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슬픈' 연평도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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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슬픈' 연평도를 기억한다
  • 이재은
  • 승인 2016.06.07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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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객원기자의 섬마을 사진 이야기] 8 - 연평도


인천 섬 프로젝트 참여작가 중 한 분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인용하면서 연평도 사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연평도는 오늘도 슬픕니다. 섬은 온통 요새화되어 있고 바다자원은 전부 중국 어선들이 쓸어가고 지켜주어야 할 정부는 별다른 대책도 없어 보이고…. 미세먼지, 연평도 어장 관련하여 찍소리도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며칠 전 연평도 어민이 중국 어선 두 척을 나포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어민이 하고 있다는 쓴소리가 잇달았죠. 오죽하면 어민이 직접 북방한계선(NLL) 주변에 있는 어선을 끌고 왔겠느냐는 겁니다. 꽃게잡이로 명성을 날렸던 연평도. 조기파시로 유명했던 섬.

그러나 최근에는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 북의 포격 등으로 위험과 불안이라는 이미지로 낙인찍힌 듯합니다. 지난 2012년 5백여 명이 피난할 수 있는 제1호 대피소가 생겼는데 앞으로 연평도 전 인구가 대피해 생활할 수 있는 곳이 총 7개 건립된다고 하네요.


 

포격현장을 보존하고 있는 안보교육장 ⓒ 이재은


 

그동안 제가 가본 섬은 모두 그 섬만의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고 그건 연평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연평도는 인천의 다른 섬들과 감정적으로, 또 표면적으로도 많이 달랐습니다.

거칠게 말해볼까요? 연평도는 고요하지 않았습니다. 곳곳이 공사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연평도의 해안은 개방적이지 않았습니다. 넘실대는 바다의 숨결을 철조망과 경비초소가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휴식의 공간이 아닌 경계의 섬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 나도 모르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광객보다 안보 방문객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래칠기해변 ⓒ 이재은


 

연평도는 뻗친(延) 땅(坪)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죠. 연평도 주민의 70% 가량은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과 후손들입니다. 북동쪽에는 망향전망대가 있고, 남쪽 끝에는 어선의 뱃길을 인도하는 길잡이 노릇을 했던 등대가 있습니다.(보안상의 이유로 소등했다가 현재는 등대 기능을 상실하고 공원으로 개조됐습니다) 이밖에 조기의 역사를 보여주는 조기역사관, 가래칠기해변, 빠삐용바위, 구리동해수욕장도 연평도가 품고 있는 발자취와 자연입니다.

연평도에는 요새만 있고, 벙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어민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걸어 다니거나 두려움에 떨며 움츠리고 있지도 않습니다. 유치원과 초중고가 함께 있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성당의 종소리와 교회 예배당의 찬송가가 마을에 울려 퍼집니다. 충민사 돌담 옆에 있는 당나무는 세월을 품으며 섬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고요. 하지만 누군가의 고백처럼 “오늘도 연평도는 슬픕니다.”
 



 

ⓒ 이재은


 

중국 어선을 나포한 선장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생업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불법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을 직접 나포했다. 군사구역인 어로통제선 북쪽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생업을 위해’ 그랬답니다. 살기 위해서요. 그런데 그들이 끌고 온 건 고작 두 척뿐입니다.(“목선을 몰아내기 위해 접근하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목선 주변에 70t, 80t급 대형 철선을 비롯한 중국 어선 100여 척이 무리 지어 정박 중이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위협하고, 내 가족과 마을 주민, 국민의 배를 곯게 하는 어선이 눈앞에 수백 수천 대 떠다닙니다. 그제도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니, 내일도 그럴 것 같아 화가 납니다. 연평도민들은 그들을 제 힘으로, 혹은 국가의 힘으로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물리쳐야 살아갈 수 있는데 말이죠.


 

ⓒ 이재은


 

차가운 줄 알면서도 벙커를 찍었습니다. 가슴 아픈 줄 알면서도 벙커만 찍었습니다. 당연히, 이것이 연평도의 전부는 아닙니다. 섬은 하나의 이미지로 뭉뚱그릴 수 없습니다. 평온하고, 개방적인 것이 섬의 최고 가치는 아닙니다.

기억합니다. 어디에 있든, 우리는 아프지 않아야 합니다. 쫓기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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