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Washington,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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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Washington, D.C.!
  • 서진완
  • 승인 2016.12.0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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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미국의 수도 워싱턴! 그리고 보스턴에서 만난 옛 친구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Welcome to Washington, D.C., our nation's capital!"


워싱턴 국회의사당 전경 ⓒ 서진완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인 만큼 볼 것들이 많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해 움직이기로 했다. 어떤 것을 먼저 볼 것인지는 전적으로 아이들의 의견에 맡겼다. 숙소에서 나서려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럴수가! 강을 건너자 비가 더 많이 내렸다. 이곳의 전체적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를 보여주고 차를 타고 가면서 미국의 초기 역사를 설명해주며 각각 중요한 랜드 마크들이 갖는 의미를 알려주었다. 우리가 보게 될 수도의 이름과 기념관들은 미국 건국을 기초한 인물들과 관련이 있으며, 이들이 각각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길지 않은 미국 역사라고 하지만 건국초기에 현재 미국의 기초가 된 삼권분립과 독립적인 각 주의 위상, 그리고 법 앞에서의 평등 등에 대한 개념들을 설명했다. 사회과학에 관심이 있는 큰아이는 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지만, 작은아이는 거의 관심이 없다. 


링컨 기념관 앞, 킹 목사가 연설을 했던 곳 ⓒ 서진완
 

아이들은 궂은 날씨 때문에 시야가 흐려서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우산을 들고 바지를 걷고 걸었다. 링컨기념관은 아테네의 판테온을 연상하게 하는 웅장한 규모로 계단에 올라서 내부로 들어갔다. 큰 의자에 앉아있는 링컨을 보고, 그가 바라보는 워싱턴 기념탑과 뒤로 국회의사당을 우리도 함께 바라다보았다. 계단 아래로 내려와서 킹 목사가 그 유명한 "I Have A Dream..“을 연설했던 그 장소에서 모두 서 보았다. 1963년 8월 28일에 링컨기념관(Lincoln Memorial) 앞에서 진행됐던 연설의 현장에 마치 서 있는 듯 했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념관에서 나오면 한국전쟁기념관이 바로 근처에 있다. 병사들이 숲속을 순찰하는 모습을 담은 이곳에서는 한국전에 참전한 국가들을 표시하면서 그들의 헌신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한글도 눈에 띄었다.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많은 희생자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도 이곳에서는 다소 숙연해 질 수 밖에 없다. 공원길을 따라 걸으면 나타나는 킹 목사 기념관에서는 그가 서 있는 동상을 보며 위대한 용기가 느껴졌으며, 이어서 찾은 루즈벨트 기념관에서는 아담한 의자에 앉아 강아지와 함께 있는 그의 모습에서 다정함이 느껴진다. 모든 기념관들이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모양의 동상과 기념비 등, 나름대로 그 인물의 역사적 배경과 업적을 잘 보여주도록 꾸며져 있다. 다시 차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호수 건너 제퍼슨 기념관을 찾았다. 미국에서 훌륭한 대통령으로 항상 꼽히는 인물로서 박학다식했던 그는 자기의 묘비에 ‘미국독립선언서의 저자, 버지니아 종교 자유 보장법의 저자 그리고 버지니아 대학의 창립자’라고 쓰도록 했다. 



가족 모두가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던, 한국전쟁 기념관 ⓒ 서진완
 

비가 잦아들어 산책삼아 걷기에 좋았다.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 행사 때문에 워싱턴 기념탑 앞은 도로를 막아 공사 중이었고, 주변에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주변에도 경찰들의 경비가 눈에 보일 정도로 많았다. "꼭 다시 와야겠어요!" 날씨가 좋지 않았고 여기저기 출입을 통제한 곳이 많아서 제대로 구경을 못했음에도 아이들은 좋았다고 한다. 내일은 오늘 보다 더 경계가 삼엄해진다고 해서 발길을 옮겼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에게 워싱턴 D.C.의 전체 그림만이라도 보여주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여기에요? 

델라웨어주의 뉴악(Newark)에 도착했다. 이곳은 델라웨어대학교(University of Delaware)가 있는 곳이다. 아이들은 내가 어디서 공부했는지 무척 궁금해 했기에, 꼭 가고 싶다고 한 곳이다. 대학도시인 이곳 시내에 들어와서 학교 주변을 보고 내가 공부한 건물과 도서관 등 캠퍼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의 스승 Boyer교수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다. 

학창시절에 자주 왔었지만, 가물가물한 기억 때문에 한참을 헤매다 겨우 찾았다. 전화를 미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사만 하고 나오려고 했는데, 너무나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그리고 저녁까지 함께 했다. 훌쩍 커버린 우리 아이들을 보고 놀라워하면서 이번 여행이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덕담도 해 주셨다. 20대말 처음으로 외국에 왔던 나의 경험을 생각하면, 이번 여행은 아이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상당한 지식이 있는 Boyer교수는 가족이 함께 여행을 택한 우리들의 결정을 전적으로 환영했다. 그리고 한국인답지 않게 아이들에게 공부에 대한 압력을 주지 않는 부모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부인인 Nancy는 우리들의 여행에 관해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았다. 일찍 떠나려고 했지만 대화가 점점 길어졌다. 더 이상 머물렀다가는 언제 떠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얘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참으로 다정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다음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캠퍼스를 찾았다. 내가 공부했던 건물과 도서관, 그리고 걸어 다녔던 잔디밭길 등을 아이들과 함께 섰다. 혼자서 유학했던 나의 과거와 이렇게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함께 서 있는 현재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이 되었다. 아내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독립기념일을 전후로...

필라델피아(Philadelphia)는 미국의 역사를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유학시절 자주 들렀던 곳이었지만, 그동안 세월이 많이 변해서 기억이 제대로 날지 걱정하면서 고속도로를 따라 공항을 지나 시내로 들어갔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시내는 변함이 없었다. 부두를 따라 역사지구로 들어갔다. 미국독립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이곳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건국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살아있는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여기저기 내일 독립기념일 행사 준비로 행사장을 만들고 음향시설을 설치하느라 분주했다. 


필라델피아내 역사지구 ⓒ 서진완


"Liberty Bell 먼저 봐요!" 줄을 섰지만 길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자유의 종이 있는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며 앞뒤로 둘러보았다. 깨어진 부분이 있는 종 앞에서는 사진을 찍기도 했다. "너무 세게 쳤나?" 자유의 종 뒤편 유리 너머로 바로 독립기념관(Independence Hall)이 보였다. 
 
독립기념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권이 필요했다. "한번 알아봐!" "무료지만 시간에 맞춰 들어가야 한데요!" 큰아이는 어제 Nancy가 한 칭찬 이후로 용기를 얻은 것 같다. "그 나이에 그 정도의 영어를 하다니!" 아직 서툴지만, 당황하거나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서명을 한 바로 그 방에서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직접 들었다. 미국을 기초한 분들이 바로 이곳에서 치열하게 토론을 벌였던 공간도 보았다. 당시 사용하던 책상과 서명했던 펜, 그리고 초대 대통령 워싱턴(Washington)이 앉았던 의자도 보았다. 대통령제라는 독특한 정치적인 구조를 만들어낸 이곳에서 주 단위의 독립을 보장하고 연방을 만드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으며, 이를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토론을 벌였는지 중간 중간 아이들에게 설명 해주었다. 

“밥 먹자!” 아이들을 깨웠다. 카페테리아로 내려가자 요란스럽다. 중국 관광객들이 지나간 식탁은 폭탄을 맞은 직후처럼 어지럽다. 어제 저녁 로비에서 들렸던 큰소리의 주인공들이다. 어깨가 부딪혀도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 내에서도 큰 소리로 얘기했던 바로 그 일행이 자리를 떤 직후였다. 우리가 의자에 앉자, 식탁을 치우던 할머니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카페테리아 안에는 우리 가족만 있다. 미국인의 눈으로 중국인과 우리를 구분하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 "우리는 아니에요!"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아이들은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그동안 보수공사를 하느라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던 자유의 여신상이 문을 여는 날이라고 했다. 뉴저지에서 자유공원(Liberty Park)을 찾았다. 공항과 같은 수준의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서 배에 올랐다. 배 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맨해튼의 고층빌딩을 바라보면서 9/11테러가 벌어졌던 무역센터 건물이 있던 곳을 알려주었다. 무역센터 만 사라졌을 뿐인데, 이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 보였다. 


뉴욕 맨해튼의 고층빌딩들 ⓒ 서진완
 

자유의 여신상은 아이들이 생각했던 것과 같단다. 이렇게 저렇게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섬을 한 바퀴 돌면서, 방송국에서 나온 카메라와 기자들을 만났다. 독립기념일과 새로 자유의 여신상을 개장하는 모습을 담기 위해 취재하던 중이었고, 우리나라의 YTN 카메라와 기자도 만났다. “티켓있어요?” 새로 개장하면서 이미 한두 달 전에 자유의 여신상 내부에 들어가는 티켓을 팔았단다. 매진! 오늘 이곳에서는 티켓을 구입할 수 없다.  

오늘부터 개장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황당한 경우를 당하고 보니, 허탈하기까지 했다. 자유의 여신상 내부에 들어가서 크라운까지 올라가야했는데 아쉽다. "괜찮아요!" 작은아이는 국립공원여권에 찍을 기념 스탬프를 찾았다. “스탬프를 찍으려고 오진 않았는데...“ 



티켓을 일찍 구입하지 못해, 멀리서나마 보고 스템프만 찍고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 서진완
 

홀랜드터널을 지나 맨해튼으로 들어갔다. 배에서 보았던 무역센터건물 터(Ground Zero)를 찾았다. 이슬람국가를 거쳐서 이곳에 왔기 때문에 911테러사건은 아이들에게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테러의 위험과 계속되는 삼엄한 보안검색, 세계평화를 상징하는 유엔본부, 자본주의가 활짝 핀 타임스퀘어광장과 록펠러센터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곳이다. 뉴욕도서관 근처에 차를 주차했다. 오늘이 국경일이라 주차료를 받지 않았다. 뉴욕시내에서 무료주차라니! 이런 횡재가 있나 싶었다. 5번가를 따라 남쪽을 향해 기분 좋게 맨해튼 거리를 활보했다. 

뉴욕에서 짧은 일정이라면 엠파이어스테이트(Empire State)빌딩을 선택해야 한다. 언제나 붐비는 곳이지만 전망대에 서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맨해튼의 모든 장면을 한 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맨해튼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나 사진으로만 보았던 고층빌딩숲을 확인한다. 내가 처음 이곳에서 왔을 때, 느꼈던 바로 그런 기분을 아이들도 가졌을까 궁금했다. “어떠니?” "저기 한국간판이 있어요!" 아이들의 관심은 역시 다르다. “배고파요!” “그래 밥부터 먹자!” 유학시절, 맨해튼에 올 때마다 들렀던 뉴욕곰탕집을 찾았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배추김치와 깍두기에 곰탕과 설렁탕으로 저녁을 먹었다. 배가 부르다면서도 끝까지 다 먹은 아이들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맛있어요!" . 


정말 공부하고 싶을 때...


예일대학교 전경 ⓒ 서진완


뉴헤븐(New Heaven)을 거쳐 보스톤(Boston)까지 오는 길은 아이들에게 대학을 보여주려고 선택한 일정이다. 뉴헤븐의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보스톤의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와 MIT를 선택했다. 유명한 대학인지라 캠퍼스 마다 학생 수만큼 관광객들의 숫자도 많다. 캠퍼스 마다 무성한 나무와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잔디 위에 누워서 책을 보는 학생들,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 가는 학생들이 보인다. 우리는 뜨거운 햇살보다 나무 그늘 아래로 있는 것이 좋다. 각 대학마다 캠퍼스탐방 투어에 참여한 듯 보이는 학생들도 보였다.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다. 

캠퍼스를 모두 둘러보고 난 다음, 아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느낌을 말했다. 캠퍼스는 모두 고풍스럽지만, 대학마다 약간씩 다른 느낌이 든다고 했다. 큰아이는 지금까지 옥스퍼드대학교의 모습이 가장 좋았다고 느꼈는데, 미국에 와서 둘러본 대학 캠퍼스 중에서는 하버드 대학교의 캠퍼스와 주변 분위기가 가장 마음이 편안하고 이곳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버드(위)와 MIT(아래) 뜨거운 햇살이 내리 쬐지만, 각 학교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는 듯 했다. ⓒ 서진완


"저는 그래도 캠브리지가 제일 좋아요!" 작은아이는 변함없다. 세계 최고의 대학들이기 때문에 그만큼 입학하는 것이 어렵다. 정말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고 느끼고, 열심히 노력해서 이곳에서 공부를 한다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좋은 대학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곳을 선택하든 그렇지 않든 아이들의 몫이다.  
 
보스턴(Boston)에 살고 있는 아내친구와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가 여행을 계획할 때, 아내가 복용해야할 약들이 많아서 여행의 반이 끝나는 시점에 맞추어 이 친구에게 절반의 약을 우편으로 보냈었다.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는 도미니카(Dominica)공화국 출신의 여성과 결혼해서 이곳에 살고 있는데, 아내와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가재다!” 아내가 정말 먹고 싶어 했던 바닷가재 요리를 남편대신 친구가 먼저 챙겨주었다. “처음 먹어봐요!” 아이들이 더 반가워한다. 나는 한번도 비싼 가재요리를 사준 적이 없다. 처음 그를 만났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던 사람처럼 가깝게 대해준 그가 고맙다. 자고 가라는 말을 뒤로하고 한국에 오면 꼭 보자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아내도 친구와 더 얘기를 나누지 못해서 아쉬워했다. 그래! 그래서 친구가 좋다. 이래저래 신세를 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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