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전통, ‘매스 게임’의 잔상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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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전통, ‘매스 게임’의 잔상을 넘어서
  • 황은수
  • 승인 2016.05.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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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황은수 / 인천남구청 문화예술과 전문위원
 
5월은 바야흐로 축제와 운동회의 계절이다. 따뜻한 기운을 타고 전국 도처에서 지역 특색에 맞춰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고, 각 학교에서도 학생들 개인의 기량과 단체 화합을 뽐내는 운동회가 열린다.

인천 지역에서는 작년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화도진 축제’가 5월말에 열릴 예정이다. 1882년 조인된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 장소에 대한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지만, ‘화도진’이라는 역사적 장소를 내세워 27회를 이어온 만큼 이제라도 바로잡아 역사적 고증을 기반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축제로 거듭나길 바란다.

일반적으로 화도진 축제의 예와 같이 역사적 또는 민속적인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축제는 ‘재현행사, 퍼레이드’ 등의 집단행위예술[퍼포먼스]을 수반한다. 역사 문헌이나 구전 전승 자료를 토대로 현재의 시민들에게 과거의 한 단면을 보여주며, ‘전통적’ 및 ‘지역적’인 것임을 내세워 공감할 수 있는 동질감[정체성]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수백 년간 한 지역에 전승되어 내려온 제의(祭儀)나 놀이가 현대에도 계승되어 그 지역의 유명한 행사로 남아 있는 사례도 많지만, 이 역시 ‘전통 문화원형’은 아니며 사회적 변화를 겪으며 가감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1918년 인천 지형도에 나타난 원도(노란색 부분)


인천 남구 지역에는 ‘낙섬’[현재 낙섬사거리 일원]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현재 매립되어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원도(猿島)라 불리는 자그마한 섬이 있었다. 조선시대 이 섬에는 ‘원도사(猿島祠)’라는 사당이 있었는데, 봄과 가을 두 차례 지방관이 국왕을 대신하여 인천 부근 여러 섬들의 신주를 모아와 제사를 지냈다. 또, 다른 조선왕조실록 내용을 보면 가뭄 때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명산이나 대천, 바다에서 나라와 고을의 안녕을 빌고 복을 구하던 ‘전통’이 이어져 조선시대에 순천 및 강릉과 더불어 인천 원도에서는 서해의 신 등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원도사 제의(祭儀)가 끝난 이후 ‘청황패놀이’라는 민(民)의 놀이가 행해졌다는 전승 기록이다. 백성들을 ‘청패(靑牌)’[바다, 어부]와 ‘황패(黃牌)’[땅, 농부]로 나뉘어 대결을 하는데, 이곳의 주민들이 대개 반농반어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놀이에서 승패를 가르지 않고 양자승으로 끝나 ‘풍농, 풍어’를 모두 기원하였다고 한다. 청황패놀이는 1983년 제64회 인천전국체육대회에 식전 행사로 재현되었고, 이후 계승되지는 않았지만 지역 문화나 민속 관련 사전에 실려 있을 정도로 인천을 대표하는 민속놀이로 간주되어 왔다. 때문에 얼마 전 2014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차전놀이’를 선보였는데, 이를 청황패놀이로 오인하는 사례도 있었다.



#. 낙섬사거리 인근의 원도사(터) 표지석 사진


과연, 원도사제와 청황패놀이는 일정한 연관 고리를 지니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18~19세기 전국 각지에서 본래의 제의적인 요소들이 약화되는 경향에서 관(官)의 주도하에 ‘석전, 줄다리기, 차전’과 같은 놀이로 행해진 향전(鄕戰)과 같이 시대적 흐름에서 생겨났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더욱이 원도사제와는 달리 청황패놀이에 대한 역사적·학술적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알려진 청황패놀이에 대한 주요 내용은 모두 <청황패놀이 개설>(김진엽, 1985)과 <청황패놀이 재현을 소개한다>(김길봉, 1985)에서 나온 것이다. 김진엽 선생은 자신의 글에서 직접 청황패놀이를 본 것이 아니라 그의 외조부에게 전해 들었다고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자료 역시 신빙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본다면, 1983년 전국체전에서 재현된 청황패놀이에 대해 비판적 해석이 요구된다. 198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국풍 81’ 등]에서 청황패놀이는 고등학생들을 동원하여 집단적으로 행해진 단체 유희로, 즉 ‘매스 게임(mass game)’으로 원도사제라는 역사적 콘텐츠를 바탕으로 창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당대 그분들과 교유하며 청황패놀이 재현에 간접적으로 참여하셨던 예술계의 원로 분도 그 용어부터 전국체전 참가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회상하셨다. 필자의 기억 속에도 매스 게임의 잔상은 학창시절을 보내던 1990년대 중반까지도 이어진다. 학교 운동회 때면 그 하루를 위해 몇 달을 연습해야만 했고, 마치 군대의 제식훈련과 같이 일사분란 해야만 했다.

오는 6월 9일(목)[단오] 용정근린공원 일원과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야외공연장에서 원도사제 재현행사와 창작 청황패놀이를 선보일 예정이다. 남구청은 지난 2년간의 역사적 고증과 준비과정을 거쳐 <인천 원도사제> 재현행사를 지역사회 여러 단체들과 함께 선보일 예정이고, 세시풍속 단오에 맞춰 풍성한 전통문화 나눔의 장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특히, 청황패놀이는 구전 기록에 나와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도 아니고, 웅장한 매스 게임의 형태로 창작되는 것도 아니다. 원도사라는 역사적 콘텐츠를 토대로 인천만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고, 이 지역에 전래된 다양한 (전통)놀이를 찾아내어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원도사제의 ‘나라의 안녕과 번영’, 청황패놀이의 ‘풍농, 풍어’, 그리고 현재 지역사회 다양한 구성원들 모두를 위한 ‘화합, 평화’의 메시지까지 담아내고자 다시 ‘전통’에 기대보는 것이다.

요컨대 원도사제가 지닌 역사적 가치에 현재적 의미가 더해지고, 청황패놀이는 ‘전통’이 아닌 지역사회 화합을 상징하는 문화콘텐츠로 거듭나고자 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인천 원도사제>와 <청황패놀이>가 매스 게임의 잔상을 넘어 인천지역에 새로운 ‘전통’으로 정착하길 고대해본다.


#. 새롭게 제작된 ‘청황패놀이’ 줄 사진 일부

※ 비고 : 남구청은 ‘청황패놀이’의 형태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인천 지역의 전래 민속놀이로 알려진 ‘줄다리기’를 ‘청황패놀이’의 형태로 재창작하였다. 그렇지만 제작 기법이나 도구, 부대 놀이 등은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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