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바다 위로 삶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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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이는 바다 위로 삶은 지속된다
  • 양진채
  • 승인 2016.11.18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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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원규의 <포구의 황혼>

나는 회를 사러 소래포구에 자주 간다. 우리 집에 회를 기막히게 잘 먹는 딸이 있기 때문이다. 딸은 주기적으로 회를 찾았는데 횟집에 가서 먹기에는 비용지출이 너무 커서 소래포구 단골횟집에 가서 회를 떠온다. 차가 없어도 인천지하철을 타고 원인재역으로 가서 수인선으로 갈아타면 소래포구역까지 가니 회를 떠오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회를 사러 갈 때는 돈을 조금 넉넉히 챙겨야 한다. 그때그때 욕심나는 건어물이나 생선, 꽃게, 새우, 어패류 등이 발목을 잡고 안 놓아주기 때문이다. 소래포구에서 나는 손님이자, 소비자이다. 바쁠 때는 포구의 전경에 눈길을 줄 새도 없이 회만 사들고 오기도 하는 객(客)일 뿐이다.
그러나 소래포구에는 지난한 삶을 살고 있는 생산자이자 주인들이 많다.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하는 배의 선원들, 어시장의 상인들이 그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생생한 삶을 다룬 소설 <포구의 황혼> 역시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천 출신의 이원규 소설가는 인천과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여러 편 남겼다. 그중에서도 1987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포구의 황혼>은 소래포구와 바다를 중심으로 분단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인천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꼽을 때 빠질 수 없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북에 가족을 두고 내려온 아버지가 남쪽에서 다시 가족을 꾸렸지만 북의 가족을 잊지 못함으로 인해 벌어지는 가슴 아픈 가족사를 아들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먼저 이 소설에서 묘사한 소래포구 전경을 보자.
 
경인산업도로로 이어지는 관통도로가 뚫리자, 소래포구의 종점 거리에는 수십 개의 횟집들이 들어섰다. 주말은 물론 평일 저녁에도 자가용을 가진 도회 사람들이 싱싱한 생선회를 먹으로 찾아왔다. 김장철에는 물 좋은 새우를 사려고 사람들이 몰려와 경쟁을 벌였다.

 
30년 전 소래포구 모습이다. 한 장면 더 보자.
 
내리막길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덜커덩덜커덩 굉음이 울렸다. 협궤열차가 인천 쪽으로부터 달려오고 있었다. 열차는 눈을 부릅뜨듯이 환하게 전조등 빛을 앞세우고 내 눈앞을 지나서 포구의 어둠과 적막을 헤치고 철교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는 꿍다당뚱다당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파묻히듯이 다리 저쪽으로 사라져갔다. 이십오 년 전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처음 소래포구에 올 때 저 협궤열차를 타고 온 기억이 선명한 그림같이 환하게 떠올랐다. 그 시절에는 칙칙폭폭 흰 연기를 피워올리며 달리는 증기기관차였다. 그때 이곳은 염전이었고 종점 거리는 시꺼멓게 콜타르를 바른 통나무 소금창고가 군데군데 엎드려 있는 쓸쓸한 불모의 벌판이었다.


협궤열차를 중심으로 1987년 즈음과 1960년대의 소래포구가 어떠했는지 잘 드러나고 있다. 협궤열차는 증기기관차에서 열차로, 지금은 전철로 바뀌었다. 또한 ‘쓸쓸한 불모의 벌판’이었던 포구 주변의 논현동은 아파트와 빌딩 숲을 이루고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는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이 소설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치밀한 취재에 있다.
 
해안 경비 초소로부터 녹색 신호탄이 솟아올라 어두운 하늘에서 유성처럼 길게 꼬리를 끌면서 꺼졌다. 이어서 어선 통제소에서 렌턴을 둥그렇게 휘둘러 신호를 보내왔다. 수십 척의 어선들이 일제히 기관소리를 높였다. 그리고는 동시에 포구 밖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개의 탐조등이 배를 훑듯이 비추며 지나갔다. 하나는 능선 위 초소를 내리비추고, 하나는 수평선과 같은 각도에서 올려비추어 다른 어선들의 모습이 희뜩희뜩 드러났다. 나는 배의 속력을 높이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소래포구 전체가 마치 격전장으로 나가는 공격 전단의 출동 때처럼 요란한 기관 소리에 놀라 깨어나고 있었다.


새벽, 포구에서 배가 출항하는 장면을 이처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린 작품을 보지 못했다.
위의 인용단락 외에도 ‘그 해역에서는 헌 타이어, 나뭇조각, 용성표 맥주의 빈병 같은 북쪽 물건이 건져 올려지는 일이 더러 있었다.’, ‘광진호는 185마력짜리 고속버스 엔진을 단 배였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30노트 이상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출항 두 시간 만에 팔미도 등대를 우회하여 북서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그리고 곧 수상 검문소에 이르렀다.’, ‘“나는 안다. 삼월 달 해류는 틀님업시 북으로 간다. 여기 던지믄 연백으루 간다.”’ 등의 문장 등에서 작가가 한 편의 단편소설을 쓰기 위해 들인 공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좋은 소설은 이렇게 탄생한다.

이 소설의 백미는 이런 치밀한 자료수집과 취재에 더한 작가의 상상력이다. 이 소설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북의 가족을 잊지 못하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로 인해 피폐한 삶을 살았던 아들이 중심축이다. 아버지는 마지막 소원으로 조업 나가는 아들 배를 타게 되는데 북쪽 저지선 해상 부근에서 조업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아들 배에서 몰래 가져온 음료수 병을 바다에 던진다. 그 병에는 북의 가족에게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오랜 경험으로 3월의 해류가 북으로 가는 걸 알고, 생의 마지막에 북의 가족들에게 편지를 띄운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수첩을 낚아채서 바다 위로 던져버렸다.
“이거나 북으로 보내세요. 내 배에선 못 해요. 아버지 땜에 또 망할 순 없다구요.”
나는 아직 손에 들고 있던 회칼을 움켜쥐고 웅크려 앉으면서 상자 안에 든 것들을 힘껏 내리찍기 시작했다. 우우 하는 아버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뜻을 알 수 없는, 짐승의 울음 같은 신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리고 이어서 아주 거센 숨소리에 섞여 들리는 “용규야!” 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탁한 음성을 나는 두 귀로 분명하게 들었다. 15년 만에 듣는 아버지의 말소리였다. 나는 칼 잡은 손을 치켜든 채 움직이지 못했다. 숨마저 쉬지 못하고 잠시 동안 그렇게 앉아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허옇게 센, 주름이 가득하고 개펄처럼 꺼멓고 거친, 눈물로 범벅된 아버지의 얼굴이 내 앞에서 흔들렸다.

“그……때……그그……애들을……마마……만……났다. 거……거기서……배배……를……타고……사사살……살구……있었……다.”
나는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서 있었다.
아버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얼굴 전체를 움직여서 다시 말했다.
“용……용규……야, ……마……마마……마지막……소……소소소……원이다.”
그 말들은 여러 개의 화살처럼 하나하나 내 가슴에 깊숙이 들이 박혔다. 아뜩아뜩 현기증이 나고 뜨거운 바람 같은 것이 내 몸을 휩싸고 돌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큰 덩어리 같은 것이 치밀어 오르더니 왈칵 뜨거운 눈물이 되어 솟아 나왔다.


 
평생 북의 가족을 잊지 못하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왔지만, 북의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려는 아버지의 절절한 소원을 끝내 외면 못하는 아들. 이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야말로 남과 북이 어떻게 하나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화해 장면은 언제 읽어도 가슴 뭉클하다. 남과 북이 하나 되는 길은 화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최대한 북쪽으로 다가가 편지가 든 병을 던진다.
 
나는 적당한 해역까지 가서 서쪽으로 선회하여 달리면서 정확히 이 분마다 한 개씩 병을 바다 위로 던졌다. 그것들 중 하나가 북쪽 형들 손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던졌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뜨거운 피가 내 몸속에 흘렀다.


인천은 개항기부터 각 시도의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 몰려든 곳이다. 6·25전쟁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인천은 각 시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터전을 이루고 살고 있다. 그러니 인천만큼 이산의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도 드물 것이다. 그러기에 소래포구와 황해바다를 중심으로 이산과 분단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이야말로 다른 어떤 지역도 아닌, 꼭 인천이 배경인 소설이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또 며칠 내로 소래포구로 회를 사러 가야 한다. 딸의 회를 먹고 싶은 주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회를 좋아하는 딸을 핑계 삼아 포구에 닻을 내린 배들과 갯벌과 들고 나는 바닷물과 상인들이 불러대는 소리를 들으며 삶이 지속되고 있음을,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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