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자치언론’으로 학교 민주주의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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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자치언론’으로 학교 민주주의를 꿈꾸다.
  • 한상원
  • 승인 2016.06.08 13: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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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대인타임즈' 기자 유진이 / 한상원(대인고 교사)

<인천in>이 <인천교육연구소>와 함께 행복한 교육 현장에 일어나는 일상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담아냅니다.  교육의 장에서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담아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배우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글이라는 렌즈에 담아내어 보고 싶었습니다. 좀 더 쉽고 좀 더 재미있게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당초 <행복한 교육>였던 것을 이번 3화부터 <말랑말랑 애덜이야기> 제하로 연재합니다.
 

지난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열 명 남짓한 고3 학생들과 함께하는 야간특강이 밤 8시 경에 끝났다. 뒷정리를 하고 교실을 나오려는데, 어깨를 움츠린 ‘유진’이가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따라 나왔다. 유진이의 입술은 건조한 날씨 때문인지 심하게 부르터 있었다.
 
“선생님, 고3이고 중간고사는 다가오는데 내신 준비가 잘 안 되서 너무 힘들어요.”
유진이의 목소리는 부르튼 입술처럼 힘없이 떨렸다. 학업 스트레스로 힘들어 하는 유진이가 왠지 측은해 보였다.
 
“아직 시험이 3주나 남았는걸. 지금 그렇게 시험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건, 유진이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괜찮아. 좋은 결과 있을 거야.”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고작 이것뿐이었다. 그런데 유진이의 표정에는 뭔가 또 다른 고민이 있는 듯 했다.
 
“혹시, 공부말고 다른 어려운 일 있니?”
 
머뭇거리던 유진이는 “실은……, 학교 정문에 걸린 현수막을 비판하는 칼럼을 대인타임즈에 게재한 것 때문에 선생님들한테 눈치가 보여요.”라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대인타임즈> 기자 활동으로 인해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공부보다 자신을 더 힘들게 하는 일이라고 고백했다.

 

[대인타임즈 페이스북 휴대폰]
 

<대인타임즈>는 2015년에 ‘유진’이가 주축이 되어 페이스북 공간에 만든 교내 ‘학생자치언론’ 기구다. 대인타임즈의 창간 배경은 이렇다.
 
2013년 겨울, 고려대 재학생에 의해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일대 신드롬을 일으킨다. 그 여파로 교내 곳곳은 물론,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도 B4 크기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붙여진다. 하지만, 하루 만에 대자보는 철거되고, 대자보를 붙인 학생과 학생의 담임교사는 학교와 갈등을 빚게 된다. 의사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 달라는 요구와 의사 표현의 방법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차 때문이다.
 
이 ‘대자보 철거’ 사건은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가 된다. 그리고 당시 대자보를 붙인 학생이 이끄는 <네가터스>라는 시사토론부 동아리 내에서 교내 학생언론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왜냐하면,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공론화는 차치하더라도, 학교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한 단순한 정보공유조차 가능하지 않다면, 학생들의 참여가 보장된 학교운영, 즉 ‘학교 민주주의’의 실현은 요원한 일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를 계기로 2014년, ‘대자보 사건’을 일으킨 선배의 바통을 이어 받은 후임 시사토론부 부장은 <더 네가터스>라는, 정규동아리 활동 차원의 학생신문을 발행하게 된다. 그러나 학기당 1회 발행하는 신문으로는 신속하고 시의성 높은 정보공유, 각종 이슈의 공론화를 이루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인쇄비를 포함한 운영비도 학교 지원금이 없을 경우, 학생들 스스로 충당해야 했기 때문에 (몇몇 대학교에서 운영되던 자치언론들이 폐간되었던 것처럼) 오랫동안 지속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학생언론의 활성화를 위한 이와 같은 선배들의 어려움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유진이는 2015년도 시사토론부 부장으로 선출된 후, 대안적 형태의 언론을 고민하게 되고, SNS 대중화 시대에 걸맞은 뉴 미디어 체제를 갖춘 언론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리곤 새로 도입된 자율동아리 시스템을 활용해 뜻이 맞는 몇몇 선후배, 동기들과 지도교사의 도움을 받아, 2015년 4월 12일, 지금의 <대인타임즈>를 만들게 된다.
 
대인타임즈 탄생의 주역인 ‘유진’이를 힘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3월 말경에 대인타임즈에 쓴 자신의 칼럼 때문이었다. 칼럼은 남북관계에 긴장을 조성하는 현수막이 학교 정문에 걸린 것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국가보훈처 현수막(대인타임즈 제공)]
 
 
국가보훈처는 올해 처음, 3월 25일을 ‘서해 수호의 날’로 정했다. 그리고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각 학교에 “국민의 하나 된 힘만이 북한 도발을 영원히 끊는 길입니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걸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우리 학교 담당 교사는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해당 업무를 처리하는 차원에서 현수막을 학교 정문에 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4·13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였다. 게다가 ‘유진’이의 관점으로는,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으로 희생된 호국 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로서 ‘서해 수호의 날’의 의미는 인정하지만, 군사정권 시절의 반공주의나 구시대적 국가주의로 북한에 대한 적대감만 고취시키는 현수막 문구에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특히, 인근의 고등학교 중에서 유일하게 대인고만 현수막을 걸었다는 사실이 유진이가 보기에는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도 있는 일로 보였다고 한다.
 
실은 나도 이 현수막을 처음 봤을 때, ‘평화 통일로 나아가야 할 시대에, 왜 저런 현수막을 걸었을까? 선거 전에 으레 있는 남북 간 위화감 조성 차원인가?’ 불편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었다. 그러나 차마 학교에 건의를 하거나, 내 페이스북 공간에서조차 공개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예년처럼 교육 현안에 대한 공개적인 의견 제시로 또 다시 사람들의 가십거리의 중심에 서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그런 조직문화에 다소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현수막이 내려가길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유진이가 쓴 칼럼이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어찌나 반가운지, 읽자마자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아래와 같은 소감을 남겼다.
 
‘느닷없이 걸린 국가보훈처 현수막, 제가 느꼈던 불편한 마음을 우리 학교 학생들이 이끄는 <대인타임즈>가 속 시원히 풀어주네요.’
아마도 유진이는 자신이 쓴 칼럼에 ‘공유하기’와 ‘댓글’로 힘을 실어주는 선생님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학생회장 선거 공청회]
 
이런 정치적 이슈 외에도 <대인타임즈>는 학교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일상을 수시로 전해주기도 한다. 대인타임즈 소속 19명의 학생기자들은 학교 곳곳을 열심히 뛰어다니며 학교에 출몰하는 뱀과 강아지 이야기, 선생님들의 대수능 응원 동영상, 학급별 축구 대항전 결과, 학생회장 선거 안내 등 대인고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때로는 대인타임즈의 기사가 학교운영 개선에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지난 해, 학교 급식에서 벌레가 나온 사건을 보도하여, 급식 업체를 바꾸는 결과를 얻어 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대인타임즈가 생산하는 흥미로운 콘텐츠는 우리 학교는 물론 다른 학교의 학생과 교사까지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해 2016년 4월 10일 기준으로 기사 건당 평균 조회 수는 약 720회, 평균 도달 수는 약 2400번, 평균 댓글 수는 17개 정도로, 접근성과 영향력이 상당히 큰 학생자치언론으로 자리잡았다.
 
이렇듯 대인타임즈는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은데 기자들은 여전히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모양이다. ‘유진’이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보도로 고민할 때마다, 졸업한 선배들에게 연락을 해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어떤 선배가 ‘학교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꿋꿋하게 내는 몇몇 선생님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라.’고 조언해 주었단다. 그래서 찾아 간 몇몇 선생님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내 몸 하나 보호하려고 학교 현안에 무심한 척 방관하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도 모르게, 유진이의 어깨를 안아주고 토닥였다. 그리고 힘들 땐 언제든 찾아오라고 격려하며 “너희들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학교 민주주의를 위해 떳떳한 목소리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대인타임즈 기자 인터뷰]
  
며칠 전, ‘유진’이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유진이의 목에 걸린 ‘기자증’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선생님, 대인타임즈 부원들이 자체적으로 기자증을 만들었어요. 멋있죠?”
“응. 대단한 걸? 그런데 이거 공식적인 기자증인거야?”
“아! 아니요. 뒷면에 학교 직인까지 찍히면 더 좋을 텐데, 아직은…….”
 
자신감이 넘쳤던 유진이가 아쉬움에 다시 고개를 숙인다. 목소리도 작아진다.
 
“괜찮아. 지금처럼 열심히 활동하면 언젠간 학교에서도 인정해주는 학생언론이 될 거야. 그리고 네가 가진 실력과 열정이라면, 사회에 나가서도 꼭 훌륭한 언론인이 될 거라 믿고.”
 
(실제로, 유진이는 대인타임즈를 만들 당시, 학교의 소논문 대회에 참여하여 ‘학생자치언론의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자치언론’이라는 용어를 활용했다. 올해도 역시 이론적 배경과 객관적인 조사 자료에 입각하여 자신이 썼던 학생자치언론에 대한 연구내용을 한 단계 발전시키고 있다. 지금도 어려운 대입시 준비를 병행하며, 학생들의 ‘알 권리’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이 되기를 자처한다.)
 
용기를 주는 내 말에 유진이가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항상 격려해주고 힘을 실어줘 감사하다고 한다. 유진이의 말에 나도 기쁘다. 학생을 통해 교사가 배우고 오히려 더 큰 힘을 얻는다.
 
교무실을 나가는 유진이의 당찬 모습을 보며, 우리 학교 구성원들의 공식적인 자치언론으로 거듭날 <대인타임즈>를 고대해 본다. 그리고 머지않아, 중등학교의 ‘학생자치언론’에 전설로 남을 ‘김유진’이라는 이름 석 자를 행복하게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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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용안 2016-06-09 09:15:52
대인은 저의 모교입니다. 훌륭한 후배가 있어 기쁩니다. 자본과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언론인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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