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내 삶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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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내 삶의 일부입니다"
  • 이병기
  • 승인 2010.08.1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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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람 된 이웃] '정형덕씨의 나날들'


남구노인문화센터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급식 봉사하는 정형덕씨(맨 오른쪽).
그의 얼굴엔 시종 미소가 걸려 있다.

취재: 이병기 기자

79세 고령의 나이임에도 지난 27년 동안 새벽마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봉사에 나선 '된 사람'이 있다. 

101세의 시어머니와 세 살 위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정형덕씨는 올해로 27년째 인하대 후문에 위치한 혜성보육원에서 빨래 자원봉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안산에 살던 그이는 35년 전 딸아이가 인일여고에 합격하면서 가족이 함께 인하대 후문으로 이사를 왔다. 이제 50을 바라보는 딸은 항공운항과 졸업 후 스튜어디스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캐나다에서 남편, 두 아들과 함께 이민생활을 하고 있다.

"딸아이 교육 문제로 인천으로 오고 난 뒤 용현성당에 다녔어요. 하루는 신부님이 '혜성보육원에 아이들은 많은데 일손이 부족하다'고 말해 그때부터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됐죠. 당시만 해도 그 많은 빨래들을 직접 손으로 빨고 널어야 했기에 사람이 많이 필요했어요. 지금이야 기계가 빨아서 예전보다는 낫죠."

그렇게 보육원과 연을 맺은 이후 정형덕씨는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난다. 묵주기도를 마치고 시어머니와 남편 식사를 차리면 혜성보육원에 갈 시간. 오전 7시10분까지 도착해 아침 미사 전까지 3시간여 동안 아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빨래를 차곡차곡 넌다.

말로는 부르기 쉬운 27년이지만, 새벽마다 이웃을 위해 거의 매일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 정씨의 이런 선행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장관상과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보육원에서 함께 오래 일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들방날방' 해요. 나같은 경우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인 줄 알았어요. '하느님이 봐주시겠지' 생각해요. 애들이 객지에 나가서 잘 사는 걸 보면 '그 덕분이겠지' 합니다."

물론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픈 곳이 없겠냐만은 "한 달에 한 번 관절 주사 맞고, 딸이 보내주는 약을 먹으니 괜찮다"며 "힘 닿는 데까지 하겠다"라고 말한다.


3년 전부터는 보육원 옆에 위치한 남구노인문화센터에서도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매주 화요일이면 9시까지 센터를 찾아가 점심 준비를 돕는다. 음식을 만들거나 식판 닦기, 청소 등을 마치고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배식을 맡아 벗들에게 음식을 나눠준다. 

거의 오전 내내 서 있어야 하는 일이지만, 음식을 덜어주는 내내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다.

정씨가 새벽마다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에는 가족들의 응원도 한 몫 한다.

"내가 아침에 밥을 차리고 나가면 남편이 밥상을 치우죠. 가끔은 '봉사활동을 갈 시간이다'라고 알려주기도 하구요. 시어머니도 도와주세요. 음식 어깃장이라도 놓으면 봉사활동 못 나가잖아요. 종종 남편한테 '에미 봉사활동 갔냐'라고 물어보시기도 해요. 관심이 있으신거죠."

거의 반세기 동안 모신 시어머니지만 아직도 어려움이 있다. 8남매 종갓집 맏며느리로 들어와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가 많이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나마 나아진 편이다. 정씨는 "같이 늙어가다 보니 '어머니' 같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세 명분의 노령연금과 남편이 공공근로에 나가 벌어오는 22만원, 마을금고에 넣어둔 예금 이자 약간이 정씨 가족의 수입원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어려운 이웃을 보면 3만원, 5만원씩 도와주거나 쌀을 보내기도 한다. 동네에 몸이 불편한 언니 집에 찾아가 밥을 차려주는 일도 정씨의 생활 중 일부분이다.

"손자들이 지금은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한국에 들어와 살겠죠. 그때 아이들이 지낼 수 있도록 작은 빌라지만 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잘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제 가장 큰 소망입니다."

정씨는 "삼시세끼 밥을 먹으며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하려고 한다"며 "아파서 그만두고 싶지는 않고, 계속 하다가 힘에 부치면 그때 가서 그만둬도 괜찮겠죠"라고 말한다.

정형덕씨에게 봉사활동은 그의 말처럼 세끼 먹는 밥과 같은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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