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회화성과 존재, 그리고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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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회화성과 존재, 그리고 그 사이
  • 양진채
  • 승인 2016.09.27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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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리뷰] 소설가 양진채가 본 사진가 류재형의 전시작

부평구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사진전 <사진의 회화성>이 9월22일부터 부평아트센터 갤러리꽃누리에서 개막돼 10월9일까지 열린다. 지난 25일 양진채 소설가가 이 사진전에류재형 사진가가 출품한 작품을 감상하고 원고를 보내왔다.슬라이드 영사기 12대를 동원, 사진의 한계를 넘어선, 아날로그의 기계음이 인상적인[슬라이딩 온 보트, Sliding on Boat]다. 연평도 앞바다의 거친 파도와 꽃게잡이 어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현장을 생생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편집자>




지선에서의 작업 - 연평도 앞바다


슬라이드가 한 장씩 철컥거리며 넘어가는 소리가 처음부터 무겁고 비린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로 들린 것은 아니었다. 류재형 작가의 사진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는 순간,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세 대의 영사기에서 돌아가는 슬라이드 소리, 한 면을 가득 채운 사진, 그리고 음악. 삼위일체의 완벽한 공간은 그 어느 것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단순한 사진전시가 아니라 설치예술이었다. 그리고 그 예술 안에는 고단한 삶이 녹아 있었다.


꽃게잡이 배의 선원들이 연평도 거친 파도 한 가운데서 그물을 끌어올리고 박스마다 게를 채우고, 얼음을 넣고, 꽃게를 넣어 끓인 라면을 먹고, 쭈그려 알몸을 씻고, 바다내음이 섞인 소주와 담배와 커피를 마시는 모습들을 180장의 사진들을 통해 슬라이드로 넘어가며 보여주고 있었다. 사진들은 25도짜리 빨간 뚜껑 소주 맛이랄까. 싸하면서도 독했다.


그렇게 쳐들린 꽃게 발처럼 처절한 삶의 몸부림이 공판장에 꽃게 상자를 넘기고 경매를 끝내는 것으로 바다와 부두가 다시 조용해지다가, 알 수 없는 균열과도 같은 사진들이 이어졌다. 색감도 균열도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시간이 깊은 바다 속으로 수장된 느낌의 사진이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슬라이드 소리가 달리 들렸을 것이다. 무거운 쇠사슬을 끌고 뜨거운 사막을 걸어가는 한 사내를 본 듯했다. 그 사내가 선원인지, 작가인지, 나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야 그 필름들이 습한 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방치되어 변질된 영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전시 제목인 <사진의 회화성>과 맞닿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사진의 회화성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뱃사람들의 고된 노동과 망망한 바다의 파도, 그 위의 삶들이 한꺼번에 용해된다면 저런 빛깔과 균열이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잠깐 동안 처절한 삶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생각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는 순간 울컥해지는 마음을 추스르느라 눈을 씀벅여야 했다.

 

풍요로운 바다_꽃게 그물의 시작점


그들의 희망, 바다

저녁 식사 후 또 다시 꽃게 그물을 걷으러 나가다

작업을 끝내고 모선에 오른 선원들


잠시의 휴식을 갖다


이 전시는 <사진의 회화성>이라는 제목으로 9월 22일부터 10월 9일까지 부평 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었다. 류재형, 송광찬, 박재형, 이동욱, 문인환 5인의 사진작가와 화가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회화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문인환 화가의 그림들은 너무나 사진 같아서, 재료를 보고서도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선명한 재현은 재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지가 드러나 갯벌의 돌들이나 거친 표면이 그대로 튀어 나올 것처럼 생생했다.


그런가하면 적외선 필터를 장착해 나무들 사진을 작업한 송광찬 작가의 사진들은 벚꽃의 화려한 인상보다 사무라이의 칼과 같은 서늘한 인상이었다. 삶에서 한 발 물러서 폐부 깊숙이 호흡하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도심의 일상적인 움직임을 시간과 공간의 미묘한 교차, 고도의 기술로 사진작업을 한 박재영 작가, <바비와 켄의 어긋난 사랑으로 표현된 인간의 잔혹한 본성>이라는 주제로 낯선 실험적 작업을 한 이동욱 작가의 사진들 역시 만만치 않은 세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세계가 전혀 다른 5인이 펼치는 <사진의 회화성> 전시는 독특한 실험 공간인 동시에 여러 편이 실린 소설을 읽고 있는, 옴니버스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로서는 뜻밖의 시간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조금 전까지 나를 따라왔던 모든 잡념을 떨쳐버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편 한 편 그림과 사진들을 마주하면 어떨까. 그렇게 전시장을 다 돌고 나면 잊고 있었던, 꼭꼭 눌러놓았던, 자신도 미처 모르던 어떤 것들이 내 속에서 나를 툭툭 건드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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