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채식' 에스페란자 선장의 승선... 절반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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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채식' 에스페란자 선장의 승선... 절반의 '혁명'
  • 김연식
  • 승인 2016.09.0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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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고기 없는 하루(Meat free day)

에스페란자 호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진 건 선장 ‘마이클’이 승선하면서 부터다. 마이클은 일명 ‘음식 혁명가’다. 승선하자마자 월요일 하루를 ‘고기 없는 날(Meat free day)’로 정했다. 선장은 채식주의를 넘어 완전 채식인 비건(Vegan)이다.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안 먹을 뿐 우유와 치즈 등 유제품은 먹는다. 비건은 그마저도 거부한다. 마이클은 육류 섭취가 환경파괴의 주범이라 믿는다. 그러니 환경을 보호하는 그린피스의 선박의 식단에서도 고기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부 선원들은 불만이다. 음식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선택이며, 따라서 각자의 문화, 체질, 건강상태, 신념에 맡겨야 한다는 것, 이를 선장이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이다. 반대의 선봉에 선 건 아르헨티나 출신 2등 기관사 ‘마리오’다. 목초지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주말마다 바비큐를 하는 마리오. 40년 넘게 고기 없이는 한 끼도 안 먹어 온 초원의 사나이다. 그는 “난 토끼가 아니다. 고기 없이는 밥을 먹지 않겠다”고 투정했다.

결국 두 번째 고기 없는 날에 전체 회의가 열렸다. 선장과 마리오 사이의 긴 토론은 분량을 위해 생략할 수밖에 없다. 문화의 차이일까. 선장과 2등 기관사 사이에는 가감 없는 대화가 오갔다. 설득과 제안, 단호한 거부가 오가고 종종 서로 언성이 높아지더니 결국 타협했다. 월요일 하루가 아니라 그날 점심식사만 고기 없이 먹기로 한 끼씩 양보한 것이다. 선장은 “역사가 반보라도 전진 한 것”이라고 평했고, 마리오는 “선장은 고집쟁이”라고 구시렁거렸다.
 
채식은 여전히 논란이다. 환경보호의 최첨단에 있는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에서 조차 채식은 갈등이다. 그 논란이 얼마나 극단적인지 보여주기 위해 선장과 마리오의 지난한 대화를 옮길 필요도 없다. 누구든 집 앞 도서관에만 가도 할 수 있다. (사실 인터넷만으로 충분하다.)

도서관에서 책 이름으로 ‘채식’을 검색하면 마흔 권쯤 나온다. 모든 책의 분류번호가 517.54로 시작한다. 해당 서가에 가면 유감스럽게도 이곳의 코너명은 ‘건강’이다. 도서관 사서는 ‘채식’이라는 단어가 붙은 책은 모조리 여기에 쏟아 넣은 모양이다. 주변은 ‘건강한 밥상’, ‘밥이 보약이다’, ‘몸을 살리는 식단’ 같은 음식 서적 천지다.
채식 코너는 벌써 책들의 전쟁터다. 그 광경은 대략 이렇다. <채식은 사랑이다/루비 로스>라는 책 옆에 <채식의 배신/리어 키스>, <이렇게 맛있고 멋진 채색이라면/생강 저> 옆에 <채식주의가 병을 부른다/이동진>, <육식의 종말/제레미 리프킨> 옆에 <필로 교수의 고기예찬/주선태>, <우리 몸은 채식을 원한다/이광조> 옆에 <우리 고기 좀 먹어볼까/박태균>, 마지막으로 문학코너마저 <채식주의자/한강> 옆에 <육식주의자/박지운>가 있는 식이다. 심지어 양 극단의 저자는 모두 의사인 경우도 있다. 나는 양측의 책을 읽으며 두 저자가 옷깃이라도 스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서가를 둘러보다 책 읽기를 포기했는데, 옆에 있는 책 <굶으면 낫는다>, <물, 마시지마라>, <탄수화물을 끊어라>같은 이상한 제목의 책들을 끝에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는 책을 놓아 둔 사서의 배려덕분이다.
 


< 도서관에 있는 채식관련 책과 그 비판서 >
 
도서관에서 책을 몇 권 읽어보니 채식의 동기는 주로 도덕, 정치, 영양, 종교, 환경보호, 심리적이다. 설명하면, 종교적 채식은 스님들이 살생을 하지 않기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고, 도덕적이란 공장형 양계장에서 심리적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암탉들이 눈에 밟혀 이를 거부하는 것, 심리적이란 도살장에서 비명을 지르며
잔인하게 죽는 동물에 관한 인식, 정치적이란 국가간 정치력(협상력)의 차이로 인해 강대국 곡물기업이 곡물시장을 독점(곡물 제국주의)하고, 이에 따라 약소국 농부들이 파산하고 기아문제가 대두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물론 어느 것 하나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건강을 위한 채식마저 의사끼리 의견이 다르다.
 
나는 고기를 좋아한다. 고기는 냠냠 맛있으니까. 나는 유들유들한 성격만큼이나 먹는 것에 고집스럽지 않다. 뭐든 골고루 잘 먹는 것이 건강에 최선이라 믿는다. 다만 건강과 환경보호의 측면에서 육류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정도에 공감한다. 그런 면에서 에스페란자 호에서 하루나 한 끼쯤 고기 없는 식사를 하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지난 1월, 나는 남미 아르헨티나의 열대우림이 파괴되는 현장을 보고 왔다. 아르헨티나는 콩을 한해에 5천400만 톤이나 생산한다. 우리 전 국민에게 1톤씩 주고도 남는 엄청난 양이다. 이 콩은 대부분 13억 중국인이 먹는 돼지의 사료로 쓰인다. 이 때문에 최근 30년 사이 남한 전체 면적의 3배(28만4천㎢)에 달하는 숲이 밭으로 개간되었다.

고기의 단백질 100그램을 얻기 위해 동물에게 식물성 단백질을 800그램 먹여야 한다. 두부 한 조각이면 될 단백질을 동물에게서 얻으려면 그 8배나 먹여야 하는 것이다. (물론 육류에는 두부에서 얻을 수 없는 영양소가 있다.) 이 때문에 숲이 점점 사료 경작지로 개간되고 있다. 게다가 가축은 지구 온난화의 제 1원인이다. 전 세계 온실가스의 18할을 가축이 배출하고 있다. 이는 자동차, 선박 등의 교통수단이 뿜는 13할보다 많다.
 


< 콩을 기르기 위해 파괴된 아르헨티나 우림. 지평선 너머까지 콩밭이다. >

 
나는 여전히 고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을 위해 조금 양보할 의사가 있다. 고기 없는 한 끼는 온실가스를 줄이고 숲을 보호해 기후변화를 막는 아주 작은 실천이다. 식사는 생명을 유지하는데 결정적 행위다. 날마다 반복하는 식탁을 통해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건 작지만 위대한 시작이 될 수 있다.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반론 도서 <채식의 배신/리어 키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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