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밭에 쓰레기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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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밭에 쓰레기꽃이 피었습니다
  • 이재은
  • 승인 2016.05.03 0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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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객원기자의 섬마을 사진 이야기] 7 - 승봉도


승봉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섬 남쪽에 위치한 사승봉도를 돌아보는 겁니다. 승봉도에서 작은 어선을 이용해 5분 정도 가면 4킬로에 걸친 은빛 모래밭을 볼 수 있습니다. 이작도의 풀등처럼 물에 잠겼다 드러나는 것이 아닌, 하루 두 번 썰물 때 거대한 모래천지가 펼쳐지죠.

무인도인 사승봉도에서 여행객처럼 보이지 않는 중년 커플을 만났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왔느냐고 묻기에 인천 섬 프로젝트 일환으로 출사를 나온 거라고 대답합니다.
 

중년 커플이 머무는 듯한 천막집 ⓒ 이재은


그런데 ‘사승봉도 입도 요금’을 내라네요? 자신들은 이곳에 살면서 쓰레기를 치우는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겁니다. 승봉도 방문은 여행사를 통해 진행한 터라 순순히 돈을 내지는 않고, 선장님 성함과 숙소 이름을 말해줍니다.

사승봉도는 개인소유라고 알고 있는데 섬 주인이 고용한 사람들일까요? 단순히 입도비를 받으려는 것인지 정말 쓰레기 처리 비용을 받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텐트를 치고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아니고 한두 시간 섬을 둘러보는 것뿐인데 ‘쓰레기 생산자’로 의심받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 덕분에(?) ‘섬의 쓰레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승봉도 ⓒ 이재은

 

사승봉도 ⓒ 이재은


하와이와 미국 본토 사이에는 세계 각국의 해양쓰레기가 섬처럼 모이는 ‘쓰레기섬’이 있습니다. 해류와 바람이 원을 그리며 움직이면서 소용돌이를 형성, 떠다니는 쓰레기들을 잡아 가두는 거죠. 고무장화, 칫솔, 식품용기, 장난감 등 플라스틱이 90% 이상이라 ‘플라스틱 아일랜드’로도 불립니다. 해양오염은 물론, 조각난 플라스틱을 먹이로 알고 삼키는 생물들이 죽기도 합니다.

이 쓰레기를 치울 수는 없을까? 쓰레기섬은 해류에 떠다녀 위치추적이 어렵고, 쓰레기를 치우는 과정에서 해양생물까지 해치는 상황이 유발될 수도 있습니다. 2008년, 해양 쓰레기의 실체와 영향, 해결책, 예방책 등을 연구하고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비영리단체 ‘카이세이 프로젝트’가 설립됐지만 4년 만에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사승봉도 ⓒ 이재은


‘쓰레기를 줍는 섬 여행’을 아시나요?

‘섬 청년 모임’에서 활동하는 20-30대들이 들고 간 포대자루에 파도에 밀려온 쓰레기를 담아옵니다. 섬 여행 겸 환경보존을 실천하는 거죠. 이들은 지원 없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부담하며 섬의 쓰레기를 치웁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발생하는 해양 쓰레기는 17만톤이 넘습니다. 외국에서 해류를 타고 넘어오는 쓰레기가 전체의 5%, 5%중 80% 가량은 중국산 쓰레기라네요. 스티포롬, 페트병 등의 생활 쓰레기뿐만 아니라 대형 박스, 심지어 냉장고와 기름통까지 흘러옵니다.
 

사승봉도 ⓒ 이재은


하성란 소설 ‘곰팡이꽃’이 생각났습니다.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부녀회 사람들이 쓰레기봉투를 던지고 가는 사건 이후 남자는 쓰레기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는 남몰래 아파트 쓰레기통을 뒤지고, 그 속에서 나온 정보로 이웃들을 파악합니다.

남자는 옆집 여자의 쓰레기를 통해 그녀가 다이어트 중이며 그녀를 좋아하는 사내의 투박한 덩치를 증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걸 모르는 사내는 여자에게 생크림 케이크를 사다 주죠. 사내는 여자에게 매달리지만 여자의 사소한 취향조차 모릅니다. 남자는 사내가 여자의 쓰레기를 봤더라면 그들이 이별하지 않았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남자의 행위가 엽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쓰레기를 통해 사람의 성격과 취향을 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어쩌면 쓰레기는 불필요하고 더러운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사물인지도 모르죠.

‘모든 쓰레기에는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섬에 흘러드는 수많은 쓰레기가 단순히 ‘남의 것’, ‘남의 일’일 뿐일까요?


5월에는 평화와 긴장의 섬, 연평도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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