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한 수제 가방 “柳(류)”
상태바
아내를 위한 수제 가방 “柳(류)”
  • 문미정
  • 승인 2016.12.22 0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 서울에서 인천으로 와, 이제는 인천을 명소로 만들다.

< 수제 가방 “柳(류)” 1호점 전경 >

대표 송민규의 사업 마인드는 ‘정직은 더디지만 진심은 늘 통한다.’ 이다.
그는 글이건 마음이건 진심이건 정성이건 무엇이든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닉네임은 ‘나눔행복 전파사’이기도 하다.
 
'류수제가방'이 2016년, 올해로 15주년을 맞았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보도 되었지만 아직 모르고 있는 분들을 위해 여기서도 그의 이야기를 펼쳐 보고자 한다.
 
내가 수제가방 “柳” 와 인연이 된 것은 2010년 가을이었다.
그는 그 당시 서울에서 명동, 코엑스, 강남에서 그의 명성을 자자하게 드러내며 소위 한 참 잘 나가고 있던 사업가였으나 지인들에게 사기를 크게 (아주 크게라고 강조함) 겪게 되어서 인천으로 내려온 바로 그 해다.
그 때는 그가 그런 이유에서 인천에 왔는지 몰랐다. 그냥 가방이 예뻐서 가게에 들어서면서 송 대표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명품 가방 보다는 특이하면서도 질 좋은 제품들을 선호하는 내게 그의 가방은 한눈에 반할만 한 그런 가방이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당시 나는 운 좋게도 거의 반값에 가방을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송 대표에게 다시 물으니 인천에 처음 와서 오픈행사 이벤트 때라고 한다.


<공장에서 직접 원단을 고르는 모습>

그렇게 그해 가방을 샀지만, 그 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자그마한 가죽가방은 무용지물이 되고 커다란 기저귀 가방용 가방만 3년을 메고 다녔던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가방 단추까지 망가졌으나 이보다 더 예쁜 가방을 본 적이 없기에 버리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었다.  '6년이나 되었는데 고쳐주려나?' 하는 마음에 가게를 다시 찾아보았다. 가방을 산지 햇수로는 7년만이다. 가방은 돈 하나 안들이고 일주일 만에 감쪽같이 고쳐졌다. 평생 무상 AS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손 때가 묻어 더 매력 있는 가방이 되어있다.
 
손위 오빠는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내수 경제가 안도는 거라고 하지만 이렇게 소비를 줄여도 집안에 물건이 넘쳐난다.
 
인천예술회관역은 유동인구가 그리 많은 역은 아니다. 그 안에 지하상가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 당시에도 ‘여기에 가방 가게가?’ 하며 의아해 했는데 이제는 그 상가들 중에서 더 구석으로 가게를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게를 잘 운영하고 계시는 것이 놀라왔다. 이 후미진 곳에서 잘 버티고 계시는 게 신기한 나는 이 것 저 것 물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그동안 방송도 인간다큐나 생생정보통 등, 방송도 10번 정도 타고, 기사에도 몇 번 오른 유명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늘 '진심, 정직, 열정'을 강조한다. 그것이 지금껏 15년간 가방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라고 덧붙인다. 거짓말 하지 않았던 것, 최선을 다해 온 열정을 다해 만들어 왔던 것, 온 진심을 다해 설명해온 것, 고객과의 대화를 통해 성격을 파악하고 그 성격과 피부 색깔에 가장 잘 맞는 가장 잘 어울리는 가방을 골라주려는 정성...
그것이 그의 진심이라고 한다.
 
오랜 지하상가 생활로 천식으로 기침이 나오고 목이 아파도 입에 사탕을 물며 고객 한 명 한명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도 감동이 느껴졌다.

또한 그는 구매 이후에도 철저한 AS로 처음 구매했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고쳐주는 것이 가방을 판 사람의 책임이라고 하였다.
 
가게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물었다. 그의 가방에는 “柳” 라는 글자가 늘 새겨져 있다. 이 가방 이름의 유래는 사랑하는 아내의 성을 딴 것이라고 한다. 자기 생명처럼 아끼는 아내에게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수제가방의 브랜드명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한다. 기억을 더듬으니 첫 방문 당시 이 말을 듣고 ‘나도 이런 남자 만나야지...’ 하면서 무척 감동받았던 것 같다.
참 다행히도 ‘柳 ’는 이름값을 잘 해주고 있다. 송 대표는 ‘柳’ 라는 이름에는 아내를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는 정성 그대로 고객들에게도 똑같이 쏟기 위한 이유도 담겨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번창하시던 분이 인천으로 오게 된 이유도 자세히 물었다.
하도 오래 되어서 이제 이런 이야기 잘 안하는데 하며 오히려 웃으며 편히 애기를 이어갔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서울에서 연예인들과 형, 동생, 또는 친구를 맺으며 장사할 정도로, 소위 잘나가는 사업가였다고 한다. 그의 가게에는 연애인과 찍은 사진이 즐비하다.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힘들진 않게 살아왔던 그가 아주 계획적인 사기에 휘말리게 되었던 것이다.
 
명동과 대학로, 삼성동 코엑스에 자리 잡고 있던 가게와 공장을 다 접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직원도13명이나 되는 규모 있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쌓아온 재물을 잃는 것도 아쉬웠지만 그는 소중한 직원들과 수년 간 키워온 매장을 접는 것이 더 절망적이었다고 한다.
 
그런 절망의 순간에 곁을 지켜 주었던 것은 아내와 가족 그리고 ‘柳’의’ 오랜 고객들이었다고 한다.
 
"붕어빵을 팔까? 대리운전을 할까?“ 고민의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한꺼번에 들어 온 문자들, 그는 그날의 기억을 기적으로 여기고 있다.
 
왜 가게 문이 닫혔어요?
가게 옮기셨어요?
사장님, 어디계세요?
가게 문이 오래 닫혀 있네요?
사장님 바뀌셨어요?
우린 이제 가방 어디서 사요?
사장님, 가방 사러 왔는데 안계시네요...
오늘 문 닫는 날이에요?
지난번에 보고 간 사방 사러 왔는데 안계시네요. 언제 가게 문 열어요?
우리 가방 살 데 여기밖에 없어요.
사장님 가방 말고는 다른 가방들은 눈에 안 들어 와요..
얼른 빨리 가게 다시여세요
사장님가방이 짱이에요
등등
 
그리고 한 친구가 바람 좀 쐬라며 데리고 온 인천예술관역 상가.
그렇게 시작된 인천과의 인연은 이제는 예술회관역에서 제일 오래된 가게가 되어 명소가 되고 있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없느냐는 질문에 이제는 인천 최고의 가방장이가 되고 싶다며 웃는다.


< 수제 가방 “柳(류)” 2호점 전경 >

절망의 순간에 희망이 되어준 단골 손님들, 그리고 친구,
그래서 그는 예전보다 인연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그의 판매는 참 독특하다. 크리스찬인 그는 가방을 팔면서 자신의 삶을 나누고 은혜와 희망을 나눈다. 그의 고객이 된 모든 사람은 주기적으로 희망의 메세지를 받게 된다. 내가 7년 만에 가방을 다시 꺼내어 들고 고쳐달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늘 보내왔던 문자 때문이었으리라.

 
 < 평소 그가 보내오는 문자 메시지의 일부 >

선물이 많이 필요한 시기이다.
한 해 동안 나를 도와준 지인들에게는 물론, 한 해 동안 잘 버티고 견뎌 온 나 자신에게도 ‘柳’는 좋은 선물이 되어 줄 것이다. 선물이 필요한 사람은 설렁설렁 예술회관역으로 마실을 나가도 좋을 법 하다.
 
업  체  명 : 수제가방 ‘柳’
주      소 : 인천 남동구 구월동 예술회관역 지하1층 1.2번 출구 아래 (1호점)
               5번 출구 아래 (2호점)
전      화 : 02-774-1066 (추억을 버리기가 아쉬워 옛 번호가 휴대폰으로 착신이 되어 있다.)
               010-3007-1066
영업시간 : 월 ~ 금 10:20 ~ 18:30
               토 10:00 ~ 18:00
               주일 휴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