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저지대에 잠긴, 수문통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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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지대에 잠긴, 수문통 시장
  • 이설야
  • 승인 2016.09.30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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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쓴 인천(6) - 박형준의 시

  옛 수문통 시장의 흔적을 쫓아가면, 거기. 갯골에 흐르던 검은 바닷물과 생활의 하수들이 흐르다 만나는 곳. 삶의 비릿한 이야기들로 즐비한 판잣집들과 허름한 상점들이 이어진 곳. 그 사이를 지나가던 골목들이 보인다. 그 수문통 시장 앞, 검은 갯골에는 언제나 돛이 부러진 낡은 배가 있었다. 그리고 대우중공업 옆으로 늘어진 철도가 끊어진 듯 있었고, 수문통 거리의 “아이들은 정말 마술처럼 공장으로 사라져가곤 했다. 석유 냄새가 풍겨오던 질긴 청색 유니폼을 입고” 저녁이 되면 공장에서는 “파리한 얼굴들”(산문집, 『저녁의 무늬』현대문학, 2003)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복개되어 수문통 갯골을 드나들던 물길은 모두 아스팔트 아래 묻혔지만, 송현동 일대와 양키시장, 수도국산 주변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 기억의 저지대에 아직 잠겨 있다. 찰랑이던 검은 물들. 역류하던 생활의 구정물들. 

  이 수문통의 신산한 삶을 거쳐 간 시인이 있다. 젖은 다락방에서 검은 바닷물의 악취를 맡으면서 어둠에 긁힌 자국들을 받아 적다가 시인이 된 박형준. 그는 196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했다.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家具의 힘」이 당선되어 등단했고, 1994년 첫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를 출간했다. 그는 ‘소멸’을 이야기하면서 ‘소멸’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역설한다. 실존이 흔들리는 자리에서 ‘새로운 별빛’인 ‘소멸’의 빛들을 모은 ‘소멸 시집’이라 할 수 있다. 그 첫 시집 이후 네 번째 시집에 도착해서야 십 몇 년 살았던 수문통의 기억을 퍼 올린다. 장마철이면 수문통은 “바닷물이 수챗구멍으로 역류하곤 했”(「수문통」)다. 수문통 사람들은 종아리를 걷고 집안으로 들어온 바닷물을 퍼냈다.


   검은 바닷물에서 악취가 났지만
   그것은 그들의 냄새였다
                                                -「수문통」중에서
 




 “그들의 냄새”는 기억의 지층에 찍힌 얼룩으로 번지며 온다. “다락방 같은 마루를 열고/소녀들이 오줌을 누고/눈부신 엉덩이가 철철 소리내며/먼바다로 통신을 하”던 곳, 그렇게 “바닥에서 삐걱대며”, “가난의 더러운 벽에 몰아치는/겨울바람을 맞으며 늙고 죽”(「수문통」)어 가던 사람들. 그들 속에는 미싱공장에 다니던 누이와 대우중공업에 나가 쇠를 깎던 형의 삶도 함께 얼룩져 있다.

  다섯 번째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에서는 수문통 시편이 여럿 보인다. 「수문통4」에서도 바다는 여전히 역류하듯 하수구로 올라오고, “부엌에 넘실대는 바다를/바가지로 퍼올”린다. 똥바다라 불리던 곳. 가끔 똥이 떠다니기도 했던 곳. 생활의 찌든 눈물이 검게 흐르던 곳. 그 검은 물은 점차 강물의 이미지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강물에서 돌아온 아버지”(「꼬리조팝나무」)가 되기도 하고, 저녁의 희디흰 손가락들이 연주하는 강물이 되어 생활의 단칸방 속으로 범람하기도 한다. 시인이 강물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연주한, 이 세계는 저음의 음계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사물들로 가득하다. 그리하여 시인은 “새벽 창에 강물이 언어로 속삭”(「강물이 언어로 속삭인다」)이는 소리를 시로 옮긴다.

  그에게 “기억이란 끔찍한 물질”(「묘비명」)이다. 그러나 기억은 힘이 아주 세다. 그 ‘끔찍한 물질’인 기억은 그에게 오래전 늙은 비애를 가르쳐주었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구의 힘」)를 끌고 다니며 비애를 노래한다. 그 비애는 소멸을 낳는다. 소멸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로 압축한 시간대이기도 하다. 그 소멸의 빛으로 자신의 내부를 환하게 비추는 시인은 “자신의 고독으로 세계를 창조”한다. 그리하여 “봄은 의지로 온다.”(「황제펭귄」)라는 표현을 얻는다. 이 신산한 계절에 수문통 거리에 살았던 “그들의 냄새”를 맡으러, “재봉 일을 하고 돌아온 누이의 실밥 같은/지친 가슴을 더듬다가/부엌에서 꾸루룩거리는 바닷소리”(「수문통 4」)를 들으러 기억의 저지대로 가만히 내려가 보자. 





수문통4
박형준
 
 
바다가 하수구로 올라온다
꽃밥처럼, 바다는 아침에
부엌에서 연탄을 가는 아이의 눈에서 타오른다
하수구에서 솟구치는 불,
밤새 몸살을 앓다가
재봉 일을 하고 돌아온 누이의 실밥 같은
지친 가슴을 더듬다가
부엌에서 꾸루룩거리는 바닷소리를 듣는다
 
눈을 뜨면 누이는 부엌에 넘실대는 바다를
바가지로 퍼 올리고 있고,
나는 그 곁에서 젖은 연탄을 간다
눈에서 연기가 가시지 않았지만
누이와 나는 늘 피식거리며
다시 타오르는 연탄불, 그 아궁이의 불꽃 위에서
밥을 지어 먹고 아침을 맞는다
 
그사이 바다는 꾸루룩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시 멀리 사라진다
그런 날엔 아침의 연탄불을 바라본다
다 타버린 불꽃이
하수구의 먼바다를 향해 떠나가는
환상, 나는 누이의 가슴에 머리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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