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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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 한인경
  • 승인 2016.08.1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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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공간] (첫회) 『태풍이 지나가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인천in>이 이달부터 ‘한인경 시인의 시네 공간’을 연재합니다. 남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한인경 시인의 협약하에 <인천in>에 개봉영화를 리뷰하는 기획입니다. 한달에 1~2회씩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예술적 가치 및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함께 나눕니다. 한인경 시인(57)은 인천문인협회 회원으로 <인천in>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육학 석사(경인교육대학교), 세계전통시인협회 한국본부 회원, 한국아동시조작가협회 회원으로 時調生活誌 편집부장을 역임했습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개? 봉 : 2016.07.28(117분/일본)
등? 급 : 12세 관람가
감? 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 연 : 아베 히로시,마키 요코,요시자와 타이요,키키 키린,릴리 프랭키,고바야시 샤토미
영화관 : 영화공간주안

가족의 어른인 어머니, 이혼한 아들 내외, 손자 이렇게 4인 가족의 일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상처를 어루만지며 어른이 되어 가며 좀 더 만족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따뜻한 영화이다. 태풍은 역설적으로 희망의 고리로 작용한다.

꿈을 이루지 못한,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다.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 내고 있는 우리들이 보아야 할 영화로 추천한다.

출연 배우들 못지않게 화제가 되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고레에다 감독의 2016년 최신작 『태풍이 지나가고』 역시 전작인『걸어도 걸어도』,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같이 가족애를 중심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작품이다. 이러한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여백이 있다. 마치 현대에 만나는 한 폭의 동양화 같다고나 할까. 모두 보여주지는 않지만 아쉽지 않고 불친절하게 느끼지 않는 이유다. 상영 시간이 곧 힐링이 되는 영화이다.

대부분 영화는 중심이 되는 강한 사건이 있다. 그 사건은 영화를 열고 내용을 만들어가며 감동을 주기도 하고 마침내 결말을 짓게 하는 이유가 된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여느 영화처럼 강한 임팩트를 주는 사건은 사실 약하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 일상의 모습 같은 영화는 어느새 나의 모습, 우리들 모습으로 치환되며 몰입하여 감상하게 되는 묘한 마력이 있는 영화이다. 곧 등장인물들의 일상이 줄거리가 되는 영화다.

좀더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15년 전 문학상 수상 경력이 있는 작가였고 계속 작가이고 싶은, 그러나 현재 흥신소 직원인 료타(아베 히로시)는 남녀관계 뒤를 캐는 일로 근근이 돈을 번다. 경륜에 빠져서 돈을 탕진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혼한 아내에게 매월 양육비를 부쳐야 하는 넉넉지 못한 경제생활, 그러다 보니 생전에 무관심했던 아버지의 유품이라도 팔아 쓸려고 어머니 요시코의 집에서 유품을 찾아내려고 집안을 뒤지기도 한다. 과거 결혼생활을 그리워하며 전 부인이 키우고 있는 아들 싱고(요시자와 타이요)를 매월 한 번 만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본인도 어디서부터 이리 자신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는지 안타까워한다.
마치 료타의 실제 인물 처럼 분장한 배우 아베 히로시, 큰 키에 약간 구부정해 보이는 어깨와 덥수룩한 수염, 퀭한 큰 눈은 현실에 뒤처진 50대 남자를 상상하게 한다. 어릴 적 꿈처럼 모두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료타의 작지만 강한 웅변은 현재를 살고 있는 많은 어른들이 공감할 것 같다. 세상에 존재함과 동시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른이 되어간다. 성공과 실패, 용기와 좌절, 희망과 절망, 사랑과 이별, 행복과 고독, 건강과 질병 등 실로 엄청난 정신적인 질곡을 넘나들며 그렇게 뇌의 크기와 심장의 울림은 성장해간다.

역시 한국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대 배우 키키 키린이 등장한다. 한국에는 소위 극작가 ‘김수현 사단’이라고 불리는 배우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이순재, 김해숙, 강부자. 김상중, 양희경 등을 들 수 있겠다. 어머니 역할의 키키 키린, 아들 역의 아베 히로시, 이혼한 아내 역의 마키 요코, 그밖에 흥신소 사장 릴리 프랭키는 대표적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단이다. 2008년 개봉했고 요즘 재개봉하여 상영 중인 『걸어도 걸어도』에도 母子 간으로 아베 히로시와 키키 키린이 등장한다.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의 역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고레에다 감독의 역작들이 동시에 상영 중이다. 『걸어도 걸어도』,『환상의 빛』,『태풍이 지나가고』이 세 작품을 한 상영관에서 동시에 만날 수 있다니 고레에다 감독의 팬들에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들 부부의 재결합을 바라고 있는 어머니 요시코(키키 키린)의 익살과 유머는 자칫 무겁게 흘러갈 수 있는 영화 분위기를 환기시키곤 한다. 그러나 편안하게 전달되는 명대사들은 역시 대배우 키키 키린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소량의 주스와 훨씬 많은 양의 물을 넣어 얼린 단단한 셔벗을 母子가 숟가락으로 힘겹게 긁어서 먹는 장면이 나온다. 생소하기도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서였다. 좁은 연립단지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어머니 요시코는 태풍이 휘몰아치는 궂은 날씨를 핑계로 이혼한 아들 부부가 하룻밤 거처하게 하는 데 성공한다. 아쉽지만 각자는 태풍이 지나가면 각각의 어른으로 되돌아가 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태풍이 지나가면 무언가 희망적인 앞날이 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각자의 삶으로 향한다.

고레에다 감독의 철학이 어머니 요시코 및 등장 배우들을 통해서 주옥같은 명언으로 탄생하였다. 몇 개만 옮겨보면 “행복이란 건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받을 수 없는 거야. 난 평생 누군가를 바다보다 더 깊이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거야 날마다 즐겁게”, “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남자는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야.”. “난 포볼이 좋아.” 아들 료코에게, 흥신소 소장이 료코에게, 아들 싱고가 아버지 료코에게 하는 말들이다. 힘주어 관객들에게 주입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듣고 보면 인생의 진한 맛이 배어 있는 육화된 고레에다 감독의 인생언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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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아내 쿄코(마티 요코)는 아들 싱고를 키우고 있고 전 남편에 대하여 타인처럼 대하지는 않지만 언제라도 더 나은 생활을 그린다. 영화 내내 가장 맘에 걸렸던 아들 싱고가 있다. 아버지 료코에게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원하는 사람이 됐어?”라는 질문처럼 싱고는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이어지는 자신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투영시킨다. 거의 웃음을 잃은 싱고의 표정이 애잔하다. 아빠와 축구화를 고를 때도 눈치를 보며 자신이 원하는 제품보다 저렴한 제품을 고르는 모습, 생기 없는 언어들과 다소 경직된 눈빛은 혼란스런 부모의 모습을 보며 성장하는 어린 싱고의 감정의 선을 보여 준다.
싱고는 아버지가 자신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태풍이 몰아치는 날 밤 아버지와 놀이터에서 놀면서 싱고는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한다. 비로소 웃음기를 보이는 싱고. 아버지 료타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 장면이 있다. 아버지 유품을 갖고 간 전당포에서 주인은 료타가 15년 전에 문학상을 받은 소설책을 내밀면서 생전의 아버지께서 “후일 매우 유명한 책이 될 것이고 가격도 비싼 책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전한다. 한 가지, 낯선 장면이 있다. 전당포의 모습이다. 위가 열린 넓은 통유리와 밝은 조명, 우리네 기억 속의 전당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릴 적 꿈을 갖고 그 꿈을 가꾸며 살아간다. 감독은 영화 내내 묻는다.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원하던 삶을 살고 있나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꿈을 가꾸며 살아가는 과정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과정 즉 현재를 즐겁게 살아가는 어른은 어떠냐고 슬쩍 쾌답을 내놓는다. 모든 사람이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메시지를 뽑으라면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남자는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야.” 라는 흥신소 소장(릴리 프랭키)을 통한 감독의 메시지를 뽑고 싶다.

24절기를 보면 입추 다음에 말복이 있다. 여름 안에는 이미 가을이 와 있다. 거칠고 어두운 태풍이 지나가면 눈앞의 풍경들은 어느 정도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기까지 하다. 료코 가족이 태풍이 지나가고 한 발 더 행복에 가까운 어른이 되어 있는 모습을 그려본다.(한인경/시인·인천in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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