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과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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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과 ‘무시’
  • 최원영
  • 승인 2016.06.1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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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행복산책](3)



풍경 #3. ‘대응’과 ‘무시’
 
참 세상은 빨리도 변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 속도나 스마트 폰의 진화를 몸소 겪으면서 나날이 복잡해지는 기능에 제가 익숙해지는 게 참으로 어렵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삶은 늘 이렇게 새로운 변화 앞에 내몰리면서 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변화! 변화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태도는 ‘대응이냐?’ 아니면 ‘무시냐?’ 중에서 하나를 결정해야 할 겁니다. 변화에 대응한다는 것은 그 변화가 요구하는 대로 ‘나’ 자신을 바꾸어야하기 때문에 무척 불편하고 힘들 겁니다.
만약 그 변화를 내가 ‘무시’한다면 ‘내’가 하던 대로 익숙하게 살면 되니까 편하겠죠.

그러나 이 선택이 가져다 줄 미래는 매우 다를 겁니다. 대응을 선택한 ‘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삶을 살게 될 것이지만, 무시를 선택한 ‘나’는 뒤쳐진 삶을 살면서 세상을 원망하며 살게 되겠지요.

변화에 나를 바꾸는 것, 바꾸는 과정에서 어차피 겪어야 할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성공과 행복의 문을 여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편함이 수반되는 변화는 ‘위기’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을 겁니다. 위기 앞에서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를 단련시키는 것이 ‘대응’이겠지요. 위기 때마다의 대응이 조금씩 쌓여 어느 날, 매우 강한 ‘나’로 우뚝 설 겁니다.
 
 
풍경 #4. 동쪽 영양무리 vs. 서쪽 영양무리
 
아프리카의 잠베지 강 연안의 대초원에 영양무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쪽 기슭에 살고 있는 영양들이 서쪽 영양들보다 번식력이 훨씬 강했고, 달리는 속도 역시 무척 빨랐습니다. 같은 종의 영양들이었고, 또 동쪽이나 서쪽 모두 똑같은 환경이고, 먹이도 같은 풀이었는데 참 이상하지요?

그래서 학자들이 연구해보았습니다. 건강한 동쪽 영양들 10마리를 서쪽에 풀어놓고, 또 서쪽 영양들 10마리를 동쪽에 풀어놓고, 1년을 관찰을 했습니다. 1년 후, 서쪽으로 건너간 동쪽 영양들은 14마리로 늘었지만, 서쪽에서 동쪽으로 간 영양 중에서 7마리가 늑대 밥이 되어 죽었고, 오직 3마리만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동쪽과 서쪽 모두 같은 환경이었지만, 단 한 가지 다른 점은 동쪽엔 영양의 천적인 늑대무리가 살았다는 것을 말이죠.

건강한 영양들이 살고 있는 곳에는 그들을 잡아먹는 천적이 있는데, 어떻게 오히려 더 활발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또 반대로 서쪽에는 천적이 없었는데, 왜 서쪽 영양들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고 있었을까요?
천적이라는 ‘위기’는 늘 동쪽 영양들을 긴장하게 만들었고, 노력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오히려 의욕적으로 살아가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적이 없는 동물은 가장 빨리 멸종한다는 것이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합니다.
 
요즘 참 살기 어렵다고 합니다. 곳곳에서 파열음들이 드러나고, 뉴스를 틀면 사건과 사고들이 줄을 잇습니다. 그런 사건들의 내막에는 어김없이 부패의 고리들이 촘촘히 엮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삶에는 ‘위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자, 이제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아요. 이 위기 앞에서 이제는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무시’할 것인가?” 중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과거처럼 그저 ‘무시’하고 살짝 문제를 덮고 갈 것인지, 아니면 엄청난 저항이 있더라도 속속들이 변화의 메스를 댈 것인지를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위기를 우리의 후세들에게 물려주어선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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