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뎀 잉글리시'... 창피함을 무릅써야 터지는 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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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뎀 잉글리시'... 창피함을 무릅써야 터지는 말문
  • 김연식
  • 승인 2016.09.18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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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면 자전거를 탈 수 없다
 

-영어. 영어. 지겨운 영어. 망할 놈의 영어. 영어로는 ‘갓 뎀 잉글리시’.


여기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의 공용어는 ‘영어’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조직이니 영어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배의 하루는 영어로 시작해 영어로 끝난다. 아침 7시 30분이면 당직자가 각 방을 돌며 상냥한 '영어'로 잠자는 선원들을 깨운다.


-굿 모닝, 킴. 세븐 써티~


영어가 아니어도 반갑지 않은 말을 굳이 영어로 들으니 잠이 확 달아난다. 썩 좋은 아침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굿 모닝”이라고 답한다. 그 반대말을 배운 적이 없어서다.

식당에 가니 사람들이 한 손에 버터와 치즈를 들고 “모닝, 모닝” 짧게 인사한다. 나도 “모닝, 모닝”한다. 차마 “배드 모닝”이라고 문법을 벗어나 멋대로 지껄일 자신이 없으니까. 그저 구겨진 표정으로 심기를 드러낼 뿐이다. 뭐, 다른 사람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배에서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절반도 안 된다. 그러니 하는 말이 대게 거기서 거기다.

이렇게 피곤한 아침이면 나는 어디에든 속 시원하게 심경을 털어놓고 싶다. 한국 드라마를 보며 어설프게라도 우리말을 배운 사람이 있다면 앉혀놓고 내 기분에 대해 한 시간쯤 주절거리고 싶다.

“날씨가 엉망진창이야. 다들 배가 흔들려서 잠도 못 잤을 텐데, 이런 날은 좀 융통성 좀 있어야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이런 날 아침부터 무슨 빠다에 치즈야. 시원한 김칫국을 마셔도 모자란 판에. 내 말이 맞지?”라고 쏟아내고 싶은 것이다.

 

영어는 처음 그린피스에 올 때부터 부담이었다. 노량진 어디 커피 집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난데없이 네덜란드에서 전화가 왔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그린피스 본부였다. 얼떨결에 받으니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발음의 영어가 쏟아졌다. (단언컨대 네덜란드 사람들의 말은 지구상에서 가장 ‘외계어’스럽다. 만일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네덜란드 사람을 회담장에 내보내도록 하자.)

한 10분쯤 전화로, 물론 영어로 인터뷰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나는 정중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이렇게 시차를 배려해 적절한 시간에 전화를 주시다니요. 무척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부디 긍정적인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실은 아는 영어가 빈곤한 탓에 허공에 허리를 굽실거리며 연신 “땡큐, 땡큐”만 연발했다.

전화기 반대쪽에서도 내 마음을 헤아린 것인지, 그러나 그 쪽도 엉뚱한 발음만큼이나 영어에 한계가 있는지 “유어 웰컴”이라는 교과서에 나오는 말만 반복했다. 나중에 이 친구를 직접 만나면 ‘How are you?’로 시작해 ‘Find, thank you. and you?’로 이어지는 교과서 영어를 주고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영어라면 자신 있었다. 토익(TOEIC)시험을 치면 늘 995점 만점에서 900점을 거뜬히 넘었다. 대학 시절 영어과목은 늘 최고점이었고, 영어경시대회에서 수석을 차지해 대학총장상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니 친구들이 장난삼아 ‘영어 신동’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린피스에 와서도 일하는데 영어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다. 그건 ‘업무 영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감정을 나누는 대화다. 식사 시간에 음식을 앞에 두고 하는 대화는 교과서로 배운 적이 없다. 오늘 겪은 일 가운데 재미있었던 일을 재미있게, 슬픈 일을 슬프게, 화나는 일을 화나게 전하는 게 쉽지 않았다. 상대가 웃고 울게 하는 감정의 교류에는 충분한 언어능력 이상의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는 한동안 꿀 먹은 벙어리 삼룡이가 되어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첫 한 달쯤 보냈을까. 선원들과 친분이 쌓이니 슬슬 대화가 늘기 시작했다. 나는 원어민 동료가 하는 말이나 영화에 나오는 영어 대사를 유심히 들었다가 대화에 써먹곤 했다.

그러나 거기엔 한계가 있었다. 남의 말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했고, 준비한 한마디가 끝나면 다시 내 본래 콩글리시(Konglish, 한국식 영어)가 튀어 나왔다. 그러고나면 유창했던 첫 말이 준비한 것이라는 게 들통 난 것 같아 창피했다.

 

창피. 그래 창피. 그 놈의 영어로는 shame. 늘 그게 문제다. 언어를 배우고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창피다. 내 말이 문법상 틀리지 않을까, 상대의 상식에 어긋나지 않을까, 그에게 즐거울까, 흥미로울까. 쭈뼛쭈뼛 망설여서는 영어도 관계도 늘기 힘들다.

 

따져보니 전체 선원 스무 명 중 영어 원어민은 다섯 명 뿐이다. (미국, 영국, 호주, 남아프리카 공화국, 뉴질랜드 각 1명) 나머지는 스페인,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러시아, 멕시코, 독일, 필리핀, 프랑스, 스페인, 칠레, 태국, 브라질, 그리고 한국 등에서 왔다.

유심히 들어보면 나 말고도 스페인 선원은 스팽글리시(Spanglish)를, 칠레 사람은 칠글리시(Chillish), 독일 선원은 젬글리시(Germlish) 등 각자 모국어식 영어를 한다. 이들에게 영어는 외국어다. 서툴고 어색한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신나서 재잘거리는 걸 보면 얼굴이 참 두껍구나 싶다.

 

< 각국에서 모인 선원들이 대화하며 어울릴 수 있는 건 영문법 땅위는 좀 틀려도 좋다는 이해심 덕분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틀릴 수 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고 완벽한 영어를 해야한다는 강박에 빠져 입에 맞지 않는 발음을 따라하려고 애쓰면 말은 늘지 않는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나서야 말이 늘고 친구가 생긴다. 문법을 틀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 말문이 터진다.


물론 그러다 이런 실수도 했다.

-이 아름다운 음식은 여기 맛있는 여성이 만들었습니다.


장난 반, 실수 반으로 '맛있는'과 '아름다운'의 위치가 바뀌는 바람에 실례될 수 있는 말을 했지만 덕분에 한바탕 웃기도 했다.

 

각국의 사람이 모여 있으니 배의 영어는 교과서의 영미식 언어가 아닌 제 3의 다른 언어가 된다. 문법이 무너지고 단어와 뉘앙스가 중요해진다.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는 말을 “내 신발에 들어가봐”라는 본래 영어표현 대신 “내 쪽에 서봐”라는 식으로 직설적 표현을 사용한다. 원래 영어 표현은 사라지고 영어와 비슷한 어느 ‘국제어’가 남은 것이다.

미국 사람들의 영어는 국제어가 아니다.  국제어는 영어와 아주 유사한,  그러나 전 세계인에게 편한 말이다. 영문법 책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있게 나서야겠다.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면 자전거 실력이 늘지 않으니 말이다. 넘어져도 좋다. 오히려 창피함을 무릅쓰고 많이 넘어지자. 한번 넘어지면 더 큰 내가 일어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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