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레이스키 디아스포라, 그 아픈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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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디아스포라, 그 아픈 역사를...
  • 이한수
  • 승인 2016.09.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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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팩션] (24) 문영숙 소설과 영화 [레나]


인천에서 올해로 네 번째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열렸습니다. ‘디아스포라’는 ‘뿔뿔이 흩어지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로 원래는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난 유대인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지금은 ‘이산(離散) 유랑민’이라는 뜻으로 확대되어 쓰이고 있으며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문제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민족은 유대인 못지않게 아픈 디아스포라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인천은 [한국이민사박물관]을 세워 멕시코 에니켄 이민과 하와이 이민을 조명해 왔으며 디아스포라 영화제로 동남아 이주 노동자, 중앙아시아 고려인 등으로 시각을 넓히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분단으로 인해 가려진 독립투사들의 이산(離散) 문제에 더 많이 주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까레이스키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이번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까레이스키 영화 [김 알렉스의 식당 : 안산–타슈켄트]가 상영되어 참 반가웠습니다. 일제에 맞서 독립 투쟁을 하던 많은 지사 의병들이 간도 연해주로 넘어가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쳐 싸우다가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끔찍한 일에 대해 우리 후손들은 너무 무관심합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 그들은 얼마나 서운할까요. 그 아픈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유대민족이 세계 도처로 뿔뿔이 흩어지면서도 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조선족, 고려인을 포괄하는 민족 정체성을 회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어떤 연유로 그 먼 이국으로 쫓겨나게 되었을까요.  

연해주 고려인이 강제이주 당한 1937년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으로 전운이 온 세상을 휘감던 시기였습니다. 일본이 1937년에 중국대륙을 침략하여 중일전쟁이 벌어지고 바로 그 다음 해 난징대학살이라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는 노골적으로 전쟁을 부추겨 주변국을 불안에 떨게 하던 때였는데 2년 뒤에는 결국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맙니다. 소련의 스탈린도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데 그 와중에 연해주 고려인 지도자들이 대량 학살되고 18만여 명의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게 됩니다. 이 아픈 역사가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 공감되도록 하려면 감동적인 팩션물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청소년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우리 동포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를 청소년소설로 형상화하고 있는 문영숙 작가는 위대한 교육자입니다. 멕시코로 팔려간 조선인은 [에네껜 아이들]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은 [검은바다]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고려인은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으로 그려내셨습니다. 우리 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청소년들에게 이야기로 들려주기 위해 작가로서의 열정을 모두 쏟아 넣은 분입니다.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하면서 고려인들이 겪은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송 나브렌치’ 감독이 만든 영화가 있긴 하지만 일반 대중은 쉽게 접할 수가 없으니 아직은 문영숙 님의 소설이 가장 수월하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안동화’는 1924년 연해주 신한촌에서 태어나 열네 살 되던 1937년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우슈토베로 강제이주 당합니다. 신한촌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한인 마을로 1920년에 일어난 4월 참변으로 한인 수백 명이 학살 당한 곳입니다. 그 해에 간도에서도 경신대참변으로 수만 명의 조선인이 학살 당했습니다. 국내 의병 항쟁이 간도와 연해주로 거점을 옮기고 그 세력이 가장 왕성해진 때가 3.1만세운동과 청산리 대첩이 일어난 1920년 무렵인데 일제는 대륙을 침략하기 위해 간도를 노리고 있었던 터라 간도에서는 만주 군벌과, 연해주에서는 러시아 반혁명 백군과 결탁해 조선 독립군 세력을 진압하려고 들었습니다. ‘동화’네 집도 4월참변 때 동화 삼촌 둘이 사망하고 화병으로 할머니까지 돌아가십니다.

어린 ‘동화’가 겪은 비극의 이면에는 참 안타까운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소비에트 혁명군과 조선 의병이 연합해 일본군을 몰아내면서 연해주는 대일 항쟁의 배후 기지가 되었는데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연해주 한인들은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강제 이주 당할 때 연해주에 살고 있는 한인이 18만이나 되었고 간도에 자리잡은 38만 명이나 되는 조선인과 합치면 5·60만이 되니 간도 연해주는 우리 민족의 강역이자 독립 투쟁의 기지였는데 느닷없이 강제이주를 당하게 되니 원통하기 그지없습니다.

‘동화’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아 걱정이 태산 같은데 오빠 ‘동식’, 엄마, 할아버지와 함께 네 식구는 짐짝처럼 열차에 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화’ 할아버지는 안응칠(안중근의 아명) 가문인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으로 일찍이 연해주로 건너와 자리잡고 아들이 독립운동에 나서는 걸 후원했던 분입니다. 할아버지는 조선인들이 일본 첩자 노릇을 할까봐 강제로 이주시킨다는 소련의 처사에 분노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열차 간에서 그 유명한 홍범도 장군을 만나 우리 민족이 처한 통한의 비극을 함께 나눕니다. 위대한 독립투사 홍범도 장군이 개 돼지나 싣는 열차에 태워져 먼 이국땅으로 쫓겨난 게 이 민족의 처참한 실상이었습니다.



[약속의 땅] 강제이주 열차 간에서 장례 치르는 장면


두 달 동안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열차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생지옥이었습니다. 짐승이나 실어 나를 화물칸에 사람들을 구겨 넣었고 판자 틈으로 불어 들어오는 찬바람은 살을 애일 듯하고 바닥 판자를 뜯어내어 용변을 봐야 할 정도로 혹독한 조건이니 노약자는 견디지 못하고 숨이 넘어갔고 시신을 치우지 못해 달리는 열차 밖으로 버려야 할 정도로 참담한 지경이었습니다. 이렇게 대륙을 횡단하는 동안 근 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송 나브렌치 감독의 영화 『약속의 땅』은 열차간의 끔찍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그때 우리 동포들이 겪었던 고통을 여실하게 공감하도록 해줍니다.

그렇게 끌려간 고려인들이 처음 도착하여 짐짝처럼 부려진 곳이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입니다. 오는 동안 젊은이들이 러시아인 관리들의 비인간적인 처사에 항거하다가 집단으로 총살당하기도 하는데 그 일을 주도했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오빠 ‘동식’이는 정신이 나가 실어증에 걸리고 엄마도 차간에서 출산을 하다가 죽고 맙니다. 우슈토베에 도착하여 황무지를 개척하는 동안 오빠와 할아버지마저 잃고 ‘동화’는 천애의 고아가 되고 맙니다. 갈대숲으로 뒤덮혀 있는  들판에 땅굴을 파고 움막을 지어 겨울을 나고 봄이 맞이해서는 황무지를 일구어 굶주림을 견디면서 간직해온 씨앗을 뿌립니다.



(KBS 파노라마.‘카레이스키 150’ 3편 오디세이 기나긴 여정)


황무지에 버려지다시피 한 고려인은 끈질기게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갈대숲을 갈아 물길을 내고 논을 일구어내는 기적을 이룹니다. 소련 정부는 고려인의 위업을 높이 평가하여 노력영웅으로 대접하고 집단농장 개발을 맡기기까지 합니다. 우리 민족은 어딜 가나 위대한 문명을 이루어낸다는 걸 증명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업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또다시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50만에 이르렀던 고려인은 어떻게 되었던가요. 일부는 연해주로 돌아가고 일부는 조국으로 귀환했지만 조국 독립 투쟁을 위해 몸 바쳤던 그들의 위업은 어디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이야기를 경청해야 할 듯합니다.

고려인 후손의 고국 귀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영화가 나와 우리 민족 디아스포라에 대한 공감대가 넓혀지게 되었으니 민망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4세 ‘박 루슬란’ 감독이 만든 [하나안]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고려인 후손 젊은이들의 피폐해진 삶과 조국을 하나안(‘가나안’의 러시아식 발음)으로 꿈꾸는 동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최근에 개봉된 [레나]는 고려인 3세 처녀가 한국의 농촌 총각과 계약결혼을 하면서 조국으로 돌아와 겪는 애환과 환희를 참 애틋하게 그렸습니다.



부모님 묘소에서 흙을 퍼 담는 ‘레나’


‘레나’는 부모님의 묘소에서 흙을 퍼 담아 한국으로 가져옵니다. 병에 걸렸지만 가난하여 치료를 받을 수가 없어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는데 녹차 농사를 짓는 ‘순구’한테 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조상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결혼을 이용하고 있다는 자책이 심해지고 너무나 순박한 ‘순구’한테 죄를 짓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순구’에게 더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떠나려는 레나와, 그런 레나의 순정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순구’의 순박한 마음이 너무나 감동적으로 그려졌습니다.

[하나안]이나 [레나]가 정처 없이 떠도는 고려인 후손들의 비참한 삶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긴 했는데 그들이 왜 그렇게 뿌리 잃은 유랑민 신세가 되었는지 그 역사적 연원에 대한 언급이 없어 좀 아쉬웠습니다. 김용필의 단편소설 「연해주의 붉은 군대」는 고려인 후손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조국의 분단 현실에 대한 역사의식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유학온 ‘김 스타코프’는 연해주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투사들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는 한국의 풍토에 대해 크게 실망하며 같이 공부하는 한국인 친구에게 이렇게 토로하고 있습니다.
 
“너도 내가 우습니?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떠드는 내가 말이야.”
“아니야, 그렇지만 한편으론 네가 자랑스럽게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떠들어 대는 것이 거북스러웠어. 시대가 바뀌었는데…….”
“거봐. 친구인 너까지……. 그것이 나를 화나게 하는 거야. 알아주지 않으니까 떠드는 거야.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낮선 외국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게 사는지 아니?”
“글쎄, 실감은 안 나지만 동정은 한다고.”
“동정, 그들이 피 흘려 만든 터전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잘 살고 있는데 진정 나라를 찾으려고 몸 바친 후손들은 고통스럽게 이국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잖아.”
“정부에서 나름대로 보상은 해주고 있잖니.”
“보상? 그까짓 보상으로 다 끝났다고 생각해? 그리고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연해주파는 적으로 대하잖아.”
“연해주파?”
“러시아 붉은 군대의 지원을 받은 항일투사들 말이야.”
“그야, 그럴 수밖에 없지. 그들 붉은 군대의 지원을 받던 항일투사들은 북조선에서 인정해 주고 있잖아.”
“시욘아, 대체 민족이란 뭐니? 왜 이념으로 남북을 가르려고 하는 거야?”
 김용필 「연해주의 붉은 군대」 中

소설은 연해주의 독립투사들이 억울하게 강제 이주를 당한 역사적 배경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스탈린 정권은 연해주 조선인 항일유격대 지도자 ‘김응서’ 장군에게 조선인 유격대원을 무장 해제시켜 붉은 군대에 통합시키면 조선이 해방되어 신탁통치 체제로 들어갈 때 북쪽 지도자로 밀어주겠다고 회유하지만 장군은 조선이 갈라지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거부합니다. 붉은 군대 편입에 반대한 이들은 처형을 당하고 대부분의 연해주 조선인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것입니다.

소설 인물 ‘김 스타코프‘의 할아버지 ’김응서‘ 장군은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백마 탄 김일성 장군‘으로 유명했던 실존 인물 ’김경천‘ 장군과 일치하고, 김 스타코프의 한국인 친구 ’시욘‘의 조고모 ’알렉산드라 제시카‘는 실존인물 ’김 알렉산드라 스탄케피치‘와 일치합니다. 소설은 강제이주 당한 독립투사 ’김경천‘과 조선인 사회주의 여성 혁명가 ’김 알렉산드라 스탄케피치‘의 후손이 분단된 한국에서 학우로 만나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으로 그려, 아프지만 위대한 환인 민족의 역사를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한국인 50만, 중앙아시아에서 역이주해 온 5만을 포함해서 연해주 고려인 20만, 연변조선족 자치주 조선족 220만, 한일병합으로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을 피해 간도 연해주로 이동해간 의병들의 후손이 300만이나 됩니다. 이들 우리 민족 유이민들이 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긍심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려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 아픈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우리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이참에 조선족(주신족)의 천산(톈샨산맥) 이주 기원설이나 기세춘 선생의 환인 연구와 문익환 목사의 수메르 문자 연구 등 우리 민족 기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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