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아침인사, 스킨쉽 혹은 하이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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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아침인사, 스킨쉽 혹은 하이파이브
  • 이정숙
  • 승인 2016.06.1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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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샘물반 아이들 / 이정숙(동수초교 교사)


 

아침에 교실로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들어온다. 샘물선생님은 오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먼저 인사를 나누며 스킨쉽을 하거나 하이파이브를 한다. “세진이 왔니? 즐거운 하루!” 하면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뛰어 온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하며 하이파이브를 한다. 하이파이브를 하는 이유는 멀리서 인사하지 않고 가까이 인사를 나누기 위한 방법이다. 말만 하거나 손만 슬쩍 건드리고 가는 아이는 “아냐, 아냐 영혼이 없어~”하는 샘물의 닦달에 눈웃음을 짓고 눈을 맞춘다. 전 날 혼내주어 마음에 불편함이 남아있던 아이는 두 손을 잡고 안부를 묻거나 두 팔 벌려 더 많이 반겨준다. 고맙게도 아이는 전 날 샘물의 꾸지람을 기억하지 못하고 해맑다.

 

아이가 감기로 입원을 하고 그 후유증으로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 있는 데도 학교를 가야 한다고 해서 보냈다는 서희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서희가 기운이 없는지 엎드려 있었다. 1-2교시는 기운이 없는 와중에서도 기특하게 열심히 수업활동에 참여했는데 3교시가 되자 힘이 풀린듯했다. 예쁜 얼굴에 얼굴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여기저기 두드러기가 났다. 적어도 두 주는 있어야 회복된다는 병원 측 진단에 오늘 해야 할 전학을 나을 때까지 미루었다고 한다. 서희는 빨갛게 붓고 얼룩달룩해진 얼굴이 부끄러웠던지 마스크를 하고 등교를 했었다. 아침에 샘물을 보자마자 마스크를 벗으며 “이거 옮는 거 아니예요”라고 말을 하고 얼른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다. 자기 생각에는 아이들이 뭐라 할까 봐 걱정이 되었고 흉해진 모습을 보이기 싫었을 게다. 그런 상황에서 철없이 늘 남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가 큰소리로 무심히 말을 건넨다.


석민: 선생님 서희는 왜 얼굴에 두드러기가 났어요? (큰소리로 묻는 말에 아이들 이목이 서희에게 집중된다)

서희: ......

승수: (얼른) 아프니까 그렇지.

예인: 얼굴에 두드러기가 났어요? 왜요?

서희: .......

승수: 야, 그걸 왜 물어보니? 감기 때문에 그렇지. 그걸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냐?


샘물은 내심 승수가 고마웠다. ‘남 배려도할 줄 아네. 기특한 것 같으니라고...’라고 생각하며 한마디 했다.


샘물: 흠! 친구가 아파서 엎드려 있는데 그렇게 물어보는 거 보다 옆에서 걱정해 주고 괜찮냐고 조용히 위로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석민: (씩 웃으며 더 큰 소리로) 궁금하잖아요.

예인: 맞아요. 궁금해요.

샘물: 아픈 친구한테 궁금한 게 먼저야? 마음이 먼저야? 집에서 엄마가 우시는데 웃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엄마는 왜 울어요? 라고 묻나? 아프실 때도 그렇고 .....

석민: 그럼 뭐라고 물어봐요?

샘물: ....... 얘들아 누가 울거나 아프면 괜찮냐고 하면서 걱정하는 표정부터 짓지 않나?

아이들: 맞아! 그런 건 조심해 줘야지. 굳이 물어보냐.

예인: 우리 엄마는 안 아파요.

석민: 그래도...... 궁금한 건 물어봐야지요. 히히.


걱정을 궁금함으로 푸는 아이들. 친구를 위로해 주는 방법이 서툰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샘물은 늘 똑똑한 두 아이에게 매번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힘이 든다. 더구나 무려 4학년인데 대책 없이 해맑기만 한 아이들이다.

 

그래도 아이들의 싱싱한 해맑음은 언제나 샘물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한다. 점심시간이다. 텃밭에서 소중히 기른 푸른 채소들을 나눠주었다.


영기: 저는 안 먹을래요.

샘물: 그래도 우리 텃밭에서 기른 거니까 한 잎만 먹어봐!

승지: 우웩! 이 풀은 뭐예요? 이상한 냄새가 나요.

샘물: 아, 쑥갓이야. 오늘 돼지고기볶음이 나왔으니까 쌈하고 같이 싸서 먹으면 돼.

혜린: 저는 먹을래요. 많이 주세요.

유리: 저도요. 더 주세요.


텃밭에는 모종 심은 지 한 달 새에 지주대를 타고 넝쿨이 휘감고 올라 호박도 가지도 오이도 주렁주렁 달린 채소들이 가득하다. 며칠 전에는 ‘쌈데이’를 했다. 몇 몇 반에서 빼곡히 심은 상추, 청경채, 쑥갓을 점심시간에 전 학년이 나눠먹고도 남았다. 처음에는 이런 저런 말이 많던 아이들이 더 많이 먹으려고 경쟁하듯 달려들었다. 씨앗을 뿌리고 싹이 나고 이렇게 커진 것이 신기했나보다. 자기네가 키워낸 것들에 대한 애착이 더 컸으리라. 우리 텃밭에 오이가 두개가 튼실하게 자란 걸 반 명 수대로 나누어 한 조각씩 먹기도 했다. 샘물은 먹어보니 그리 맛있는지 모르겠는데 아이들은 참으로 맛나게 먹었다. 뭐가 맛있냐는 샘물의 물음에 “더 부드럽고 맛이 좋아요”라고 해맑게 답하는 아이들에게서 오히려 배우게 된다. 비 온 날은 “옥수수가 잘 크겠네!”하는 말투가 제법 어른스럽기도 하다. 호박을 키우면서 아이들 마음도 어느 새 성큼 커가는 것 같다.
 


 

수업을 마치면 샘물은 한 과목을 정해 학습한 내용과 ‘오늘 내가 잘한 일’과 ‘제일 즐거웠던 일’을 쓰게 한다. 학습한 내용을 복습하는 의미와 학교생활을 좀 더 긍정적으로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부정적이고 다른 친구들 험담이나 비판하는데 앞장서는 경우가 종종 있어, 친구를 도와주거나 자신이 잘한 일을 다시 생각해 내면 자부심도 생길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잘한 일’을 쓰는 데는 너무나 망설인다. 차라리 ‘반성할 점’을 쓰는 게 어떠냐고 되묻기도 한다.


진호: ‘잘한 일 : 없다’

샘물: 없다가 뭐야 재밌었던 시간도 없어?

진호: 네!

샘물: 흠! 그래도 다른 시간에 비해 좀 더 재밌었던 시간이 있지 않을까?


아이는 망설이는 눈빛이 역력하다. 그러다 겨우 써 놓는다.


선호: ‘즐거웠던 시간: 쉬는 시간 / 잘한 일: 국어

샘물: 잘한 일이 국어야? 국어시간을 더 열심히 했나보구나. 과목을 쓰라는 건 아닌데... 선생님 도와드린 것도 잘한 일이고 친구와 사이좋게 논 것도 잘한 일이고 공부시간에 질문한 것도 발표한 것도 잘한 일이고...... 선호가 오늘 잘한 게 없나? 뭐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옆에서 승수가 냉큼 듣고는 받아 적어 온다.

승수: 선생님 도와준 거? 그거 써야지. / ‘잘한 일: 과학실 (준비물)바구니를 들고 왔다’.


그 다음 날도 즐거웠던 일과 잘한 일을 쓰는 시간에 아이들은 난감한 표정이다.

용이: ‘즐거웠던 일: 모든 시간이 재밌었다./ 잘한 일: .....’

샘물: 나는 현구가 잘한 일 알고 있는데.... 오늘 영어시간에 발표 못하는 친구를 도와줘서 친구가 아주 잘 말하게 해 줬잖아. 그런 것도 아주 잘한 일이야.

현구: ‘잘한 일: 친구가 발표하게 도와줬다’

석민: 저는 오늘 잘한 게 없는데요?

샘물: 승수이도 석민이도 오늘 딱지 가지고 싸웠지만 서로 화내지 않고 얘기해서 잘 마무리 지었잖아.

석민: ‘잘한 일: 싸웠는데 화해했다’


잘한 일이 없어 망설이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잘한 일’을 알려주다 보니 샘물은 점점 괜히 적게 했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한 일’이 생각나지 않는 아이들. 자기 자신들에 대해 관해 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혹시 자기 것을 찾아보기보다는 늘 누군가로부터 비교당하고 이미 만들어진 생각을 가져오는 데만 익숙해진 탓이 아닐까.

 

“선생님 승수가 딱지 줬다가 다시 뺏어갔어요. ‘집에서 부모님 도와드리기’ 같은 숙제 엄마가 그런 거 하지 말래요. 선생님 알림장 안 갖고 왔어요. 선생님 예림이가 욕했어요. 손가락에 피나요. 얘 코피나요. 선생님 민희 울어요......” 시간마다 호소하는 아이들을 달래고 위로해 주고 판결해 주면서 일주일이 다갔다.

 

샘물: “이번 주도 잘 지냈나요? 열심히 잘 지냈으면 자기 머리 세 번 쓰다듬어주기”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선생님 범준이는 다섯 번 했어요” “윤식는 네 번했어요”

샘물: 그래그래 아주아주 열심히 잘 지냈나보지.

아이들: “저도 열심히 했어요” “나도! 나도 다섯 번 해야지”


여기저기 불공평을 호소하며 난리다.


샘물: (눈 부릅뜨며) 다섯번 한 사람은 다음에 두 번만 해!

현준: 네 번 한 사람은 요?

샘물: ......

샘물: 흠! 자 이러다 집에 못가겠다. 여러분만 열심히 지낸 거 아니에요. 선생님도 일주일 동안 고생했어. 그러니까 선생님도 고생하셨어요 하고 악수도 하고 안아주고 가!

아이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선생님, 내일 순천에 가요”, “나도 할아버지네 가는데......”, “월요일에는 호박이 더 커져 있겠지요?”, “옥수수는 언제 먹을 수 있어요?”


저마다 시끌벅적한 말들을 하면서 망설이지 않고 샘물과 악수를 하고 꼭 안아준다.

샘물반 해맑음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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