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회라고 특별한 소회는 없어요. 가다보니 그렇게 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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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회라고 특별한 소회는 없어요. 가다보니 그렇게 된거지".
  • 강영희 객원기자
  • 승인 2016.09.23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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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회 맞는 배다리 시낭송회... 곽현숙 '시 다락방' 대표 인터뷰

동인천 배다리의 한적한 공기가 이른 아침의 차가움을 녹이는 느린 아침, 볕이 따갑게 내리쬐기 시작하는 9월의 바람이 하늘을 높이높이 밀어올리고 있다. 그 가을볕을 바람으로 가르며 따릉따릉~ '마을사진관 다행' 앞 '그린기획'에서 시낭송회 현수막을 찾아간다며 휘리릭 다시 헌책방쪽으로 내려가신다. 



@아벨서점. 2013년 7월 


100회라고 특별한 소회는 없어요. 가다보니 그렇게 된거지 ..

'배다리, 시가 있는 작은 책길' 시낭송회가 2007년 11월 24일 랑승만 시인을 시작으로 9년 10개월, 100회를 맞았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오후 2시, 아벨전시관 2층 시다락방에서의 시낭송회는 특별한 무엇이라기 보다 배다리의 일상이었다. 이제 2016년 9월24일 토요일 오후 2시, 조용히 100회를 맞아 故고정희 시인을 모시고 배다리 시낭송회가 열린다.

이 마을에서는 배다리가, 책방들이, 공간과 사람들이 중심인 곳이라 어떤 행사나 사건, 사고에 그리 집중한 적이 없기도 했고, 하다보니 다 하고 사는 것일 뿐이고 다만 손님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귀한 이야기 나눔을 함께 하면 좋을텐데 .. 아는 안타까움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만 10여년, 100회나 이어온 어떤 힘 같은 것이 궁금하기도 하고 배다리 역사의 하나인데 어떤식으로든 기록으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곽현숙 시다락방 대표의 인터뷰를 졸랐다. 


@아벨 전시관, 2013년 10월.

시가 주는 강렬함,
음성으로 살아움직이는 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어요

 

강. 
 아무래도 시작이 궁금했어요. 어떻게 시낭송회를 시작하게 된건지 .. 당시 마을을 관통하는 산업도로 반대 운동이 한창이었잖아요. 다양한 시민들이 함께였고, 인천작가회는 배다리에 사무실을 열기도 했는데 그런 계기로 시작셨어요?

곽.
 아녜요. 2003년 아벨전시관을 열때부터 생각하고 있었죠. 우선 전시관이 자리를 잡는게 중요해서 바로 시작하지는 못했고, 2005년 아벨전시관을 새롭게 꾸미면서 하려고 했는데 그때 마을이 없어질 수 있는 상황을 맞닥뜨려서 그 상황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죠. 

 그 와중에 틈틈히 공간을 만지다가 2007년에 아벨서점의 틀을 잡으면서 아벨에 자주 오시던 김영숙 시인과 마침 아벨 앞 건물 2층에 사진책 도서관을 열었던 최종규 선생, 그 아내 전은경씨와 적잖은 생각을 나누면서 의논을 하면서 만들었었어요. 

 아벨전시관이 그랬듯 책방으로서 단순히 물건으로서의 책이 아니라 문화운동의 일환으로서 시작했던 것 처럼 시낭송회도 내가 지역사회에 펼칠 수 있는 문화운동의 일환이었던거고, 지역운동을 하면서 힘을 받게 된 거죠. 그러면서 작가회 도움도 받게 됐구요.

 당시 아벨에 자주 오시던 어르신들 중 랑승만 시인이 계셨는데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셔서 첫 시낭송회를 하게 된거죠. 랑 시인은 올해 4월 소천하셔서 내년에는 그분 추모 시낭송회를 생각하고 있어요.





강.
  왜 '시詩', 그리고 '낭송회'였을까요?

곽. 
  10대 때 처음 시를 접하고 너무 뜨거워서 얼른 덮어버렸어요. 그것을 느끼고 즐길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20대 때 책방을 열면서 시를 다시 만날 수 있었죠. 사람의 본질에 닿을 수 있는 것을 시에서 느꼈죠.

  그리고 그저 '글'이 아닌 책 속의 글이 다시 우리의 삶과 일상 속에 걸어나와 살아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  눈을 통해 들어온 시가 마음과 생각, 감정을 움직이고, 그것이 다시 살아움직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의 목소리로 읽혀지는 시는 그 목소리가 닿는 사람들을 動하게 하고, 생기를 더하죠. 시낭송회를 하면서 저마다의 목소리를 타고 걸어나온 시는 살아 움직이면서 누군가를 살아나게 하는 게 보여요. 그렇게 목소리는 하나의 연출이죠. 

  시는 짧은 글로서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어떤 결정체로서 힘이 아주 강한 글이잖아요. 짧은 시간에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할때 그 동화력을 생각하니까 시가 좋겠더라구요. 그렇게 시작했죠. 


  "어! 시가 걸어들어오네? "

  그 시간에 함께 모여있는 사람들 속에 목소리를 통해 전해올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5회땐가 어떤 시인도 자신의 시가 그렇게 멋진줄 몰랐다며 "어! 시가 걸어들어오네!" 하며 나와 같은 말씀을 하더라구요.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공간이 모여 작은 시다락방을 아주 큰 방으로 만들어주더라구요.

 글도 살아 움직이게 하고 사람에게 생기도 주는 .. 언제나 행사 자체보다 그것에 집중했어요.  꼭 멋있는 목소리로 읽지 않아도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의 떨리는 음성으로 내는 그 자체가 더 좋게 들려요. 그 다락방에 모인 시와 목소리로 세상에 먼지를 좀 닦이낼꺼라는 생각도 해요. 그렇게 하다보니 100회가 된거네요. 또 그렇게 가는 거죠 ..


 한 사람 한 사람이 그자체로 거대한 자산이잖아요.

강.
  100회인데 계속해야하나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신 적이 있으시다고 말씀하신게 기억나요. 왜 그런 생각이 드셨는지요?

곽.
  그만두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던건 뭔가 구태의연해지는 걸 좀 경계했던 거죠. 지금 무엇을 해야된다는 생각으로 끌고가는 것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한 회 한 회 가다보면 영락없이 한 두 사람씩 따듯한 감동을 받고, 자신을 내어놓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보니 '아! 귀중한 일이구나..'라는 것으로 마음의 가닥을 잡고 왔던거죠.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작은 다락방 안에서만 느낄수 있는 그것이 끊임없이 생겨요. 그런게 있어요 ..

강.
  마지막으로 배다리, 아벨, 시낭송회를 만나는 시민이나 관심있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 이거 하나는 하며 전하고 싶다는 게 있으시다면?  

곽. 
  사람들이 사회운동, 문화운동 이런 것들을 크고 일시적으로 하는 게 있어요. 하지만 이런 작은 모임이 100회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사람, 그 자체로 거대한 자산을 가진 가슴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요. 이 사회에서 요즘 '사람이 없다 없다'고 하는데 무엇인가를 계속하게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거대한 자산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이 불씨가 되는 거죠. 
  누군가에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락방에 들어서는 걸 바라봐요. 시낭송회도 그걸 바라보며 한 회 한 회 하고 있는 거죠. 

  아, 그리고 .. 배다리 시낭송회가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게 수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어요. 그분들을 다 언급하자니 누굴 빠뜨리지 않을까 염려도 되고 .. 어쩌지?

강. 
  전에 쓰신 글 속에 분들과 지금가지 모신 시인들 목록을 담을께요. 혹 빠뜨렸어도 이해하실꺼예요.

곽.
  그럴까요?

강.
  쌤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낼지 제가 걱정인걸요. 조심스레 다듬어 담아볼께요. 혹 미흡해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셔요.

곽.
  ㅎㅎㅎㅎ 그래요 그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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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 도와주셨던 얼마전 시인으로 등단하신 김영숙 시인, 이젠 고창으로 내려가 시골살이를 하고 있는 최종규 선생, 전은경씨 , 이성진 선생과 장숙경 선생, 굽이굽이 마음 써주신 故 강태열 시인과 꾸준히 도와주신 김학균 시인, 김구연 아동문학가, 정송화 시인, 김봉선 꽃 언니, 요일가게 청산, 이종복 시인, 인천 착가회의, 인천 문협, 빈터 동인, 故 이향, 박지원, 보리 김옥선씨, 송희승씨, 사회에 가람고교 신은주 선생, 책 편집에 정현철, 그린기획, 똘이 복사, 화도진, 인천in, KBS외 여러 방송과 언론 등등 ..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해주신 시인들과 시인들의 시를 함께 읽은 다락방 손님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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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시낭송회 지금까지 모신 시인들 >

@ 배다리 아벨 시낭송회 100회의 기록
           
인터뷰를 생각했던 날이 하필 목요일이었다. 생각보다 몸힘을 쓰는 일이 많은 책방일은 두 사장님께 생각보다 큰 노고가 있었고, 사고에 병고도 당연히 있으셨다. 원래 첫째 세째 목요일에 쉬셨는데 얼마전 부터 매주 목요일은 쉬신다는 걸 까먹었다. 하는 수 없이 간간히 나눈 대화를 전제로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람을 바라본다'는 마지막 말씀이 새롭게 들렸다. 책 욕심이 많으신 아벨 곽현숙 사장님께는 이제 사람도 책이 되었다. 아니 책이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신지도 모르고 .. 사람을 담은 글, 글을 담은 책, 책을 담은 책방, 살아 움직이는 글, 책이 되어가는 사람, 이런 것들이 숨쉬는 배다리 헌책방 거리는 그렇게 시가 있는 책길이 되는 지도 모른다. 

거대한 자산을 안고 있는 당신의 발걸음이 한 번쯤 그 다락방에 들어서기를 .. 그곳에서 시를 읽는 자신의 목소리와 함께 힘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어떤 작은 모임이 계속되는 것이 변화의 움직임에 힘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각로를 간간히 지나다니는 한 시인이 말했다. 인천의 시인들이 이 시낭송회를 잘 모르고, 생각하지 못하는게 안타깝다는 말로 애정과 아쉬움을 전하셨다. 지역의 시인들이 더 많이 앍고 함께 읽기를 바란다.




해방된 말이 가장 알차고 맑게 영근 것
그것이 바로 시 이거늘
그런 해방의 시가 조선에는 아직 없습니다.

-고정희<황진이가 이옥봉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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