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돼지를 위한 콩 생산, 파괴되는 아르헨티나 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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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돼지를 위한 콩 생산, 파괴되는 아르헨티나 우림
  • 김연식
  • 승인 2016.06.1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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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남미의 숲을 지켜주세요 - 김연식 / 그린피스 항해사


<인천in>은 지난 3월21일 부터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에스페란자호 항해사 김연식씨(33)와 함께 <에스페란자의 위대한 항해>를 격주 연재합니다. 세계적인 환경감시 선박 에스페란자호에서 부딪치며 겪는 현장의 이야기를 우리 항해사의 눈으로 보여드립니다. 


# 파괴되는 남미 우림, 고통 받는 주민들
 

말 탄 가우초(목동)가 소떼를 몬다. 소들은 드넓은 목초지를 자유롭게 누비며 먹고 마시고 쉰다. 목초지는 끝이 없다. 아무리 욕심 많은 소라 하더라도 풀을 뜯다 지쳐 잠들 만큼. 소의 소박한 욕심은 자연의 품 안에 있다. 365일 만찬을 즐기는 소들은 하나같이 토실토실 살이 올라 기름지다. 소는 세계 최대 소고기 수출국 아르헨티나의 탄탄한 기반이다. 남미 대륙 한가운데 자리 잡은 아르헨티나의 평화로운 목초지에서 소들은 자란다.
 

이런 경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30년 전의 이야기다. 이제 아르헨티나의 수출품은 소고기가 아니라 콩이다. 미국농업연구청(USDA)의 조사결과 2014 아르헨티나는 콩을 연간 5천400만 톤 생산했다. 전 세계 세 번째다. 최근 20-30년간 아르헨티나는 소를 키우던 목초지를 빠르게 콩밭으로 개간했다. 현재 이 나라 전체 경작지 면적은 남한 전체 면적의 3배(28만4천㎢)에 달하고, 이 중 64퍼센트가 콩밭이다. 소들은 숫자가 급격히 줄었고, 가우초들은 본업을 잃었다.
 

아르헨티나가 콩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부터다.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중국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더 많이 먹기 시작했다. 전 세계 돼지고기의 절반을 중국인이 먹는다고 한다. 중국의 발전과 함께 돼지고기 소비가 늘었고, 이 돼지의 사료를 만들기 위해 콩 수요가 늘었다. 당연히 국제 콩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는 소고기를 두고 미국, 호주 같은 낙농업국과 경쟁하기보다 넓은 땅을 개간해 콩을 생산하는 길을 택했다.
 

아르헨티나의 콩은 대부분 13억 중국인이 먹는 돼지의 사료로 쓰인다. 중국은 콩을 연 6천500만 톤이나 수입한다. 생각해보자. 6천500만 톤이면 우리나라 전 국민 5천만 명에게 콩을 1톤씩 주고도 1천500만 톤이 남는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각자 1톤씩 받으면 보관할 곳이 없어서 전국의 길거리마다 콩이 굴러다닐 것이다. 우리 전 국민이 365일 콩밥, 콩조림, 콩나물, 콩과자, 콩, 콩, 콩만 먹는 콩의 민족이 되어도 다 해치우지 못할 테다. 벌써 ‘콩’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콩콩 뛴다.

 


<콩밭으로 변한 우림. 지평선 너머까지 콩밭이다.-그린피스 제공>
 

문제는 아르헨티나의 콩밭이 목초지를 삼키고 숲으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곡물기업들은 숲의 나무를 베어 콩밭을 확장하고 있다. 유엔(UN) 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를 보면 아르헨티나 우림은 해마다 서울시 면적의 다섯 배(3천㎢)씩 지난 25년간 스코틀랜드 전체와 맞먹는 면적(7만6천㎢)이 파괴되었다. 남미 우림은 지구의 허파이자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주민들에게 물과 흙, 음식을 제공하는 삶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제 그 우림은 중국의 돼지들에게 콩을 제공한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숲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2006년 우림파괴금지 법안을 제정했다. 하지만 허점이 많아 사실상 종이법안에 그치고 있다는 게 그린피스의 주장이다. 곡물기업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 우림을 콩밭으로 개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수법이 밭을 개간할 때 듬성듬성 나무를 남겨두는 것이다. 뻔히 콩밭이지만 기업들은 아직 나무가 있으니 우림이라 주장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도 이런 상황을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법안이 발효되고부터 2014년까지 8년간 제주도의 열한 배가 넘는 면적의 숲이(2만1천㎢) 파괴되었다.
 


<콩밭 사이에 듬성듬성 나무가 남아있다. 이건 숲인가 콩밭인가-그린피스 제공>


<나무를 밀어내고 콩밭을 개간하는 불도저와 인부들-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 아르헨티나 활동가들이 숲을 파괴하는 불도저를 몸으로 막고 있다.>
 

우림이 파괴되면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는 건 현지 주민들이다. 일단 비행기로 사방에 농약을 뿌리는 바람에 일대 토양과 지하수는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이 나라에서 키우는 건 주로 유전자조작(GMO) 콩인데, 이 콩들은 제초제에 내성을 갖도록 조작되었다. 곡물기업들은 유전자를 조작하면 제초제를 적게 쓸 것이라 주장하지만 실제와 다르다. 다른 식물들도 덩달아 제초제에 내성을 갖게 되면서 오히려 제초제 사용량 늘고 있다.
 

숲이 파괴되는 바람에 건조한 이 지역의 물 부족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 곡물기업들이 지하수마저 농업용수로 전용하는 바람에 물은 점점 귀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수백 년 전부터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제 소유의 콩밭을 지나 강에 접근하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까닭으로 주민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급수차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중국의 발전과 돼지고기 소비증가, 사료용 콩의 가격 상승, 아르헨티나의 콩 증산, 그리고 이로 인한 우림 파괴와 오염까지. 전 지구적 산업 생태계의 연결고리 끝에서 엉뚱하게 이곳 밀림의 원주민들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원주민들이 물통에 식수를 받아가고 있다.-그린피스 제공>


<말라버린 땅의 원주민 아주머니-그린피스 제공>

 

# 밀림의 강을 정복한 화물선들
 

에스페란자는 아르헨티나 한가운데 있는 도시 로사리오(Rosario)로 향한다. 지도를 펴고 남미 대륙 한가운데를 찍으면 아마 거기가 로사리오일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축구선수 메시(Messi)의 고향, 혁명가 체 게바라의 출생지다. 그리고 이 나라 최대 곡물 수출항이기도 하다. 배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크고 긴 파라나 강을 300킬로미터나 거슬러 오른다. 강 하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부터 스무 시간 항해다. 밤이, 낮이, 그리고 다시 밤이 다가왔다.
 

파라나 강은 야생 그대로였다. 남한 땅의 스물여덟 배나 되는 면적에 인구가 우리보다 훨씬 적은 4천300만 명에 불과하니 도시와 도시는 멀고 또 그 사이 길은 어둡고 험하다. 강을 따라 듬성듬성 작은 마을을 지나면 몇 시간 동안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불빛에 가려져 있던 달이 환하게 빛을 발하고 사람의 동공은 크게 열려서 사방이 눈에 들어온다.
 

강변까지 나무가 울창해서 숲 사이를 날아가는 기분이다. 공기가 참 맑다. 창문을 열자 아무데서도 맡아본 적 없는 짙은 숲 향기가 들이쳤다. 도처에서 아우성치듯 맑은 공기를 뿜었다. 선원들은 ‘음-하- 음-하-’ 숨소리를 내며 밀림의 향기에 빠졌다. 불어오는 바람을 들이마시면 등이든 발이든 정수리든 몸 안 어디로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태초의 지구가 이랬을까? 흠 잡을 데 없이 청량한 공기. 그 공기는 갖가지 나무와 풀의 채취로 가득했다. 나는 이 신선한 공기를 아낌없이 들이마셨다. 햇살, 공기, 바람, 하늘. 소중한 건 다 공짜다.
 

배가 물길을 가르면 수면에 있던 반딧불이가 깜짝 놀라 하늘로 날아오른다. 달빛 아래 사방으로 흩어지는 반딧불이 떼. 그 아래서 선원들은 탄성을 질렀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가끔 바람에 길을 잃은 반딧불이가 문을 넘어 조타실로 들어왔는데,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집어 손등에 얹어도 도망가지 않고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 숨 쉬듯 천천히 명멸하는 빛은 아름다웠다. 자연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신비한 밤을 가르며 배는 앞으로 나아갔다.
 

긴 항해 끝에 로사리오에 근접하니 우리를 반긴 건 다름 아닌 거대한 화물선이었다. 도시 입구에는 콩 싣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빈 화물선들이 줄지어 있었다. 화물창과 평형수를 깨끗이 비워낸 화물선들은 성벽처럼 높고 거대했다. 길이가 200미터도 넘는 배들은 콩을 한번에 7만2천 톤이나 싣는다. 단위를 풀어 설명하면 7천200만 명에게 콩을 1킬로그램씩 줄 수 있는 양이다. 남북한의 남녀노소 모든 주민들에게 줄 수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연간 5천400만 톤을 수출하니, 이런 대형선이 800번 움직이는 것이다. 그제야 5천400만 톤이라는 숫자가 피부에 와 닿았다.
 

마침 내가 불과 6개월 전까지 승선했던 화물선이 같은 곳에 와있었다. 콩을 가득 실어 중국에 내려준단다. 정든 배와 선원을 만났다는 반가움 한편으로 씁쓸함이 번졌다. 만일 그린피스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저 화물선을 타고 이곳에 왔을 것이다. 과거 동료들처럼 그 곡물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그들이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이런 기회로 조금이나마 더 알고 행동하게 된 것에 감사한다. 감사는 사명감으로 다가온다.

 


<중국에 도착한 화물선이 콩을 하역하는 모습-필자 자료사진>

 

# 현재를 성찰하는 시민들
 

-정부가 인천 영흥도에 화력발전소를 증설하려고 해요. 인천에 사는데, 이 사실을 아세요?

-그래요? 전혀 몰랐어요. 요즘 미세먼지에 난리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죠? 화력발전소의 미세먼지가 집까지 날아올 텐데 걱정이네요.

-정부가 신고리 원전 5,6호기를 증설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고리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원전단지가 됩니다. 부산에 사는데, 이 사실을 아세요?

-전혀요. 집에서 30여 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원전이 세워진다는데 어쩌면 이렇게 까마득히 몰랐을까요.
 


그린피스 한국 사무소는 지난해 10월 인천과 부산에서 오픈보트 행사를 열었다. 그린피스의 또 다른 선박 ‘레인보우 워리어’호가 항구에 머무는 동안 시민들을 배로 초청한 것이다. 주말 이틀간 시민 1천여 명이 찾아왔다. 자녀들의 구경거리 삼아 찾아 온 부모들이 많았다.
 

그린피스 봉사자들은 배를 찾아 온 시민들에게 한국의 원전 현황과 그 위험성, 그리고 정부의 증설 계획을 사실대로 보여줬다. 시민들은 적지 않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런지 시민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의 심각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깊이 실감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이는 여전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린피스 봉사자들은 사람들의 무관심을, 뒤늦은 일부 시민의 관심을, 그러나 아직도 굼뜬 여론을 안타까워했다.
 

참 답답한 일이다. 미세먼지에 이렇게 민감하고, 그래서 수십만 원짜리 공기청정기를 구입하면서도 근처 화력발전소 증설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아파트 값에 노심초사하면서 불과 30여 킬로미터 근방에 원자력발전소가 생기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여론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대중은 똑똑한 존재인가, 아니면 무지몽매한가. 나는 아직도 그게 궁금하다.



<에스페란자를 찾아 온 아르헨티나 시민들. 이틀 주말 사이 1만 8천여 명이 다녀갔다.>
 

에스페란자도 인천과 부산에서처럼 로사리오에서 주말 이틀 동안 시민들을 배로 초청했다. 인구가 100만 명도 안 되는, 인천과 부산의 3분의1에 그치는 소도시인데다, 이 도시 경제가 곡물수출에 기대고 있기에 우리는 시민들이 호응할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뚜껑을 열고 보니 기대와 달랐다. 토요일 아침, 평소와 달리 밖이 시끌벅적했다. 사람들이 오전 8시부터 배 앞에서 길게 줄을 섰다. 손잡은 연인들, 아이를 안은 부모들이 바글바글했다. 봉사자들은 방문객들을 모둠지어서 조타실이나 작업장 같은 배의 주요 시설을 보여줬다. 기다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처음에 스무 명씩 짓던 모둠을 서른 명으로 늘렸다. 첫날 오전에만 3천여 명. 적지 않은 시민들이 배를 찾아왔다.


오후가 되자 진풍경이 벌어졌다. 줄이 구불구불 길어지더니 선착장 건물을 벗어나 선착장 정문, 길 건너 공원까지 이어졌다. 줄은 800미터가 넘었다. 시민들은 뙤약볕에서 두 시간씩이나 기다리면서도 그린피스와 에스페란자의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그 결과 주말 이틀간 1만 8천여 명이 배에 다녀갔고, 그린피스가 아르헨티나에서 하고 있는 일에 공감한 1만여 명이 우림보호 법안을 제청하는데 서명했다. 또 많은 시민들이 그린피스의 후원자가 되었다.

 


<활동가들의 설명을 경청하는 시민들1>


<활동가들의 설명을 경청하는 시민들2>


아르헨티나에서 생산된 곡물은 대부분 이 항구를 통해 중국으로 팔려나간다. 선박 입출항, 화물 선적, 출입국 수속, 음식물 공급 등 곡물 수출에 의존한 항만경제가 발달한 곳이다. 곡물 수출로 먹고사는 시민들이 그린피스의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지해준다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이건 마치 조선업으로 먹고사는 거제도민들이, 자동차 생산업으로 먹고사는 울산시민들이 제 기간산업보다 환경을 선택한 것과 같다.
 

대기업이 망하면 나라가 망할 것 같고, 그러면 혹시나 내 밥그릇이 동나지 않을까 두려워 거대 악을 향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틀린 것은 틀린 것이고 그러니 당장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는 로사리오 시민들. 그린피스 아르헨티나는 시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우림 보호 법안을 제청하고 나섰다.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시민들. 시민이 깨어있는 한 아르헨티나의 숲은 이제 안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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