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동고몰 옛집들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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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동고몰 옛집들을 그리며
  • 최정숙
  • 승인 2016.07.22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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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백령도 이야기, 6번째


<햿빛 좋은 날 마당에>
 

제가 어릴적 살았던 백령 진촌 할머니네 집 동네사람들은 바로 윗 마을을 ‘동고몰’이라고들 하였습니다. 난 그 ‘동고몰’ 이라는 이름이 예전부터 정겹고 왠지 동화책 속에 나오는 작은 마을이름 같아서 듣기 좋았답니다.
 

이번 기회에 왜 동고몰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한 생각에 백령도 우리 집 앞에 사시는 분에게 안부전화도 드릴겸 여쭈었습니다. 동고몰은 동끝몰! 그러니까 섬의 동쪽 끝 마을이어서 그렇게들 불렀다고 하시네요. 좀 싱거운 기분이 들어 헛웃음이 나왔답니다.

3년 전 , 제 어린시절 추억이 있었던 진촌 할머니 집이 허물어져 사라진 뒤, 평소에 눈에 익었던 옆집, 뒷 골목길집, 이웃 마을 집들이 정겨운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할머니 집터를 지나서 왼쪽 골목길로 들어서면 풀이 무성히 덮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폐가들이 하나 둘 보입니다.

고향 떠난 자식들이 뭍에서 정신없이 삶을 살아내느라 고향 돌볼 여력이 없으니 빈집들이 생길 수 밖에요. 저는 어느날 우리집이 흔적없이 사라졌듯이, 동네 오래된 집들도 머지않아 그리되리라는 생각에 그 흔적들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 집들을 하나 둘씩 그려 가기 시작하였지요.



<왼쪽으로 난 골목길 옆의 폐가>

<우리 집 바로 옆 최순애 언니네>

<장옥렬 할머니네>

<최성묵씨네>



제 마음 한켠 뻥 뚫린 허전함을 조끔씩 달래려는 본능이었나 봅니다.
과연 집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생각케합니다.


집은 흐르는 시간에 따라 그 안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기쁨과 슬픔 등 온갖 삶의 변화를 끊임없이 담아내는 그릇이랍니다. 그러니 인간들이 오랫동안 다듬고 길들여온 소중한 보금자리로서 각기 다 다른 모양을 낸, 멋진 생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는 집마다 쌓인 오랜 세월의 흔적들, 낡은 지붕, 이끼와 넝쿨로 덮힌 담벼락, 고목들, 장독대 등등,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마음이 아려 옵니다.

백령도가 저의 가족의 고단한 삶을 지니고 있는 고향이듯, 북한에서 잠시 피난 나왔던 사람들은 이제 이 섬에서 60년이 넘는 세월을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로 늙어졌어도 언젠가 지척에 있는 북녘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마음에 평생 그 둥지를 못 떠나고 살아오셨습니다.



<가족 떠난 빈집>

<소박한 장독대>

<담쟁이 덩쿨에 온통 덮혀>
<동백꽃이 활짝>

 

백령 진촌 동고몰 골목길가의 작은 집들도 오랜 세월이 지나버리니 하나둘 말끔히 헐어내고 이제 새 집들을 짓고 있습니다.

백령도에 갈 때마다 옛집들이 하나둘씩 없어지고 낯선 집들이 자꾸 생겨날 때 마다 마을 풍경의 정취는 바뀌고 점점 이방인이 되어 옛 그리움에 서운해집니다.


제 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젊은 20대 면장을 하시면서 밀려들어오는 피난민들의 당장 머무를 거처와 양식 등 구호물자를 마련하시느라 참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정전 후에는 백령도에 부족한 농토를 만들기 위해 간척지에 정착민 사업을 하셨는데... 이제 백령도는 예전의 그 백령도가 아닙니다.



<빨간 장미 넝쿨이 집을 감싸고>


최전방 섬으로서 정부의 복지지원도 많아지고 경제적으로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간척지에서 수확한 쌀이 남아돌아 백령도에 주둔하는 군인들의 양식을 전량 공급한답니다.

육지로 나간 자식들이 먹을 걱정 안하고 잘산다고 자랑하시는 백령도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들은 이제 여유롭습니다.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는 걸 보아도 백령도는 아주 많이 달라졌습니다.


(2016.07.22. 글, 그림 최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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