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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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다
  • 이정숙
  • 승인 2016.12.1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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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샘물반 아이들 2 / 이정숙(동수초교 교사)

 
샘물은 요즘 ‘주제중심통합’ 수업이 재미있기도 하고 버겁기도 하다. ‘주제중심 통합수업’은 아이들의 삶과 실천에 맞게 각 교과를 재구성한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그 중 한 주제는 ‘맞잡으면 따뜻해요’ 라는 주제이다. 인구구성의 변화 소수자의 인권, 조화로운 세상, 생명존중 등의 내용을 가지고 자료를 모으거나 토론, 글쓰기, 역할극, 그리기 등으로 표현하는 가운데 배움이 일어나도록 구성하였다. 주제 마지막 표현활동에서 아이들은 그 동안 배운 내용을 토대로 자신들이 생각하는 평화와 인권, 생명존중, 차별 없는 세상 등을 ‘폐나무’에 표현하였다. 그 폐나무를 복도 공간에 입체적으로 세워놓고 늘어놓는 전시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폐나무는 파이프오르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나무조각들로, 버려지는 게 아까워 멀리 양주까지 가서 얻어 온 나무조각들이다. 그 폐나무조각에 아이들은 나름대로 그림도 그리고 여러 가지 글도 써 넣어 알록달록 그간의 배움을 써 넣는다.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20161124_153548.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264pixel, 세로 2448pixel사진 찍은 날짜: 2016년 11월 24일 오후 3:35


평소 수줍음이 많은 마음씨 착한 여진이가 폐나무에 그림을 완성하여 가지고 나왔다. 아크릴물감 사용이 어려웠던지 뭉개진 그림들에 흐릿한 글씨가 적혀 있어 망친듯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림에는 ‘박근@는 @야@, 즐거워야 할 겨울에 웬말이냐 ’라고 써 있었다. 샘물은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기분으로 여진이에게 물어봤다. “흠! 글자가 잘 안보이는데~ @이게 무슨 글자야?“ ”혜자인데 잘못 썼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 인권, 생명존중 하고 무슨 관련이 있지?” 샘물은 여진이에게 물어보면서도 아이가 답하기 어려운 문제를 묻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진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딱부러지게 대답을 했다. “그래야, 하야해야 평화가 찾아오는 거니까요”. 순간 샘물은 뭔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아, 그렇구나!”라고 끄덕여 주었다.
 
아이의 배움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책에서 다루는 지식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앎이란 배움이란 삶과 실제와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그리고 그 지점으로부터 출발해야 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샘물은 매일 아이들로부터 배우게 된다.

학교란 곳에서 다루어지는 지식이 더 이상 우리 삶과 함께 교감하지 못한다면 교육도 서서히 그 자리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인류가 가졌던 지식의 양이 적었고 지식이 보다 나은 생활을 담보할 수 있었던 시절에는 지식자체가 중요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시에는 그 고귀한 지식들을 아이들에게 우겨넣는 것에 동의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식은 더 이상 인간을 풍요롭게도 안전하게도 아름답게 만들어 주지도 못한 채 오히려 인간을 압박해 가고 있다. 더욱이 지식은 인간의 뇌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많은 량이 나날이 폭증한다. 또한 인간의 삶과 다른 채 표류하는 지식도 태반이다. 이런 지식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나. 전달할 가치는 있는 걸까. 샘물은 그런 망설임 속에 우리가 사는 삶과 같이 가는 자리에 지식이 자리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움이 삶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고 이 앎이 함께 사는 세상을 돌아보는 곳에서 출발해야할 이유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주제통합수업 중 세 번째 주제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이다. 이번 주제는 우리 지역의 문제점과 원인을 알아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찾아 함께 협동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 초등학교 4학년에게는 다소 버거운 주제였다. 선행과 협동을 하면서 세상을 함께 아름답게 만들어가자는 의미에서 주제명을 ‘꽃보다 아름다워’ 라고 하였다. 사회 단원의 사회참여, 지역사회문제 해결, 도덕의 협동단원, 국어시간의 제안하는 글쓰기 단원 등을 결합한 통합수업이 이루어졌다. 진행되는 과정에서 동네에 있는 경로당이 네 곳인데 지역마다 노인분들이 반목이 심하다는 정보를 접하고는 그 문제를 해결하자는 야심찬 계획도 세우고, 주변 경로당을 찾아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이야기를 직접 나누면서 문제나 실태를 파악하는 등 적극 실천으로 다가가는 반도 있었다.
 
통합수업 프로젝트 끝에는 연말연시도 되고 하니 뭔가 봉사의 의미로 경로당 위문공연을 계획했다. 하지만 먹을 것 사들고 양로원 방문해서 공연하는 기존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인을 그저 위로해주고 먹을 것 나눠주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인식하는 가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여, 노인을 대상화 할 것이 아니라 참여자로 설정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샘물의 동료들은 학교 강당에서 잔치마당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아이들과 의논하여 할머니할아버지들과 함께 할 각종 부스를 만들고 몇 개의 공연과 할머니 할아버지도 참여하는 공연을 넣었다. 기획을 하면서 경로잔치가 노인들을 수동적 ‘대상자’가 아니라 주체적 ‘참여자’로 만들기 위한 고민을 내내 가지고 갔다.

하지만 여전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아이디어는 부족했다. 그래도 처음이니까 그런대로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 아이들 의견을 수용했다. 처음에는 ‘안마 해 드리기’와 ‘네일아트’ 등을 구상하다가 ‘친구되어 드리기’ 부스를 만들기로 했다. “어떻게 친구가되어 드릴 건데?”샘물은 아이들이 뭘 할 수 있을까 막연해서 물어보았다. “선생님이 할머니 할아버지는 건강을 염려하신다고 했잖아요. 우리가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고요. 우선 재미있게 해드려야 건강해 지실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게임도 하고 하면 재미있을 거예요.” 라고 하면서 아이들은 이야기 읽어드리기, 함께 알까기, 스피드게임, 실뜨기 등등의 게임도 함께 하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도 찍는 부스를 구상했다. 다른 반들은 족욕이나 안마 부스를 구상하기도 하고, 호떡을 직접 구워드린다든지, 핫케잌이나 떡볶기, 어묵을 직접 만들어 드린다고 계획하였다. 샘물은 분주히 이것저것 재료들을 주문했다. 예의 그 공연도 빠질 수 없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리코더 연주, 춤, 쌍절권 등 서로 팀을 구성했고 6학년의 뮤지컬 공연도 흥을 돋우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다음 날에는 도화지를 여러 장을 붙여 플랜카드를 만들거나 손팻말, 한지로 만든 깃발을 들고 나가 거리행진을 했다. “눈부신 청춘! 행복잔치에 초대합니다”라고 외치며 거리에 노인분들에게 직접 쓰고 그린 초청장을 나누어 드렸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어르신은 처음에는 뭔가 하여 경계의 눈으로 맞으시다가 플랜카드 내용을 읽거나 외치는 말들, 그리고 아이들이 건네는 초청장을 읽으시고는 이내 얼굴이 활짝 펴지면서 웃으셨다. 정말 너무나 다정하고 환한 웃음이다.

아이가 길 건너 휘적휘적 걸어가시는 할아버지를 발견하고는 뛰어가 초청장을 건넨다.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향해 한마음으로 “행복잔치에 초대합니다”라고 외친다. 이내 뛰어갔던 아이가 울상이 되어 되돌아온다. “할아버지가 안 받으신대요”. 하면서 뭔가 잔뜩 야단을 맞은 듯한 얼굴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마도 플랜카드와 팻말을 들고 외치며 집단으로 행진하는 모양새를 보시고는 이 시국과 맞물려 뭔가 불편한 기억을 떠올리신듯하다. 아이들이 외치는 말들도 플랜카드도, 아이가 뛰어가 건네는 초청장도 불온한 것일 것이라 생각하여 외면하고 싶으셨나보다. 우리 사회의 어르신들의 모습은 두 가지로 압축되곤 한다. 하나는 전철에서 큰 소리로 “철딱서니 없이 데모나 하고 저지랄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이라고 나무라시는 완고한 분들과 닮아 있다.
 



아이들은 동네를 지나 각 지역에 있는 몇몇 경로당을 다시 방문했다. 오후에 찾아간 경로당에는 열 분이 넘는 정도에서 서너 분 계신 곳도 있었다. 하지만 플랜카드나 아이들이 외치는 말, 손 팻말, 초청장 등을 보시면 어두운 표정들이 이내 환한 웃음으로 바뀌면서 아주 다정하게 말도 건네신다. 아이들도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낯설음 대신 이내 친근한 표정으로 다가가 잔치를 설명하고 오시길 독려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돌아가는 아이들에게는 “아이구 미겨 보내야 하는디, 갑작시리 뭐가 읎네, 없어.” 하시면서 연신 “미겨보내야 하는디” 하시는 말씀에 아쉬움과 정이 묻어나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을 보시는 표정과 마음이 우리가 어르신 분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모습이다. 4학년 사회책에 나오는 인구문제에 고령화 사회로 가면서 노인에게는 건강과 경제문제가 중요하며 이를 해결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어쩌면 노인문제를 평면적으로만 접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와의 소통 단절. 아이들을 보면서 한없이 자애롭고 환한 미소를 짓는 분들, 소외되고 불통되면서 고집스럽게 외면하는 모습들은 어쩌면 우리가 이분들과 함께 보듬고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샘물은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다시 또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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