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성 끝에, 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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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성 끝에, 파리로!
  • 서진완
  • 승인 2016.11.08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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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파리에서의 아찔한 순간, 소매치기!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퓌센 ⓒ 서진완

동화의 성을 끝으로... 


날씨는 흐렸지만, 퓌센의 공기는 무척이나 맑았다. ⓒ 서진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퓌센(Füssen)까지 가는 길은 빨리 갈 수 있는 고속도로 보다는 아우구스부르크(Augsburg)에서 연결되는 로맨틱가도를 택했다.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시작된 국도를 타면 고성과 숲, 그리고 그림 같은 들판이 이어지는 예쁜 길을 볼 수 있다. 원래는 로마인들이 이 길을 따라 남북을 왕래한데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로맨틱한 길이였다. 멀리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성이 보였다. 이곳은 독일 일정의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이다. 

퓌센에서 아침을 맞았다. 새소리가 나는 소리에 창을 열어보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리고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공기는 너무나 맑다. 가족 모두가 건강하게 아무 탈 없이 다닐 수 있어야하기 때문에 매일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긴장이 약간이라도 풀리는 날은 어김없이 정신없이 곯아떨어지곤 했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코를 골며 잠에 빠져있다. 작은아이는 꿈속에서 멋진 왕자를 만나 지금까지 함께 있는지는 가끔 미소를 짓고 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은 바바리아(Bavaria)의 루드비히(Ludwig) 2세가 자신의 왕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결국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한 것으로 바그너의 오페라 내용을 모티브로 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디즈니랜드에 있는 성과 디즈니의 만화 'Sleeping Beauty'(우리에겐 ‘잠자는 숲 속의 공주’로 더 익숙하지만)의 성이 바로 이곳을 보고 만들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은 아이는 독일에 오면 가장 보고 싶은 곳으로 손꼽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일을 떠나기 전 마지막 일정으로 여유 있게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이곳에 있는 두개의 성 모두 가이드를 동반한 관람만이 허용되고, 시간별로 제한된 인원만이 입장할 수 있다. 호헨슈방가우(Hohenschwangau)성은 바바리아의 왕들이 여름에 잠시 거처하는 여름별장으로 사용했다고 했는데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규모는 작았다. 여름에 피서를 위해 왕의 가족들이 이곳에서 사용한 침실과 책 읽는 공간, 그리고 글 쓰는 공간 등을 설명을 들으면서 둘러보았다. 가족들만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특별한 손님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방 한 칸을 마련해 두었다. 이곳 방에 서 있는 순간 바로 눈앞에 바그너가 앉아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창 너머 동화 속에 나온 바로 그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 노이슈반슈타인성이 보인다. 동화 속에 등장하는 백조와 이름만 들었던 바그너를 이곳에서 정말 만난다. 백조는 중세의 기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곳곳에 백조를 조각한 상들과 문고리까지 백조 형상으로 되어있다. 또한 방의 벽화는 바그너와의 특별한 관계를 반영한 듯 그의 음악, 특히 로엔그린,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대표적인 오페라의 주요 내용을 표현해 두고 있다. 



작은 호수와 함께 윌리암 텔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 루체른 ⓒ 서진완

파리로 돌아가는 길에 루체른을 들러야 했다. 윌리암 텔(Wilhelm Tell)이 자신의 아들 머리에 사과를 놓고 활을 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 작지만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있는 곳이 바로 루체른이다. 지난번 비가 내리는 이곳에서 목조다리로 유명한 카펠교만 보고 알프스의 웅장한 산들이 둘러싼 이 도시를 보지 못하고 떠났었는데, 유럽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들렀다. 

루체른에 도착하자 필라투스(Pilatus) 정상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필라투스 정상까지 갈 수 있는 케이블카에 올랐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루체른 시내와 호수는 다시 봐도 멋졌다. 점점 정상으로 오를수록 구름이 걷히면서 맑게 갠 하늘과 알프스의 만년설이 눈앞에 펼쳐졌다. “와~” 군데군데 만년설이 아직도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아이들은 눈을 뭉쳐 서로 던지기도 했다. 앞쪽으로는 루체른 시내와 호수가 보이고, 뒤로는 알프스산맥이 하얀 눈을 덮어쓴 채로 펼쳐져있다. 아이들과 정상에서 트레킹을 하면서 눈 덮인 알프스의 멋진 풍경을 꼭꼭 담았다. “아쉽다~” 아내는 또 아쉬워했다. “그래도 지난번에 못 봤는데, 오늘 알프스를 봤잖아요!” 

친구가 있는 트완(Twann)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홀가분했다. 저녁 약속시간에 맞추어 정확하게 도착했다. 친구는 우리를 집 앞 호수 근처로 안내했다. 지난번 큰아이와 함께 낚시를 하지 못했다는 친구는 미리 낚싯대는 물론 바베큐 파티를 할 수 있게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다. 어른들이 불을 피우는 사이에 아이들은 낚시를 했다. 해가 질 때까지 와인과 준비한 고기로 잊지 못할 시간을 가졌다.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해가 지고 모두들 짐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큰아이는 아저씨로부터 모자와 스위스나이프까지 선물로 받았다. 스위스는 이래저래 아이들의 기억 속에 좋은 곳으로 남을 것 같다.  

아침에 정신없이 자고 일어났다. 신선한 빵으로 친구가 끓인 진한 커피와 함께 아침을 함께 했다. 그리고 친구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이곳까지 와서 처음 만나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는 또 만날 수가 있어서 좋았는데, 이번에는 한동안 보지 못할 것 같아서 많이 아쉬웠다. 편안하게 대해준 친구부부를 뒤로하고 트완을 떠났다. 스위스도 이제 안녕이다. 제네바(Geneva)에 잠시 들러 아이들에게 유엔 산하 국제기구가 모여 있는 거리를 보여주고, 호수 주변으로 펼쳐진 멋진 광경을 뒤로 하고 프랑스 방향으로 향했다. 
 


트완에서 친구와 함께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 프랑스로 향한다. ⓒ 서진완


수고하셨습니다! 

프랑스 국경을 넘었다. 이제 완전히 유럽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프랑스로 들어왔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피해서 국도를 달렸다. 프랑스에서 차를 빌려 여행을 계획한다면 반드시 국도를 따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도로에서 만나는 조그만 마을, 예쁜 집들과 고풍스런 교회, 그리고 작고 큰 성들이 국도 주변에 펼쳐져 있어 운전하는 것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프랑스의 넓은 들판과 푸른 산들은 피곤한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풍텐블로 ⓒ 서진완
 
오세르(Auxerre) 근처 숙소를 떠나 국도를 따라 밀레와 루소가 즐겨 찾았다는 바르비종(Barbizon) 마을을 보러 퐁텐블로(Fontainbleau)를 찾았다. 나폴레옹이 유배지로 떠나기 직전에 머물렀다는 퐁텐블로성을 잠시 보고, 밀레의 생가와 미술관 그리고 옆에 함께 있는 루소의 작업실도 보았다. 눈앞에 보이는 저 들판 어느 곳을 밀레가 보았을텐데... 그리고 여기 어딘가에서 이삭을 주웠겠지!

파리에 가까워지면서 자동차들이 많아졌다. 개선문 근처에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도착해서 아파트 열쇠를 받았다. 그리고 단기예약한 아파트가 있는 10지구로 향했다. 시내는 차량들로 붐벼서 좀처럼 갈 수가 없었다. 버스와 차들이 엉켜있는 이곳에서는 질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짧은 거리에 많은 신호등, 꼬리 물기 등으로 시간이 많이 걸려, 겨우 예약해둔 아파트 앞에 차를 세우고, 배낭을 내렸다. 
 


파리에서 잠시 머물렀던 아파트 ⓒ 서진완

아파트 열쇠를 큰아이에게 주고, 짐정리를 부탁했다. 그동안 아내는 저녁을 준비하겠다고 해서 나는 작은아이를 데리고 파리 제16지구에 있는 르노지점에 차를 반납하러 떠났다. 파리에 들어올 때 이미 주유등에 경고표시가 들어와 운전하는 내내 마음을 조렸지만, 무사히 약속시간에 차를 반납했다. 7층에 위치한 아파트 문을 두드리자 큰아이가 땀을 흘리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조금 전까지 배낭을 옮겼다고 했다. 아파트 열쇠가 다르고 문을 여는 방식도 달라 그사이에 큰아이는 주변 사람에게 핸드폰을 빌려,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전화하고, 사방팔방 도움을 청한 후에 겨우 문을 열고 들어왔다고 했다. 큰아이가 이 상황에서 문제를 잘 해결한 셈이다. 

저녁에는 조촐하게 파티를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동안 운전하느라고 수고한 나를 위해 박수를 쳐주었다. 그동안 식사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아내를 위해, 다음은 차안을 정리하고 아빠를 도와 준 큰아이와 작은아이를 위해 돌아가며 한 마디씩 칭찬을 하고, 서로 박수를 쳤다. “수고했습니다!”


앗! 소매치기!

아침에 창을 열자 거실 안까지 햇살이 환하게 들어왔다. 7층에서 내려다 본 파리 시내의 모습은 밝다. 거리에 차들이 분주하게 다니고 햇살 덕분에 우리 가족만을 위한 이곳 공간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파트 공간은 크지 않지만 이미 모든 설비가 갖춰져 있어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메트로 2, 5, 7호선이 다니는 지하철역이 바로 길 아래 있고 슈퍼마켓도 주변에 3곳이나 있어서 우리에게는 최적의 장소이다.
 


우리 가족에게 아찔한 기억을 남긴 파리! ⓒ 서진완

파리 구경을 나선 첫날 책에서만 듣던 소매치기를 당할 뻔 했다. 홀가분하게 가벼운 차림으로 스탈린그라드(Stalingrad)역에서 지하철패스를 구입하고 지하철을 기다렸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열차에 오르자, 한 녀석이 열쇠를 바닥에 떨어뜨려 내 신발과 발을 만졌다.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열차 문 뒤에서 또 다른 녀석이 내 주머니에 있었던 지갑을 꺼내는 것이었다. “아빠!” 아이들이 고함을 쳤다. 순간 느낌이 있어서 녀석의 티셔츠 앞부분을 손으로 잡았는데, 당황한 나머지 지갑을 놓치고 달아났다. 허리띠에 체인으로 연결된 안전지갑이었기에,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지만 놓치고 만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지하철에서 내렸다. 큰아이는 그 중 한명을 쫒아갔지만 더 이상이 쫒지 못하게 했다. 순간적이었다. 안전지갑이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당할 뻔 했다. 지하철내 사람들도 쳐다보기만 할 뿐 어느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작은아이는 울고, 큰아이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아내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녀석들과 다투는 사이에 카메라 렌즈캡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제외하고는 지갑 내의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천만다행이었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이후 열차 내에서도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파리에서의 생활도 벌써 4일째가 되었다. 7층에 있는 우리의 보금자리는 넓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이 머무르기에는 충분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파리를 느껴보기에 적당하다. 아내는 어제 나와 큰아이의 머리를 다듬어주었고 오늘은 유진이의 머리를 다듬었다. 필요한 빨래도 다 했다. 밖에 바람이 불어도, 그리고 비가와도 가족 모두가 함께 머무르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을 열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되었다. 테라스마다 예쁜 화분들이 보인다. 갑자기 어두워지고 비가 내리기도 했다. 그러면 테라스에 둔 운동화를 급히 거실로 들여놓느라 요란스럽기도 한다. “부침개 드실래요?” 테라스 창을 닫는 순간 들렸다. 하늘은 더욱 어두워지면서 천둥과 번개가 함께 소나기가 쏟아졌다. 아내는 정말 빠르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김치부침개인가! 비오는 날에 맞추어 이런 것을 만들다니! 먼 하늘에 구름은 여전히 검게 머물러 있지만 아파트 주변에서 점차 비가 그치면서 개이기 시작했다. “나가자!” 아내가 재촉했다. 모두들 따뜻하게 옷을 입었다. 아파트를 나서자 따뜻한 햇살이 다시 비쳤다. 

내일 아침에 파리를 떠나야하기 때문에 오늘은 작은아이가 원하는 곳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동선을 결정했다. 아이는 퀴리부인(Marie Curie)을 가장 좋아하는 과학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유럽에 가면 퀴리박물관을 꼭 가고 싶어 했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녀의 생가가 있는 폴란드 바르샤바를 우리들의 여행일정에 넣어주었으면 했는데, 너무 먼 거리에 있는 바르샤바 대신 파리에 있는 퀴리박물관을 찾아 가기로 한 것이다. 소르본느 대학 역시 퀴리부인이 공부했던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작은아이가 가보고 싶은 곳으로 정했다. 물론 학생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것도 알려주었지만 작은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파리 소르본느 대학(위)과, 파리 퀴리 박물관(아래) ⓒ 서진완

작은아이가 앞장서서 소르본느 대학 근처로 갔다. 지하철역 이름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주소를 정확하게 알고오지는 못하는 바람에 힘들게 퀴리박물관을 찾았다. 퀴리거리에 있는 박물관은 소박했다. 그런데 휴관이라는 안내문에 작은아이는 크게 실망했다. 인터넷에서 이곳을 다녀간 사람이 일요일과 월요일만 휴관이라고 해서 오늘 이곳을 찾았는데 낭패였다. 실망한 작은아이는 한쪽 구석으로 가서 속상해서 울기 시작했다. 나는 힘들게 이곳까지 왔는데 이대로 가기에는 너무나 아쉬워 직원들이 있는 사무실을 찾아 퀴리부인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내일 이곳을 떠난다며 작은아이의 마음을 설명했다. 아이를 쳐다본 직원은 다른 사람과 잠시 논의하더니 작은아이를 안으로 들어오게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도 들어오라고 했다. 아무도 없는 박물관 내부를 잠시 동안 볼 수 있게 허락해준 것이다. 너무나 고마웠다. 아내는 작은아이의 표정을 보라고 했다.  

퀴리부인이 사용하던 공부방, 실험실, 그리고 실험기자재 등을 둘러보았다. 직접 그녀가 사용한 흔적을 보고 느끼며 만져본 작은아이는 너무나 행복해했다. 박물관을 나서면서 뛸 듯이 좋아하는 아이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길 앞에 나서자 뜨거워진 햇살에 비친 판테온 건물이 보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퀴리부인이 그곳 지하에 잠자고 있다고 얘기해주었다. 작은아이가 무덤을 보고 올 때까지 아내와 나는 판테온 앞 계단에 앉았다. 햇살이 너무 좋다.  

테라스 창을 열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이제 배낭을 다시 싸는 일만 남았다. 내일 아침 일찍 이곳을 떠난다. 런던을 떠나 이곳 파리에 도착한 이후 유럽전역을 잘 다녔고, 이 아파트에서 재미있게 지냈다. 음식도 마음대로 해 먹고, 다리가 아플 만큼 많이 걸었다. 아내와 둘이서 이곳을 다녔을 때와는 달리 아이들과 함께 걸었던 파리는 더 좋았다.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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