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만 안 자심 아주 깨끗한 냥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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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만 안 자심 아주 깨끗한 냥반인데"
  • 김인자
  • 승인 2016.06.1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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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왔다갔다할아버지


왔다갔다할아버지다....
사랑터할머니들 박물관가시는데 따라가려고 급히 사랑터 가는 아침.
저만치 앞에서 왔다갔다할아버지가 느릿느릿 걸어가고 계신다.
우리 왔다갔다할아버지 아침 산보 나오셨구나.
왔다갔다 할아버지 몇 걸음 뒤에서 할아버지 며느님이 천천히 할아부지 뒤를 따라가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막 달려가서 하부지~~~~하고 인사드리고 싶은데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진짜로다가아?"
"진짜지, 그럼."
"아이다. 정신은 멀쩡하다."
"정신이 멀쩡헌가는 내 모르겠고 술이 웬수지. 술만 안 자심 아주 깨깟한 냥반인데 고것이 문제지, 늘."
"그래서 저 영감님 밖에 나올 때는 온 집안식구들이 뻔을 서가믄서 쫒아댕긴다고 하더라."
"으트게 24시간을 쫓아댕기나 그래."
"식구들이 못할 짓이지.그래도 며느리가 효부라 늘 웃는 얼굴이더라."
"복은 많다, 그 냥반이..."

"요즘은 가게 앞에 내놓은 술박스에서 빈병인데도 술이 있나없나 탈탈 털어먹는다카더라."
"무신, 요즘은 먹다 남은 술병 내놓은 술집 알아가지고 거그만 간다카드만."
"사람은 차암 좋은데 그 술이 웬수라‥ 술만 안 먹음 참 얌전한 냥반인데 에고 자식들이 뭔 죄고..."
"치매가 점점 심해져서 그래. 요즘은 땅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도 주워핀다더만."
"에고, 읍시 사는 냥반도 아닌데 ‥식구들이 을메나 속상할꼬."

할무니들이 걱정하시는 말씀을 우연히 듣게 된 날부터 왔다갔다할아버지를 뵈면 마음이 짠하고 더 안스럽다.
내가 아는 척을 하믄 며느님이 불편해하실까? 그래도 할아버지 앞에 가서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드리리고 싶다.
어쩔까 고민하는 것도 잠시 왔다갔다할아버지가 더 멀리 걸어가시기 전에 할아버지를 쫒아 막 뛰었다.

"나오셨어여?"
하며 며느님 팔짱을 살며시 꼈다.
"아, 예...어디 가세요?"
사람 참 좋은 며느님 얼굴에 기분좋은 웃음이 번진다.
"네, 할무니들 박물관 견학가시는데 따라가요."
"아고, 힘드시겠다."
"힘들긴요, 좋아여."
"하부지 ~~산보나오셨어요?"
"오야 .

왔다갔다할아버지가 늘 그렇듯 한 손을 척 들고 환하게 웃어주신다.
"아유우, 할아부지이 아무나한테 그렇게 멋진 웃음 막 날리시면 되까여? 안되까여?"
"안돼........"
"하하 그죠ㅡ오. 저한테만 할아버지 그 멋진 웃음 웃어주셔야돼요~"
"응, 그랴..."
할아버지 오늘은 약주 안 드셨나보다. 눈이 어린아이처럼 해맑으시다.
맨날 오늘만 같으면 좋을텐데.
"하부지"
"응."
"수울 많이 잡숫지마세요. 쪼꼼만 드세요, 아라찌여."
"응. 그래...어디 가?"
"네‥소풍요. 할무니들 소풍가는데 쫒아가요."
"소풍 가? 나도 가고 싶다, 소풍..."

어느 날
날 좋은 날
할아버지 좋아하시는 소주 한 병 사들고 안주 좋은거 만들어서 할아부지랑 소풍가야겠다.
잠시라도 며느님 쉬시게 ‥
울 왔다갔다할아버지 눈치 안보고 마음 편하게 소주 한 병 드시게 소풍가야겠다. 꼭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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