 정권의 끔찍한 탄압을 초래합니다. 5.3 시위 주동자를 색출하기 위한 수사 과정에서 부천경찰서 권인숙 성고문 사건이 발생하고 그 해 10월 건국대항쟁 때에는 1,200여 명의 학생들이 구속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학생 출신 활동가들이 벌인 임금인상 투쟁에 가담했다가 공장에서 쫓겨난 ‘계순’은 동거하던 ‘경철’과도 헤어지게 됩니다. 둘 사이에 아기가 생기지만 운동을 위해 출산을 반대하는 ‘경철’ 때문에 결국 중절수술까지 받고 심신이 황폐해집니다. 혼자 고통을 부여안고 다른 공장에 취직을 하게 되는데, 옮긴 공장에서 참 인간적인 동료 ‘순이’를 만나 아픈 기억을 극복해 나갑니다. ‘순이’는 ‘경철’, ‘미자’와 같은 의식분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대중을 투쟁 수단으로 여기던 이전 사업장의 운동권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투쟁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동료들을 감동시키고 함부로 가르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계순’은 ‘순이’를 만나 지난 아픔을 치유 받을 뿐만 아니라 노동 현실에 대해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동료들과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며 신뢰를 얻어 갑니다.

‘경철’과 ‘계순’의 비극적 결말은 당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변혁과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한 학생 지식인들의 헌신적 투신은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대중을 소모적으로 투쟁에 동원하여, 실패하면 떠나버리고 마는 무책임한 행태는 노동계급의 주체성을 짓누르고 분열과 혼란의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노동현장에서 주체적으로 싹틔우지 않은, 의식분자에 의해 이식된 투쟁이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반성하고 깨달아 가던 당대 한국의 현실을 현장의 목소리로 잘 반영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80년대 한국 변혁운동을 정확히 그려낸 전형이라고 할 만합니다.

새로운 일터에서 자신의 눈으로 노동 현실을 보게 되고 지난날의 고통을 이겨낸 ‘계순’이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경철한테 아픈 고백을 듣게 됩니다. “전 운동을 하는 사람은 운동을 알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걸 몰랐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면 전 한 인간인 계순씨를 사랑했다기보다는 노동계급인 계순씨를 사랑했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전 다른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던 사람 같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의 칭찬과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컸습니다. 입으로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제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은 민중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냉철한 제 자신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계순’은 의식만 앞섰던 지식분자를 각성하게 만드는 당당한 노동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계순’은 노동조합 조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두려움에 흔들리는 동료들을 지켜주는 든든한 언니가 됩니다. 동료들 앞에서 투쟁을 결의하는 그녀의 모습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그대로 형상화한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나는 과거의 쓰라린 경험으로 하여 다시는 투쟁을 못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전 여러분들과 투쟁을 결의하면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인간의 참행복과 즐거움이 어디에 있는가를 너무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86년 5.3과 87년 노동자대투쟁을 돌아보면서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노랫말이 뇌리에 와 박혔습니다. 너무 급하게 서둘러 일이 망가지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 아픔이 없었다면 그 짧은 시간에 그런 비약적 진보가 가능했을까요. 올해는 5.3항쟁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투쟁의 현장이었던 옛 시민회관 터에서 관할 관청과 재야 단체가 공동으로 기념행사를 연다고 하니 감개무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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