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 침목에 남기는 발자국의 소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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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침목에 남기는 발자국의 소리뿐'
  • 양진채
  • 승인 2016.10.21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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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후명의 <협궤열차>

<인천in>이 소설가 양진채의 <소설로 읽는 인천>을 이달부터 매달 연재합니다. 인천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중심으로, 소설 속에서 인천의 곳곳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고, 각 작가가 가지고 있는 소설 미학을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 소개하는 기획물로, 지역과 문학을 접목시켜 소설을 읽는 새로운 묘미를 제공합니다.
양진채 소설가는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나스카 라인>으로 등단했습니다. 소설집 <푸른 유리 심장>이 있고,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작가창작기금을 받았으며, 제2회 스마트소설 박인성 문학상 수상했습니다. 곧 장편소설 <변사 기담>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현재 계간 <학산문학> 편집주간을 맡고 있습니다.

 


소래철교(최용백, 2014년 철도박물관 초대사진전 팜플릿 표지에서)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아직 협궤열차가 달리던 시절에 나는 1년 정도 옥련동에 살았다. 그때 나는 여고1학년 학생이었다. 우리 집은 몇 년 전 아버지의 실직으로 주안에서 용현동으로, 다시 옥련동으로 집 평수를 줄여가며 남의 집에 세들어 사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나는 주인집 새댁과 철길을 따라 송도역 근처 시장에 갔다. 학생이었으니 협궤열차가 운행될 시간에는 늘 학교에 있었을 터였다. 아주 좁은 철길이었고 그 철길을 걸어 시장까지 가서 몇 가지 푸성귀를 사는 새댁 곁을 따라다니다 집으로 왔다. 그게 철길에 대한 내 기억의 전부였다. 나는 집 뒤의 철길보다 집 앞 길을 건너 조금만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바닷가를 더 자주 갔다. 겨울이면 그 작은 해안선을 따라 작은 물고기들이 얼어 죽어 있기도 했다. 은비늘이 반짝이는 아주 작고 싱싱한 것들이었다.
나중에야 그때 내가 걸었던, 기억에도 아슴한 그 철길이 협궤열차가 다니던 길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던 끝에 만났던 송도역을, 협궤열차를 배경으로 누구보다 아름다운 소설을 쓴 한 작가를 만났다. 윤후명 소설가이다.


언제나 뒤뚱거리는 꼬마열차의 크기는 보통 기차의 반쯤 된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며 앉게 되어 있는데, 상대편 사람과 사람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수원과 인천(송도)를 오가는 수인선 협궤열차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고도 한다.
“그거 트럭하고 부딪쳐도 넘어지겠군.”
누군가 말한다. 실제로 그런 일도 있는 조그만 열차.



소설 <협궤열차>에 나오는 협궤열차에 대한 묘사이다. 송도와 수원을 오갔던 아주 작은 열차. 얼마나 작으면 마주 앉은 상대방의 숨소리가 들리고, 트럭하고 부딪쳐도 넘어질 정도였을까.





당시 윤후명 소설가는 안산시의 작은 예술인 아파트에 살면서 1992년부터 협궤열차에 대한 장편소설로 출간했다. 수인선을 중심으로 한 외로운 풍경을 좋아한 작가는, ‘수인선 협궤열차는 일종의 문학적 모태이며 아름다운 환상‘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인터뷰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는 실제로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풍경을 싫어합니다. 황량한 들판, 안산의 경우엔 황량한 갯벌을 좋아해요. 이런 것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코자 하는 게 저의 미학이지요. 그러니 헤맬 수밖에요. 완결적인 풍경보다, 폐허화된, 소멸된, 혹은 무너진 풍경들을 보면 좋기 때문에 늘 찾아 헤매는 것이지요. 폐허화된, 소멸된 풍경을 보면서 그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체취나 모습을 재현해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저는 쓸쓸한 것, 버려진 것에서 말할 수 없는 비애와 위안을 느낍니다.’

이러한 작가의 감성은 소설 곳곳에서 나타난다. 소설은 그 열차를 타고 오는 아이, 타고 떠나려는 여인, 송도역, 폐역, 안산의 갯벌, 소래포구 등 협궤열차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살아가는 적나라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소위 스토리 중심의 소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작가는 장편소설에서도 작가와 동일 시 되는 주인공의 일상과도 같은 삶속에 폐허와도 같은 짙은 그리움과 외로움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스레 반추해보고 있었던 것도 같다. 소멸이라는 말도 사라진 경적소리처럼 귀에 울렸다. 그리고 일부러 침목을 밟고 집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택했을 때는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단순히 썩어 문드러지고 마는 것일까.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철로 침목에 남기는 발자국의 소리뿐인 것이다. 그와 함께 어둡고 머나먼 땅, 아무도 나를 아는 이 없는 외로운 땅에 홀로 던져졌다는 생각에 나는 몸을 떤다.



1946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윤후명 소설가는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1979년 한국일보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해오는 동안 그의 문학은 줄곧 삶과 사랑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 바쳐져 왔다. 장편소설 <협궤열차>는 1992년 <도서출판 창>에서 발행되었다가 다시 2014년 <책만드는집>에서 재출간 되었고, 최근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작가의 전집 중 제 3권으로 엮어 나왔다.

작가의 외로운 삶과 함께 했던 협궤열차는 1994년 사라졌다. 몇 년 전, 그때와 같은 길은 아니지만 송도에서 오이도까지 운행하는 수인선이 생겼고, 얼마 전 인천역에서 신포역, 숭의역, 인하대역과 송도역을 이어 연장한 수인선이 개통되었다. 또한 소래포구 근처에는 소래역사관이 있고 그 앞에는 협궤열차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역사관에서는 당시의 풍경과 사진도 찍고, 재현해 놓은 협궤열차에 앉아볼 수 도 있다고 한다.
‘사라져간 것’과 ‘재현’ 사이의 간극을 어쩔 수야 없겠지만 아쉬운 대로 소래포구의 비린 바다냄새를 맡으면 쓸쓸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그때, 그 침목을 밟으며 송도시장까지 걸어가던 소녀의 아슴하게 밀려오던 알 수 없는 서글픔 같은 것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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