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형제 섬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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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형제 섬이 사는 법
  • 이재은
  • 승인 2016.07.11 0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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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객원기자의 섬마을 사진 이야기] 9 - 신도 시도 모도


옹진군에 속한 신도, 시도, 모도는 연도교로 연결돼 한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 신도에는 선착장과 구봉산이 있고, 시도는 풀하우스, 슬픈연가 등 드라마 배경지로 유명하며, 모도의 배미꾸미 해변은 조각가 이일호의 작품을 보기 위한 연인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집니다.

한 달에 한 번 인천 섬을 방문할 때마다 그 섬만의 독특한 점을 기대하게 됩니다. 섬이 다 똑같지 뭐, 하는 지레짐작에 빠지면 배에서 내려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어요. ‘그 섬이 그 섬’이라는 인상은 구석구석 돌아보지 않고 섬에 발도장만 찍은 뒤 뭍으로 나오거나, 다녀온 지 몇 달이 지나 기억이 희미해질 때 불현듯 찾아듭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어요. 마을 구경에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이. 섬에는 도시에는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안에 꽁꽁 감춰두는 것을 섬에서는 햇볕과 바람 아래 놓아둡니다. 문패도 그렇고, 빨래도 그렇고, 곡식도 그래요. 섬의 사물은 도시보다 생생합니다. (그러면 실례일 수도 있으나) 구석구석 마을을 돌아보게 되면서 더 이상 ‘그 섬이 그 섬’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도시에도 지붕이 있고, 문이 있고, 담이 있지만 섬의 그것들은 좀 더 낮아서 마치 처음 본 것처럼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낮은 자세로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죠. 자세를 낮춘 덕분에 봄 마실 나왔다가 달맞이 하는 격으로 잊어버렸던 것들, 혹은 잊고 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릴 때 놀러갔던 외갓집의 시골 풍경, 농사일을 돕겠다고 고추밭을 헤매던 일, 곤충 채집에 열을 올렸던 여름방학. 사람을 만나야만 ‘살아있음’을 지각하는 ‘여기’와 달리, ‘저기’에는 움직임 없는 곳에서도 가만가만 사람의 숨결이 묻어납니다. 저 보라고, 저 같은 사람 감동하라고 일부러 장갑을 저렇게 걸어둔 것도 아닐 텐데 토담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어요.

 

 

우체국을 온전히 건물 한 채로 보는 것도 행운, 양조장이라는 단어를 눈으로 읽는 것도 행운, 추장민박의 탄생 배경을 내 맘대로 그려보는 것도 행운입니다.

“섬은 어디 다른 곳에 가는 길에 훌쩍 들르듯 방문할 수 없다. 작정하고 그 섬을 찾아가든지, 아니면 영영 찾지 않든지. 둘 중 하나다. 중간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 나오는 글입니다. 삼목선착장에서 배로 고작 10분이면 닿는 삼형제 섬에 다시 방문할 날이 올지, 영영 가지 않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섬의 손끝과 숨결을 느끼고 올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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